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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보 작가 |
ⓒ N군위신문 |
서울 강동구에 사는 E선생은 난 값을 부인에게 알려 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갈등을 겪었다. 알려 주자니 그로부터 생기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두렵고, 안 알려주자니 난 관리에 애로사항이 많고, 결국 E선생이 위험 부담을 안고 난 값을 부인께 알려 주게 된 것은 다음 얘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E선생과 잘 아는 사이인 모회사 K상무는 석곡광(石斛狂)이었다. 자생 석곡이나, 외국산 석곡이나 가리지 않고 석곡을 수집하였다. 무늬종에서 꽃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석곡을 수집하고는, 그 때마다 2~3천원에 구입하였다고 부인을 속였다.
하루는 퇴근하여보니, 그 중 아끼는 난분이 하나 비어 있었다.
급히 부인을 찾아 물어보니, 부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친구에게 선물하였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2~3천 원짜리 난 분 하나 준 것 가지고 남자가 호들갑 떠느냐는 식이었다.
값이 얼마인데 허락도 없이 주었느냐고 불호령을 내리며, 당장 가서 찾아오도록 호통을 쳤다.
그런데 부인의 입장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올 적마다 석곡을 보고는 부러워하며, 분양해 주기를 간청하는 지라 그 때마다 거절을 하였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몇 번 계속되고 보니, 2~3천 원 하는 난 분 하나 가지고 친구간 의리 상하게 되어, 무슨 하사품인 양 생색을 내며 주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길길이 뛰어도 웬만하면 한번 준 것을 다시 찾으려 안 갔겠지만, 남편이 다시 말하는 거금의 난 값을 듣고는 부은 얼굴로 마지못해 친구를 찾아갔다.
난 값을 여태 속인 것만 해도 괘씸한데 모처럼 생색 한 번 낸 것을 찾아오라고 하니, 상하는 자존심 때문에 얼굴이 부을 수밖에.
친구 집에 가본즉, 지난번에 가져간 석곡이 그대로 있는지라 안심을 하고는 사연을 얘기하고 돌려 달라 하니 친구가 말하기를, “전에 네게서 가져 온 것이 어떤 것인지 난가게에 가서 알아보니 명품이라지 뭐니. 마침 어려운 자리에 인사 할 일이 있어 선물로 요긴하게 썼어.”하고선 “지금 있는 것은 그 난가게에서 그것과 비슷하고 아주 값이 싸서 사다 놓았지 뭐니”하며 말의 꼬리를 덧달았다.
평소에 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인지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난이 맞는 것도 같고, 다른 난인 것 같기도 하여 자기 집 난이라고 우길 수도 없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을 대동하여 진위를 확인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서 남편에게 포기할 것을 말하였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남편은 그만 부인의 따귀를 한 대 갈기고 말았다.
‘노름방에서 돈 잃고 기분 좋은 노름꾼 없고, 맞고 입 안 튀어 나오는 여자가 없다’는 말과 같이 이 일로 인하여 한 달 여 부인 곁에도 가지 못하고 홀아비 아닌 홀아비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난 값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아니해 생긴 일이었음으로, 그 얘기를 들은 후, E선생은 많은 위험(?) 부담을 안고 부인께 구입한 난들의 값을 알려 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부인께서는 눈이 등잔만 해지더니, 난분마다 일일이 값을 체크한 후 난에 대한 관심이 180°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따님 또한 중투가 제일 비싸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빠 중투가 어떤 거예요” 하면서 계산적 발언을 자주 하는 등, 난들에게 의미 있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창문을 열어라, 선풍기를 틀어라, 바닥에 물을 뿌려라 등등, 여러 가지 성가신 일들을 알아서 척척하게 된 것 까지는 ‘띵호야’이나, 그 다음부터 난을 사서 집으로 반입하는데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부인께서 난 값을 대충 아는지라, 난을 들고 집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부동산투기 조사하는 세금쟁이 뺨치게 난 값의 자금 출처를 따지는 통에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난 값을 고지식하게 알려 준 것이 후회됐지만,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였다.
E선생이 강구한 다음과 같은 반입 작전은 기발한 착상이긴 하나, 남의 일 같지 않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난을 구입하고는 집에다 전화를 걸어 부인의 부재 여부를 확인한 후, 집에 없으면 그 길로 달려가 반입한다. 집에 있으면 난이 든 봉투를 일단 경비실에 맡기고 올라가서는 부인에게 적당한 핑계를 붙여 슈퍼에서 물품을 사오도록 유도하고는, 부인이 슈퍼 간 사이에 부리나케 경비실에서 난을 가져와서는 분갈이를 하는 양 하는 수법(?)을 쓴다는 것이다.
또한 보세나, 혜란 등을 잘 아는 농장을 겸한 난가게에 임시 보관 시키고는 자생란 무늬종을 바꾸어 왔다는 방법도 쓰고 있단다.
가져 갈 때는 큰 잎새의 난을 몇 분씩 가져갔다가 가져 올 때는 비실비실한 몇 촉의 자생란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는, “당신 여태까지 난을 잘 못한 것 아니요?”라는 힐책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자생란은 보세나 혜란에 비교가 안 되게 왜소한 편이라서 부인이 보기엔 남편이 밥 팔아서 죽 사먹는 것 같은 바보짓을 하는 것으로 보일만도 했다.
그건 그렇고 임시 보관시킨 난들을 다시 들여 올 일이 꿈만 같다고 한다.
어쩌다 몰래 들여 온 난을 어부인께서 용케도 알아보고는, “이건 안 보던 난인데” 하면 가슴이 뜨끔하나 저쪽 구석에서 옮겨 놓았다고 얼버무려 위기를 모면하곤 했는데, 이것도 날이 갈수록 통할 것 같지 않다면서 울상을 짓는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거와 같이 난도 예외가 있기는 하나, 대개 촉당 천 원짜리는 천 원짜리가 올라오고 만 원짜리는 만 원짜리가 올라 올진데, 천하의 난처가(難妻家)의 부인들이시여, 주식 값이 폭락하고 보니 그 돈으로 자생란이나 샀으면 하는 말이 나오고도 남게 되었으니, 난도 잘 기르면 이자 많이 나오는 저축과 다 없을진대, 난처가께서 난을 사오시면 제발 못 본척하여 주시고 자금출처 조사 등을, 이훌랑 말아 주시길 간절히 빌어마지 않나이다.
글쓴이: 이성보
-저서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