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성보 작가 |
ⓒ N군위신문 |
살다보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공자님도 하늘천자가 막힐 때가 있다고들 한다. 난다긴다하는 난상(蘭商)이 후천성의 중투호를 그저 주다시피 하였는데, 이듬해에 올라온 3촉의 새 촉이 전부 명품에 가까운 선천성의 중투호였으니 이를 어쩌랴.
난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되는 Y선생은 사무실 가까이 있는 난가게에 고자 처갓집 가듯 자주 들락거렸다.
작년 10월이었다. 난가게의 S사장은 Y선생이 귀찮을 정도로 값비싼 색화만 만지작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아니했으나, 고객이라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있던 차에 Y선생이 값을 깍지 않을 테니 자기도 중투 하나 길러보겠다며 싸게 하나 달라고 졸랐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나도 처음엔 난 값을 많이 깎았으나 알고 보니 난은 값을 깎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모조 다이아몬드를 끼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진짜인 줄 알지만 정작 끼고 있는 본인은 가짜인 줄 알듯이 난도 남들은 비싼 것으로 알지만 가게주인은 싼값에 입수한 것도 있을 터인즉, 싸게 하나 주시오”하면서 매달렸다.
하도 조르는 통에 실내용 배양기속에 있는 후천성의 중투호의 한 촉을 30만 원에 건네주었다. Y선생이 난을 심으면서 살펴보니 5미리 정도 되는 새 촉이 묻어 있었고 작은 벌브가 하나 있었다.
Y선생은 어린 새 촉을 키울 요령으로 실내용 배양기 속에서 계속 관리했으나 새 촉은 꼼짝도 하지 않고 맞물러 있었다. 그러더니 설날 이후 새 촉이 하나 올라왔다. 후천성이 아닌 선천성의 중투였다. 이게 무슨 조화냐. 뿐만 아니라, 멈추어 있던 새 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5센티 정도 자라서는 선천성인 중투호가 완연했다. 이것만해도 좋아서 까무라칠 정도인데 5월에는 또 한 촉의 중투호가 치솟아 올랐다. 오메 좋아죽겠네, 신바람이 난 Y선생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한 촉의 후천성 중투호에서 세 촉의 선천성 중투호가 나왔으니 그 기쁨을 어디다 견주랴. 매일 그것을 들여다보느라 새벽 두 시에야 잠자리에 들 정도였으니, 그 기쁨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Y선생은 난가게에 가서 자랑을 하였으나 믿으려 하지 않았다. 초보자 난실의 미비점도 지적하여 주시고 마침 좋은 먹을 거리가 있으니 시간 좀 내달라고 뜸을 들인지 일주일 만에 S사장을 집으로 모시는데 성공했다.
평소 말이 적은 S사장은 30여분 동안 그 난 앞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그리고선 천근같은 입을 열어
“속 아프게 잘 나왔군요.”
하고 입맛을 다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횡재를 하고 그냥 있어 될 일이 아니고 양주 몇 병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안 보았으면 모를까 엄청난 명품을 3촉이나 올린 난을 본 S사장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약이 바짝바짝 오르기도 하고, 복통이 도지기도 하는 등 난을 해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안다.
여자의 마음과 개구리의 뛰는 방향은 알 수가 없다고들 하지만, 자생란의 새 촉이 보여주는 변화도 알 수 없기로는 마찬가지다.
사족이긴 하나 뒷날 Y선생이 S사장에게 답례로 보낸 꽤 유명한 양주는 가짜였단다. 가짜(?)라 홀대한 난은 진짜가 올라오고 진짜인줄 알고 보낸 양주는 가짜였으니 정말 묘한 데가 많은 게 세상일인 것 같다.
한 촉만 있을 때는 후천성같이 보이는 별 볼일 없는 난도 세력이 붙으면 역도의 전병관 선수 같은 괴력을 발휘하여 누구나 껌뻑 죽는 선천성도 올려주는 것이니 애정을 가지고 난을 길러 볼 일이다.
글쓴이: 이성보
-저서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