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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향우소식

소나무, 그 표상과 대상사이의 深淵

admin 기자 입력 2017.07.16 19:25 수정 2017.07.16 07:25

출향작가 구명본, “작업실 오픈전”…7월31일까지 갤러리 솔에서

↑↑ 구명본 작가
ⓒ N군위신문
오는 31일까지 갤러리 솔(Gallery Sol)에서 구명본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작업실 오픈전’이란 명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는 구 작가의 28번째 개인전으로, 전시회에서는 세월의 디테일을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삶의 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구명본 작가는 전통회화의 사실적 기법으로 소나무를 그리는 데 천착해 왔다. 구 작가는 소나무가 서 있는 땅을 좀체 그리지 않는다. 오로지 하늘 향해 선 가지와 무성한 잎을 단숨에 그려낸다.

소나무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삶을 은유하는 대상이다.
소나무라는 한 매개를 빌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기억하고 잃어버리지 말아야할 가치들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작가는 낮은 음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헤아려 볼 일이다.

전시 관람은 전화 예약 후 가능하며 문의는 010-3844-3777로 하면 된다.
(갤러리 솔: 부산 동래구 명륜로 138번길 26. 명금빌딩 B1-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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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본에 대하여>

작가 구명본은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에서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5남2녀의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대구에서 수학했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군위에서 고등학교까지 머물렀다. 학교교사였던 부친의 수입으로 7남매를 모두 넉넉하게 교육시키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 서운함을 가지기도 했었지만 이곳에서 미술교사였던 김혜영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운다. 일찍부터 구명본의 예술적 소양을 알아차린 김혜영 선생님의 독려는 화가 구명본을 존재하게 한 커다란 힘이 었다.

그리고 시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바라보았던 군위의 석양과 숲, 사계절 푸른 소나무 사이로 바라보았던 더 없이 푸른 하늘은 도시적 삶과는 전혀 다른 체험을 제공하였다.
이곳 군위에서의 기억은 이후 작가의 작품에 내재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형성하는데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작가는 대구 계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한 동안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탄탄한 기초를 다져야 하는 입시미술교육과 당시 자신의 작업경향이 크게 충돌하지 않았기에 교육과 작업을 함께 병행 할 수 있였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교직이나 학원운영을 하게 되면 작업의 끈을 놓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두 가지를 함께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 한 번도 작업을 등한시 한 적이 없다.
ⓒ N군위신문

92년부터 거의 매년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94년 목우회 ‘우석미술상’, 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98년 부산미술대전 ‘대상’ 등 공모전에도 꾸준하게 출품을 하면서 수상경력을 쌓아나갔다.

이러한 작가의 성실함은 2012년 부산미술협회가 주최하는 제11회 ‘오늘의 작가 본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구명본은 세상의 변화를 느리지만 우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가진 작가이다.
그가 여전히 전통적인 회화의 기법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점이나 소나무라는 사시사철 푸르러 항상 변화가 없는 소재에 깊인 천착하는 것은 이러한 작가의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 길게 자란 수염과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 선한 눈을 가진 작가는 아무렇게나 쓰고 버리기를 좋아하는 세상의 버릇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큰 키에 농담이라곤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진중한 성격은 작가의 작품과 무척이나 닮았다.


<미적대상으로서의 사물>

구명본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하나는 오래된 사물에 깃든 정서를 전통적인 관점으로 해석했던 초기작업과 2016년부터 본격화 된 소나무 시리즈로 나눌 수 가 있다.

하지만 이 두가지 경향 모두 대상과 주관적은 표상사이의 심리적 반응에 예민하게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작가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태도이다. 다시말해 작가는 대상 혹은 사물을 온전하게 타자화 함으로서 사물 그 자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속절없이 드러낸다.
작가는 90년대 초반부터 줄곧 사물에 깃든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해 왔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아프리카의 가면, 시발, 오래된 시계나 가방, 고서, 향로 등 자신의 제목대로 ‘한 시대를 풍미’ 했던 사물들이다.

이러한 모티브들은 콜라주 된 고서나 한지를 배경으로 그려지거나 목가와 반상과 같은 오브제 위에 그려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물과 사물 혹은 사물과 배경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긴장을 드러내며 다중적이고 다층적인 회화적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사실 사물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그의 대학졸업작품에서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1987년 계명대학교 졸업작품전에 수록된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일반적인 풍경화와는 다른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통상적인 풍경화는 넓은 공간을 설정하면서 그 공간에 사물들을 배치한다. 근경, 중경, 원경이라는 삼원법에 의해 공간의 깊이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작가는 오래된 배들을 화면의 전면에 클로즈업하면서 공간을 그리기 보다는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욱 특이한 점은 이 배가 가지고 있는 시간성을 드러내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배에서 느낄 수 있는 두터운 마티에르와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의연한 배의 형상은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작가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했던 일찍부터 작가는 ‘사물’을 ‘대상화’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서사적 의미를 탈색하여 순수한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은 서구 모더니즘 회화의 가증 극명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예술을 삶과 분리시키고 예술 그 자체로 존립하고자 했던 하나의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정물화나 풍경화와 같은 장르가 가능한 것도 이러한 ‘미적 대상화’의 과정으로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구명본의 초기작품에서는 사물을 대상화하는 의지는 분명해 보이지만 시간의 결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회피한 경우는 없다. 예를 들어 92년에 개최되었던 개인전에 선보인 대부분의 정물작품들은 특유의 색채감각으로 마치 시간의 동굴을 빠져 나온 사물들처럼 묘사되어 있다.
ⓒ N군위신문

밝고 화사한 색과는거리가 먼 황토색계열의 사물들은 오래된 토기에는 느껴지는 질감과 색감으로 처리되어 있다.

뿐 만 아니라 90년대 후반에 제작된 작품 ‘상-또 하나의 풍경’에서 작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한 화면에 구축한다.

오래된 유물과 자신의 자화상, 그리고 몽환적인 배경이 함께 오버랩 되어 있는 이 작품은 실재와 오브제, 그려진 것과 사물, 전통을 환기시키는 배경들이 혼재하는 매우 독특한 화면을 보여준다. 마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시공간에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가 오래된 사물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은 일종의 수집가적 취미나 페티쉬적 취향의 결과물이 아니다. 작가는 오래된 사물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혹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 면에서 작가의 초기작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관심은 ‘사물’과 ‘시간성’ 이다.


<솔, ‘대상’과 ‘여백’의 오솔길>

최근 작가의 작업은 소나무를 만나면서 급격한 변화를 보이게 된다. 소나무시리즈에서 작가는 또 다른 실험을 감행한다.
한지를 배접하는 과정에 물감을 흘리고 뿌려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소나무라는 소재와 한지 그리고 새롭게 구성된 배경은 분리 불가능한 강한 친화력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이 고안한 배경을 ‘여백’이라 말하고 있다. 전통적인 동아시아 회화에 있어 ‘여백’은 서구회화의 ‘배경’과는 사뭇 그 의미가 다르다.

여백은 그러지 않은 잉여의 공간이 아니라 개념의 공간이다. 작가는 소나무를 만나면서 동시에 여백을 만났다. 그래서 작가는 소나무가 서 있는 땅을 좀처럼 그리지 않는다.

오로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가지와 무성한 잎들이 작가 특유의 필치로 단숨에 그려진다. 땅을 그리는 순간 그의 화면은 원근법적인 공간이 되고 대상화된 풍경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사코 이를 거부해 왔다.

그 작품은 서구회화의 관점에서 보면 미완의 느낌이고 전통회화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배접된 한지는 캔버스와는 달이 구축적인 화면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일획으로 대상의 진실에 육박하는 사물의 외형에 주목하기 보다는 사물의 뜻을 헤어리는 것을 주요하게 여겼던 전통회화의 방법론과 더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구명본의 작업은 단순히 ‘풍경화’로 규정 할 수 없는 ‘개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있다. 만약 작가가 미적대상으로만 사물을 바라보았다면 그의 작업은 풍경화나 정물화의 법주를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대상에만 천착하는 회화라고 하기게 사물 그 자체에만 주목하지 않으며, 구상회화라 하기에 사물을 심리적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구명본의 회화가 가지는 미덕이며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특정적인 국면이다.

또한 작가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서사를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사물과 나누었던 대화를 관객과 함께 공유하고자하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소나무를 만나기 이전 초기작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는 작가의 창작의지였다.

미적대상으로서의 소나무를 넘어 자신이 어린시절 보냇던 군위의 자연과 삶의 기억을 소나무라는 대상을 통해 호출해 낸다.
그래서 구명본의 소나무는 단순한 풍경의 모티브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재구성되는 ‘오브제’ 들이다.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나무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산야에 지천으로 볼 수 있고 꾸불꾸불한 모습이 우리네 인생과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가 바로본 소나무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은유하고 있는 대상인 것이다. 그러면에서 자신의 깊은 체험에서 제시된 소나무의 형상들은 작가의 체험에서 발현된 진정성을 획득하면서 보다 폭넓은 공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작가가 제시한 소나무는 소나무라는 객관적 실재와 사의로 획득된 표상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말해 작가는 소나무라는 대상을 사실과 사이의 공간속에 놓아두고 있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비웠다.

바로 이 비워진 여백은 오로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으며 우리를 대화로 이끌고 있다. 작가의 화면은 대상과 표상사이의 더 넒은 심연을 열어 보임으로써 해석의 지평을 넓히고 있으며 혼자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상상력을 허용하고 있다. 작가는 소나무를 통해 ‘대상’과 ‘여백’의 오솔길을 만났다. 구명본이 발견한 회화적 성취는 바로 여기에 있어 보이다.

이영준(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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