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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낯선 사람들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피부가 검은 사람과 흰 사람, 눈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들이 이상한 복장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이 중에는 산업현장 여러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같았으면 볼 수 없었던 풍경이지만, 지금은 도시와 농어촌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세계는 하나다’라고 했던가.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에 수십 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 산다. 피부와 언어, 종교와 풍속이 모두 달라도 서로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의 차이로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하며 생활에 지장 없이 지내고 있다.
이를 두고 미풍양속이라 하겠다.주위에 오이·딸기로 성공한 친구가 있다. 오가며 그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친구가 하는 오이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보았다. 깜짝 놀랐다. 뜨거운 열기가 내 얼굴을 확 덮쳤다. 숨이 탁 막혀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도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구슬땀 흘리며 묵묵히 일하고 있다. 자랑스러워 보였다. 인내 열성 근면이 친구가 오늘이 있기까지 성공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노령시대에 접어들어 농촌에도 일손이 부족하여 외국 근로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다. 현지인을 고용하고 싶어도 임금이 높아 생산가격을 맞힐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쓸데없이 교만한 데가 있는가 보다. 세상은 못사는 사람한테 업신여기거나 깔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외국 근로자들을 보면 공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일찍이 타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관광한 적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이 길을 걸으면서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며 지나가도 개의치 않았다. 그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여유롭지 못하고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 근로자들을 보아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 사람들을 볼 때면 괜스레 쓸데없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그들을 무시하는 경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 친구 농장에 들렸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외국에서 온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친구가 소개해 준다. 눈인사로 답례하고 잠시 머뭇거리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우즈베키스탄 사람은 키도 크고 눈썹도 선명하고 멋있었다. 타이, 베트남 사람은 체구는 작은 편이나 눈 맵시에 머금은 미소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음에 끌려 말을 걸었다. 언제 어디에서 왔느냐? 부모님은 계시느냐? 결혼은 했느냐 하며 서툰 영어로 물어보았다. 그중 한 사람이 유창한 영어로 대답한다. 듣기에 약한 나는 그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며 들었다. 한 단어만 알아들어도 무슨 말 하는지 금방 알아차리고 말을 이었다. 느닷없이 옆에 있던 친구가 웃으면서 우리 모두 “한국말 잘해요. 제가 거짓말을 해요.” 하고 한바탕 소란을 불러일으켰다. 에끼 이 사람들! 장난쳤구나, 날 놀렸지 하고 맞장구쳤다. 구김살 없이 웃는 소박한 웃음소리에 어색하고 서먹했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친구가 말을 잇는다. 이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우리나라 추석, 설 명절 지내듯 일 년에 한두 번씩 놀려준다. 그날은 잔치와 같이 성대하다. 돼지 한 마리에 음료수며 술이며 부족함 없이 대접한다.
그들은 미안 한 듯 돼지 ‘반 마리 값은 저희가 내겠습니다.’ 한다. 그들의 마음씨는 고왔고 착했다. 어떻게 연락이 되었든지 부근에 있는 친구들을 다 불러드린다. 자기들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 맛있게 먹는다. 술에 취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고 사람 사는 세상 별다른 데 없다고 생각했다. 피부와 말이 다르다뿐이지 즐겁게 노는 분위기는 우리와 똑같더라 하며 입에 침이 마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한 근로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서 번 돈을 어떻게 하느냐 하고 물어보았다. 쓸 만큼 쓰고 나머지는 모두 고국으로 보낸다. 제일 힘든 것은? 부모·형제들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을 때이다. 결혼은? 아직 안 했는데 돈 많이 벌어서 결혼할 생각이다. 여기에 살고 싶은 생각은? 고국으로 돌아가야지요! 고국에서는 당신이 보낸 돈으로 잘 사느냐 하고 물었다. 고개를 끄떡이며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살고 있다고 자랑하듯 웃으며 말한다. 한때는 우리도 그랬다.
가난에 찌들어 잘살아 보자고 몸부림쳤던 일 있었다.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 파견했던 일 생각하며 가슴이 저리고 미어지는 것 같다. 힘든 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기에 오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도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처지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겠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생했던 그때 그 시절의 아픔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가난을 벗어나면, 지난날 가난했던 과거를 감추고 지금의 현실을 보여준다. 사람 사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이다. 갑과 을이 공유하는 세상 어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일지도 모른다.
힘없고 가난한 자를 보듬어 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한때는 우리도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는 것은 선입견이 불러일으킨 오해였다. 쓸데없는 오만과 고리타분한 편견으로 삶의 가치를 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