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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괄세 받은 호반

admin 기자 입력 2017.07.03 11:09 수정 2017.07.03 11:09

↑↑ 이성보 작가
ⓒ N군위신문
난과 돌의 美學… 이성보 작가 에세이 연재


춘란의 꽃대를 먹어보면 달짝지근하다. 그래서 꿩들이 좋아하는지, 시골 어떤 곳에서는 춘란을 두고 ‘꿩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잘 자란 춘란 잎은 토끼가 뜯어 먹어 성한 게 별로 없는 정도다. 이렇듯 춘란이 산짐승의 먹이가 되고 있음은 익히 알고 있지만, 사람의 병을 고치는 약이 된다고 하면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약이 되는 춘란 잎은 민춘란 잎이 아닌 무늬종의 잎이다.

춘란의 무늬종은 관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병을 다스리는 약까지 되고 있으니, 애당초 민춘란보다 선택 받은 풀임에 틀림없다.

엷은 햇빛이 다발로 꽂혀 내리는 1987년 봄이었다.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 근처 산중에서 산채꾼들 사이에 남매 산채꾼으로 알려진 J씨가 누나와 함께 산채를 하던 중 약초를 캐는 칠순(七旬)의 노인을 만났다.

마침 저녁때가 다 되었기로 민박할 곳이 있는지 노인께 여쭈니, 인근 궁평부락에 있는 자택으로 안내를 했다. 노인은 조그맣게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시골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고 계셨다. 저녁 식사 도중에 J씨가 약재를 캐러 다니는 줄 알고,

“무슨 약초를 캤소?”
하고 노인이 묻는 말에,

“난을 캐러 다닙니다.”
고 했더니,
“이틀 전에 병든 난을 누가 가져왔기에 화가 나서 담 너머로 집어 던졌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귀가 번쩍 띄어 자세히 여쭈니, 근처 부락에 사는 부인이 ‘소삭증(鼠逆症)’이란 병에 걸리었으나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딱함을 알고 무료로 병을 고쳐 주었더니, 남편 되는 사람이 귀한 것이라며, 문둥병이 든 ‘꿩밥’을 가져왔기에 화가나 그 자리에서 담 너머로 집어 던졌다는 것이다.

“젠장 맞을! 기껏 병을 고쳐 주었더니 배은망덕도 유만 분수지 병든 풀을 가져와!”
하며 그때까지 화가 덜 풀리었는지 눈꼬리를 가늘게 휘어가면서 날카롭게 목소리를 곤두세우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남편 되는 사람은 난을 캐러오는 산채꾼들에게 여러 가지로 편리를 보아주다 춘란 무늬종이 귀하고 좋은 것이란 귀동냥을 하고서는 며칠 간 산을 헤매어 겨우 무늬종을 찾았단다.

산채꾼들로부터 귀한 것이란 확인까지 받고는 병을 고쳐준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가져온 것인데, 노인에게 칭찬은 커녕 무안만 당하였다고 한다.

이틀 전이란 얘기에 당장 나가서 찾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으나, 속보이는 것 같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가 찾던지 간에 반반씩 나누기로 하고 밤잠을 설치고는 새벽에 부리나케 일어나 담 밖을 찾았으나, 난은 보이지 않더란 것이다. 어둑어둑한 새벽부터 시작하여 희번하게 동이 터올 무렵까지 찾았으나 흔적도 없었다.

누가 집어갔다고 여기고는 세수를 하려고 집안 우물가로 갔더니, 장독과 담 사이에 그토록 찾던 문제의 춘란이 떨어져 있었다. 집안에 있는 것을 담 밖에서 찾고 있었으니 못 찾을 수밖에.

분을 집어 들고 보니 1.5리터짜리 사이다병을 잘라서 구멍을 뚫어 만든 것으로, 마사와 흙에 6촉짜리 호반(虎斑)이 심어져 있었다.
J씨는 호반을 들고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인데 노인은 문둥병 걸린 풀이라고 괄시했으니…. 아무튼 사람은 줄을 잘 서고 볼일이다.

그러나 저러나 노인이 고쳐준 소삭증에는 부인의 남편이 가져온 춘란의 무늬종이 약이라는 기록이 있으니, 세상일은 정말 묘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소삭증이란 한의학에서 말하는 소삭명증을 말하는 것으로, 성년 여자의 소변 하는 소리가 쥐가 뚫어 놓은 구멍에서 나오는 바람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으로 ‘오줌소태’를 말한다.
즉, 건강한 부녀자의 소변 하는 소리는 약간 틀어 놓아 물줄기가 나오는 수돗물 소리같이, ‘쏴-아’ 하고 놋쇠 숟가락총 부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산후조리를 잘못하거나, 산후풍 또는 지나친 방사로 인하여 요도나 방광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7, 8월 가뭄에 붓 도랑에 물 떨어지는 것 같이, ‘쐐골-쐐골-쑈우-소싸-소싸’ 하는 소리가 나게 되고, 소변이 자주 마려우면 바로 소삭증에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즉, 방광에 200~300CC의 소변이 차면 요의(尿意)를 느끼고 400~500CC가 차면 요의가 피크에 달한다.

정상적인 사람은 소변을 누었을 때 방광에는 소변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 오줌소태에 걸리면 소변을 다 누어도 방광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변이 남아 있게 된다. 이를 의학적으로 잔뇨(殘尿)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소변을 다 보았는데도 100CC의 소변이 방광에 남아 있다면 이 환자는 100CC만 더 괴어도 요의를 느끼게 된다.

만약 잔뇨가 200CC가 남아있는 오줌소태 환자라면 100~200CC의 소변만 괴어도 요의를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오줌소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만도 괴로운데 볼 때마다 기분 나쁜 잔뇨감을 느낀다면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치는 격이 된다.

이런 환자들은 애써 소변을 다 보아도 소위 말하는 ‘배설의 쾌감’은 커녕 전혀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없고, 또 마려운 듯한 찜찜한 기분이 남는다.

오줌소태, 이것은 인생의 기본적인 쾌감마저 앗아가는 질환이다.
고구마의 재배법인『종저보(種藷譜)』를 저술하는 등, 조선조에서 으뜸가는 농정가요, 실학에 조예가 깊은, 풍석 서유구(楓石 徐有 , 1764~1845) 선생은 조학민(趙學敏)의『본초강목십유(本草綱目拾遺)』에서 난 잎으로 사람의 병을 다스리는 구절을 인용하여 “소삭증에는 빛이 바랜 듯한 병든 난잎이나, 혹 흰줄이 보이고 쓸어낸 듯한 빛이 나고, 누렇고, 혹은 흰 난잎을 잘라서 달여 먹인다”는 기록을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에 남기고 있다.

행여 이 글로 인하여 값비싼 중투를 남편 몰래 잘라 소삭증 치료에 쓰지는 않을는지 염려스럽기는 하나 난에 앞서 사람이 우선일진데, 병이 낫는다면야 중투가 작살나는 게 대수랴.
그날 어렵게 찾은 호반이 뒷날에는 서산반(曙散斑)으로 변하더니, 지금은 사피(蛇皮)로 변하여 서울 강남에 있는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촉수를 불리고 있다고 한다.

글쓴이: 이성보
-저서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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