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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보 작가 |
ⓒ N군위신문 |
살다보면 원숭이도 나무에미지의 세계를 누구나 동경하고 있듯이 자생란을 하는 사람이면 열이면 열 모두 다도해의 무인도를 동경하고 있다. 그곳엔 영악한 산채꾼의 손길이 닿지 않아 명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리라. 그러나 가급적 빨리 그런 꿈에서 깨어나는 게 상책이다.
무인도도 옛날 얘기가 된지 오래이며, 행복의 파랑새는 저 산 너머에 있는 게 아니고 항상 주변에 있듯이, 명품은 무인도에만 남아 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뻔질나게 다니는 산채 길의 어느 한 곳에 임자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S은행의 P차장은 역마살에 관한 한 2등가라면 서러워서 삼년은 울 사람이다. 키가 짤막이에 가까워 박소평이라 불리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남자의 짤막이 여부는 키가 문제가 아니고 옷을 벗어봐야 결정할 수 있다고 거시기에 대한 긍지가 대단한 사람이다.
수석에는 도가 텃으나 난은 늦게 입문하여 청맹(靑盲)으로 골빈당에 입당하였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난을 보는 안목도 상당한 수준이다.
골빈당의 L당수가 P차장의 전화를 받은 시간은 밤 11시경이었다. 혀가 꼬부라진 P차장의 전화용건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일 산채를 갈 것이니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토록 술에 취하여 어떻게 가겠느냐며 빨리 집으로 가서 눈을 좀 붙이라”고 하였더니,
“국향을 세 사람이 스물 네 병째 마시고 있는데, 두어 병 남은 것만 마시고 곧 일어서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은 목요일이지만 개천절 공휴일이라 산채를 가기로 하였으나, 약속시간인 새벽 4시에 P차장만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지가 무슨 장사라고 이 시간에 나오겠느냐며 출발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인정상 십분 정도만 기다려 주기로 했다.
출발여부를 전화로 확인하여 보니 P차장의 어부인께서
“술에 떡이 된 채 자다 말고 산채를 가겠다는 양반을 처음에는 말렸으나 역마살이 낀 바깥양반이 말린다고 안 갈 사람도 아니며, 자기 때문에 산채를 못가는 날이면 종일 사람을 들볶는 경우를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어서 택시기사에게 신신당부를 하여 보냈다.”는 것이었다.
행여나 하고 잔디밭에 신문을 덮고 자는 사람의 신문을 들추니 사방에다 술 냄새를 풍기며 P차장이 코를 골고 있었다.
택시로 사당역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이 너무 일러 잠을 잤다는 것이다. 맙소사.
구례 읍내를 벗어나 섬진강을 끼고 곡성 쪽으로 향하여 가던 중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곧장 뒷좌석에 누워 있던 P차장이 입을 손으로 막고 차를 멈추라고 서두는 낌새가 심상치 않아 급히 차를 세웠더니 전날 일식집에서 잘 먹은, 그 아까운 음식을 한말이나 토해 내었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면 앞좌석에 앉은 사람이 날벼락을 맞을 뻔 했다.
목적지에 도착 후 수지침으로 응급조치를 한 후 산에 올랐으나 P차장은 산 초입에서 똥물까지 쏟아내었다. 겨우겨우 100여 미터 정도 올라서는 소나무 그늘에 드러눕고 말았다.
얼마나 발진하였는지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을 피할 기력이 없었다고 한다. 약간만 몸을 들어도 될 일이련만 그것마저 힘들여 꼼짝 못하고 있었다니 다한 말이다.
점심 때 쯤에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는 구례까지 온 걸음이 아까워서 행여나 하고 작은 소나무 밑의 잡목을 갈쿠리로 헤쳤더니 ‘붕’ 하면서 벌이 쏟아져 나왔다.
‘이크’ 하면서 꽁지가 빠져라 하고 냅다 아래로 뛰었는데 어디서 뛸 힘이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길로 산채를 포기하고(베스타)에 누워 있으려니 늦게 하산한 두대(頭大)선생이 대추벌에 쏘여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갔다.
뒤따라 구례읍내에 있는 병원에 가보니 두대선생이 응급실에서 해독용 링겔을 맞고 있었다. 대추벌은 독사처럼 맹독을 지니고 있어 늦게 손을 썼더라면 큰일 날 뻔한 일이었다. 일행들은 P차장더러 두대선생 옆에 누워 링겔을 맞으라 성화였다. 다들 남자의 심볼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인지라 기회 있을 때마다 숫캐 무엇 자랑하듯 거시기를 자랑하는 두대선생과 P차장에게 주눅이 들어있던 차에 두 사람이 나란히 뻗어 꼴사나운 모양을 즐기려는 수작 같아서 한사코 링겔 맞는 것을 거절했다.
두대선생이 링겔을 맞는 동안 병원 뒷골목에 있는 삼겹살 식당으로 가서는 옆방에다 P차장을 눕혀 놓고 주인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이 사람 약간 햇가닥한 사람이니 없어지지 않도록 잘 지키세요.” 하고 당부를 하는 게 아닌가.
몸 아픈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면서 한다는 소리가,
“두 X쟁이가 뻗어 있으니 모처럼 술맛이 난다. 오늘 두대 선생은 완전히 갔으니 이후 칠봉선생으로 부르기로 한다. 칠봉은 벌에 일곱 방 쏘였다는 뜻이다.”
라면서 술잔을 부딪치며 야단이었다.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는 청각과 후각을 괴롭히고, 몸은 말을 듣지 아니하여, 지옥과 같은 순간들을 참고 견디자니 죽을 지경이었다. 그때의 순간을 회상하면서 P차장은 분해서 지금도 이를 갈고 있다.
이윽고 칠봉선생을 싣고 서울로 향하는 차속에 탈진한 상태로 누워 있으려니 C총무가 “부친의 친구 되시는 분이 정년퇴직 후 노화도에서 농장을 경영하시는데 초대를 받은 부친께서 돌아오시면서 난을 여남 촉 캐왔는데 그중에 사피와 호가 섞여 있었다.”
면서 2박 3일 일정으로 노화도로 가자는 말을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노화국민학교에 난을 아는 선생이 있는데 소장하고 있는 중투 등은 방학기간 중 아이들에게 난의 무늬를 설명하고 과제물로 난을 캐오도록 한 것이라는 말까지 곁들였다. 구미가 당기는 솔깃한 얘기를 듣고는 다들 가고 싶어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S총장과 K선생만 가기로 하여 3일 뒤인 토요일 오후에 출발키로 하는 것 같았다.
누워 생각하니 자기에겐 한마디 상의도 없는 것이 서운키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였으나 나를 빼고 너희만 갈 것 같으냐면서 가물가물 거리는 정신을 붙들어 매느라 안간힘을 썼다.
다음 날 S총장에게 시치미를 떼고 토요일 어디 가느냐고 전화를 했더니 노화도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백만 우군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함께 가기를 권했다. P차장은 못이기는 체 같이 가기로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금융기관에선 휴가 얻기가 쉽지 않으나 문중에 일이 있다며 월요일 휴가를 얻었다. 만만한게 홍어 무엇처럼 직장인들이 둘러대는 데는 조상 이상 없다.
P차장은 아직 성치 않은 몸으로 토요일 일찍 귀가하여 2박 3일의 일정으로 산채를 가겠다고 행장을 챙기니 엊그제 공휴일 다녀왔으면 됐지 그 몸으로 또 가느냐면서 어부인께선 눈에 눈물이 글썽 거렸다.
골빈당 당직자가 모두 가는데 나만 어찌 빠지겠느냐고 부인을 달랬다.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를 가는 도중 호주머니를 만져보니 바지에 넣어 둔 돈이 없었다. 쓰기 좋도록 만원, 오천 원, 천 원권을 신권으로 바꾸어 십만 원을 챙겨 넣었는데 없어진 것이다. 집에다 전화를 해보니 바지를 바꿔 입은 것으로 갑자기 십만 원의 수입이 생긴 어부인은 금방 깔깔거리며 좋아하더란다. 여자들은 그저 돈만 있으면 만사가 띵호아인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S총장의 승용차 편으로 P차장, K선생, S총장의 산악후배 한 사람, 도합 네 사람이 야무지고 야무진 명품에의 꿈을 싣고 노화도를 향하여 힘껏 악세레다를 밟았다,
장성에서 일박을 하면서 지도를 살펴보니 노화도는 작은 무인 도같은 섬이었다. 가기만 하면 중투 몇 촉은 따논 당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난을 잘 모르는 칠순 가까운 노인이, 국민학교 어린이가 명품을 캐었는데 하물며 악바리 골빈당이 나섰는데 이를 말인가. 빨리 가자 어서가자 노화도야 게 섯거라.
새벽같이 완도 여객선 터미널로 차를 몰았다. 관광철이라 보길도행 관광객이 많아 예약을 하지 않고는 첫 배를 탈 수 없었으나 매표소의 아가씨에게 중매를 해준다며 온갖 아양을 다 떨은 끝에 겨우 표를 구하여 노화도행 여객선에 승선을 했다.
노화도는 유명한 보길도, 소안도와 더불어 소안군도(所安群島)를 이루고 있는 섬으로 행정구역상 명칭으로 전남 완도군 노화읍이다.
술독에서 완전히 회복된 몸은 아니지만 푸르고 푸른 남쪽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노화도에 닿기만 하면 생선회는 말할 것도 없고 중투는 바글바글 할 것이란, 생각만 하여도 자지러지도록 흥분되는 일들이 앞으로 전개 될 것이니 째지는 기분을 어쩌지 못해 나이를 잊고 선상에서 휘파람을 불어 대었다.
여객선은 보길도에 먼저 닿았다. 고산 윤선도 선생으로 널리 알려진 보길도련만 관광이 문제가 아닌지라 보길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점차 노화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왠지 이상한 감이 들기 시작했다.
손바닥만한 노화도려니 생각했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노화도는 거대한 육지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는 사이에 여객선은 노화도의 이포리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하선하여 주변을 바라보니 막막했다.
어디를 가서 중투를 찾는단 말인가. 이 넓은 노화도에서 중투 찾기란 서울의 김 서방 찾기와 다를 바 없었다.
일단 도청리 쪽의 음악산으로 올라갔다. 춘란의 자생여건이 나빠 보인다면야 그러려니 하련만 정남향의 아름드리 소나무 밑엔 중투는커녕 민춘란 한 포기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김새는 마음을 모질게 다지며 30여 분을 살펴보았으나 헛일이었다. 여기저기서 하산하자는 신호가 들려왔다.
하산하여 도로변에서 갈 곳 몰라 하던 일행들은 택시를 만났다. 택시 기사에게 혹시나 하고 난이 있는 곳을 물으니 자기도 전에 수석과 난을 하였다며 옥산 쪽으로 실어다 주었다. 그곳에도 간혹 명품이 나왔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택시 기사와 돌아올 시간 약속을 하고는 산에 올랐다. 음악산과는 달리 지천에 민춘란은 항하사(恒河沙)만큼이나 깔려 있었으나, 아무리 찾아도 누리끼리한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 곳에 보니 파란점이 찍혀있는 사피가 몇 포기 보였다. 뚜렷하지는 않으나 무엇인가 될 것 같기도 했다. 망설임 끝에 혹시나 하고 캐어서 챙겨 넣었다.
뱀을 싫어하는 S총장은 또아리를 틀고 있는 독사에 혼비백산해 일찌감치 하산하여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P차장도 뱀을 네 번째 만나고서는 오금이 떨어지지 아니하여 하산키로 했다. 옆에 있던 K선생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폈으나 별무소득이었다.
P차장은 아직도 2박 3일 중의 하루가 남아 있는 지라 내일 아침부터 인근 무인도를 뒤지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었으나, S총장이 정나미가 떨어지는지 노화도에서의 철수를 강력히 희망하여 철수키로 했다.
이포리 선창가에서 마지막 여객선을 기다리며 모듬회로 섭섭함을 달랬다.
바다를 빨갛게 물들이는 낙조를 바라보다 불가에서 말하는 성(成), 주(住), 괴(塊), 공(空)으로 움직인다는 물질의 법칙이 생각났다. 저 바닷물은 이중 무엇일까. 성, 주, 괴, 공이 동시에 용해된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역마살에 이골이 난 자신이 비록 공탕은 하였으나 조용히 자기세계에 빠져드는, 알 수 없는 어떤 행복감이 전신에 차 오름을 느꼈다.
S총장은 후배와 함께 다음날 곡성에서 산채를 하겠다며 떠나고 P차장과 K선생은 가까스로 광주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광주의 여관에서 너무 명품을 만났기로 하루 앞당겨 가게 되었다고 집에다 전화를 했다.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
“사피 같은데 내일 당수님께 감정을 받아야겠다”고 했더니
“당직자가 다 같이 갔다며 무슨 소리냐?”고 하여 찔끔 놀랐으나
“지금 선을 보이면 모두가 쪼개 달라고 할 테니 내일 몰래 보일 거라”며, 얼버무려 위기를 넘겼다.
다음날 사당동 마라도란 횟집에서 이끼에 곱게 싼 노화도 사피를 본 L당수는 차마 버리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한번 길러보라는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부풀었던 노화도의 꿈도, 크게 가지지는 않았지만 사피에의 마지막 기대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멍하니 앉아있는 사이에 꽤 비싼 생선회 값도 공탕을 위로하느라 L당수가 계산을 했다.
눈을 감고 있으려니 빨갛게 바다를 물들이던 노화도 이포리의 선창가 낙조가 떠올랐다. 탐(探)을 삼독(三毒)의 하나라고 했던가.
자괴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글쓴이: 이성보
-저서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