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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녹화의 일등 공신 리기다소나무

admin 기자 입력 2017.07.03 17:04 수정 2017.07.03 05:04

↑↑ 최규종 조합장
ⓒ N군위신문
지역 분들과 대화를 하는 도중에 리기다소나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자주 있다.

우리지방에서 잘못 알려진 “왜솔”이라고 불리는 리기다소나무가 일본에서 들어와 식재를 한 것으로 우리나라 산을 망치려고 일본인들이 퍼트린 나무라고 오해 하는 분이 많다. 리기다소나무는 북아메리카 미국이 원산지로 이 리기다소나무( 학명 Pinus rigida )는 3가닥의 잎 삼엽송이라고도 불리는 우리나라 도입수종으로 이를 양묘 생산하여 산지에 식재 된 나무이다.

알고 보면 이 리기다소나무는 일본과는 무관한 나무이다. 60∼70년대의 헐벗었던 시대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상수리나무는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주인공이었다. 지금의 푸른 숲을 그 당시를 헐벗었던 산지를 생각해 보면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현재 이를 직접 목격을 했거나 경험하신분이 아직 많이 계시고, 필자 역시 어린시설 이를 보면서 생활해온 사람이다.

고향 의흥은 연료용 땔감이 너무 부족한 지역 이였다. 장날이면 아침 일찍 신작로는 땔감용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지게꾼 행렬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지방에서 “깔비” 라고 하는 소나무류 낙엽과 장작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앞뒤를 봐도 산이 많은 지역이지만 산에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저 멀리 선암산 까지 하루 종일 나무를 해서 그것을 장날이면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다.

당시 우리나라 산은 나무를 심어도 아무나무나 살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지반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독나지(禿裸地)라고 하는 가히 상상도 할 수없는 풀 한포기 없는 토지로 이 토지에 살 수 있는 나무가 없었다.

그러나 일석이조격인 상록수인 리기다소나무가 대표적인 녹화수종이었다. 척박지에도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연료가 부족한 시대였음에 연료용으로 너무 좋았다. 잘 자라고 연료량도 많고, 소나무류 중에서 유일하게 맹아력(萌芽力)이 있어 베고 나면 다시 움이 트는 나무이었기에 녹화에는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지금 우리는 리기다소나무를 베고 그곳에 다른 경제수를 식재하는 단계까지 왔다. 오늘의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녹화성공 바탕에서 생각을 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 그 척박지에 경제수를 바로 심었어도 모두 실패했음이 분명하다.

목재나 조경수 등으로 맞지 않은 이 리기다 소나무를 심은 것이 당시 정부의 생각이 잘못되었고 당시 바로 경제수를 바로 심었더라면, 산림경제대국이 되었을 것인데 수종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이러한 당시상황의 이해가 필요하다.

리기다소나무는 이렇게 목재나 조경수로도 인기가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지만 과거 우리나라 산지에 경제수를 심을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토지여건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에 걸 맞는 나무를 골라 심고 가꿀 수 있는 토지환경과 경제력이 충분하다. 이제 나무를 골라 심을 때 가 되었다. 좋은 나무가 너무 많고 녹화로 지반이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낙엽이 그대로 쌓여 비옥도가 높아짐에 따라 리기다소나무를 이제는 경제수로 갱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하에 수년전부터 다른 수종으로 갱신을 하게 된 이유이다.

여름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더욱 숲이 그리워지고 그늘 속에 가고 싶고 하는 계절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 산에 가더라고 숲이 울창하다. 그러나 그 바탕에 이러한 일등공신 리기다소나무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건강하고 울창한 숲이 한 나라의 국력을 나타내는 낸다. 사람의 역할도 시대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듯이 시대에 맞는 필요한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지금이나 먼 장래를 위해 바람직 할 것이다.

군위군 산림조합장 최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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