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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강화도 일기

admin 기자 입력 2017.08.18 10:19 수정 2017.08.18 10:19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여행은 말만 들어도 즐겁다. 2017년 7월 1일 단체에서 강화도 간다 하며 전화가 왔다. 몇 해 전 가보았던 곳을 또 간다 하니 어쩔까 망설였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사전 준비도 없이 갔었기에 머리에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쉬웠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가기로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이 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대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지, 가랑비가 소리 없이 땅을 적셔준다. 한줄기 소낙비라도 시원하게 쏟아진다면 더욱 좋으련만, 목이 타들어 가는 대지가 병아리 눈물보다 작은 물을 삼키는 소리가 애처롭다. 출발시각에 맞춰 도착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시간 개념에 신경을 써야 했다. 젊은 사람들한테 눈살을 찌 푸르지 않게 하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도 ‘왕따’ 되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벌써 다들 모였다.

앞 좌석 두 자리만 남겨놓고 꽉 찼다. 경로자리라 하며 앉힌다. 민망했으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배려에 감사 할 줄 아는 노인은 정말 현명한 노인이다. 노인은 어딜 가든지 지갑 여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행여, 남이 볼까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지갑을 열었다. 율곡의 어머니가 마중 나오시면서 반가이 손을 잡아 준다.

한나절이 가까워진다. 길길이 뛰던 더위도 힘이 빠졌던지 호흡이 거칠어진다. 허기지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만사가 싫어진다. 즐거운 여행의 맛깔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아름답게 보이던 산과 들도 한순간에 싫어졌다. 싱그럽던 푸른 나뭇잎들도 뜨거운 태양에 그만 고개를 늘어뜨렸다. 그런데도 버스는 쉬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가면서도 우리를 어느 식당으로 안내한다.

난생처음 일백만 원 넘는 음식 먹어보았다. 우리가 도착한 식당은 예약되어 있어 편했다. 넓적한 식탁 위에 중국 어선들이 떼 지어 잡으러 오는 꽃게가 먹음직스럽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옛날 임금 수라상에 올라간다는 꽃게를 맛본다는 생각에 입에 군침이 돈다. 식감은 어떤지 또 맛은 어떤지 호기심이 났다.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보았다. 해금 내 같은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회원들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아무 말 없이 신나게 먹는다. 옆에서 잘 먹는 것을 보고 움이 달아 먹지도 않는 술도 한잔하면서 따라 먹었다. 식후 혹시나 복통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아무 탈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회원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선배님! 오늘 점심값이 얼만지 아세요? 일백삼십만 원이랍니다. 뭐? 처음 들어본 음식값에 놀랐다. 음식값에 신경 쓰였으나, 젊은 회원들은 예사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대 차이일까 하며 젊음이 부러웠다.

여행은 즐거우면서도 고달프다. 숟가락 놓을 틈도 없이 버스는 출발한다. 길이 694m 되는 강화대교를 지나 갑곶돈대가 있는 넓적한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려 때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였던 갑곶돈대, 덕진진, 광성보, 초지진을 돌아보았다. 등에서 땀이 주르르 흐른다. 다른 곳을 더 보고 싶었지만, 가지 말자 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섭섭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해진다. 버스는 신이 난 듯 우리를 한숨에 바닷가에 있는 펜션으로 데려다준다. 마당에는 기다란 식탁이 있고, 그 위에는 하얀 비닐로 덮여져 있다. 비닐을 벗겨보니 게 돼지고기 새우 고구마 상치 젓갈 등 먹을거리가 풍성히 쏟아져 나온다. 서해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저녁을 먹는 등만 둥 하고 밤을 보냈다. 썰물 시간이라 인지 서해 밤이 주는 신비의 야경을 볼 수 없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앙상한 바위에서 처량히 울고 있는 갈매기 소리만 요란하다.
저녁 식사가 시답잖아서 배가 홀쭉했다. 아침에는 식성에 맞은 음식이 나와 다행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일장 연설을 한다. 어젯밤에 무서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말인즉슨 회원님들이 술을 하시면서 싸우는 줄 알았답니다. 금방 싸울듯하다가 조금 있으면 웃음소리가 나고 해서 밤새도록 잠을 한숨도 못 잤다 하며 하소연하다시피 한다. 억양이 높은 경상도 사투리는 어쩔 수 없다 하며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달리고 달리며 해서 이따금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이름난 강화도 강화풍물시장에 들렀다. 시장은 난전과 2층으로 된 건물이 있다. 난전은 어디가 나 시끌시끌했다. 순무로 만든 김치를 먹어보시오, 아싹아싹하면서도 알싸한 뒷맛이 있어요. 하며 상인들의 입씨름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건물 1층에는 젓갈, 순무 김치 등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2층은 화문석 약쑥 인삼 같은 강화의 특산물을 만나 볼 수 있는 상점들이 줄지어있다.

강화도 화문석. 꽃 화(花)자에 무늬 문(紋)자을 쓰여 꽃보다 더 진해 보였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든 솜씨에 감탄했다. 화문석은 신라 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조선 시대에는 수요가 많아 성시를 이루었다. 불행히도 구십 년대부터는 수요가 줄어 지금은 겨우 열 집 정도만 남아있다고 한다. 아쉽고 전통문화가 사라질까 걱정스러웠다.

역사의 고비 때마다 국방상 요충지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강화도! 강화도조약,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수많은 역사를 품고 묵묵히 견디어 낸 강화도에 대한 남모를 애정이 스며든다. 강화도에는 7대 명소가 있다. 마니산 참성단, 용두돈대, 전등사, 평화의 전망대, 고려궁지, 고인돌, 화문석 문화관 등이 있다. 시간에 쫓기어 미처 둘러보지 못한 역사의 현장은 다음으로 미루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울로 향했다.

강화도를 벗어났다. 비가 양동이 물 쏟듯 쏟아진다. 바짝 마른 길거리가 갑자기 쏟아지는 빗물을 감당 못 하고 연신 토해낸다. 차들은 불을 켜고 안개 속을 뚫고 달린다. 비가 걷혀진다. 먼지를 뒤덮어 쓴 나뭇잎들은 세안하고 해맑은 얼굴을 내민다. 하늘은 맑으며 솜털 같은 흰 구름이 띄엄띄엄 한가로이 떠 있다. 저 멀리 산들은 산듯하게 보이며 텁텁했던 기분이 한결 좋아 보였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반복하며 숨바꼭질하는 동안 서울에 도착했다. 설렁탕 하는 음식점으로 갔다. 도우미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본다. 삼국유사 고장 군위에서 왔습니다.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 하던데 제 고향이 바로 그곳입니다 하며 반겨준다. 회원들이 설렁탕, 도가니탕으로 하자, 하지 말자, 하며 한바탕 웃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서울 롯데월드타워에 갔다. 높이가 555m 층수가 123이다. 일부러 짜 맞춘 것처럼 숫자가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에 놀랐다.’ 입장 요금이 한 사람에 무려 이만 칠천 원이다. 거의 쌀 20kg 값이다. 식구 둘이서 한 달가량 먹고 남을 양식이다.

쇼핑몰에 들렀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내고 한국의 위상만 실감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혼미했던 머리를 식혀가며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서울 롯데월드타워에 가보았다는 것. 타워가 높고, 웅장하고, 그리고 대단하다는 것 이외는 아무 기억도 없다. 여기에 오려면 적어도 밭떼기나 송아지 한 마리 정도 팔아야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 했던가? 아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 라도 했다. 늦었다고 생각되지만, 후일에 사람다운 삶을 살면서 다시 찾아보고 싶었다.

점심 한 끼 값, 타워에 한 번 올라가는 요금 등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앞으로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늠름하고 당당한 후배들의 기상을 보면서 식어가든 열정이 불끈 솟아난다. 1박 2일 동안 회원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젊음의 피가 수혈되었던 같다. 이 순간 영원토록 간직하고 싶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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