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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왜였을까. 그 집 앞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삶의 운명은 이름 석 자에 달렸다고 생각하며 무작정 그 집 대문을 두드린다. 인간의 지혜로 할 수 없는 것은 이름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뿐만 아니다. 인간의 본능인 것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고 쓴 현수막이 도심지 고층 아파트에 나부낀다. 해 질 녘에 비친 글씨가 유난히도 선명하다. 사람들 사이에는 이름 짓는 것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름과 호는 그 사람의 운명을 짓는다 하면서 좋은 이름 가지기를 원한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에게 부르기 쉽고 친구들 사이에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이름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내가 다 지어주었다.
어느 날 잘 알고 있던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다. 반갑게 안부 물으면서 그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야기하다 말다 갑작스레 지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런지 영문도 모르고 짧은 만남으로 헤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사업이 잘 안 되어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옛 이름을 불렀으니 얼마나 듣기 싫었으며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할수록 민망하고 쑥스러웠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 있다. 어려움이 닥치면 애꿎은 이름만 탓하고 고치기 일쑤이다. 하루는 집안 조카가 찾아와 집안에 우환이 자꾸 생겨 조상 묘 터를 탓하며 다른 곳으로 이장하려고 한다고 한다.
후손들이 잘되려고 하는 일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오죽하면 대통령후보자도 선영의 묘를 이장하는데 하물며 내정도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막상 그러하려니 괜히 마음이 켕기고 편하지 않았다.
삶과 이름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세상사에는 크고 작은 단체가 있고 그 단체의 이름도 있다. 정치에도 당이 있고 그 당의 이름도 있다. 당에 어떠한 위기가 있을 때마다 새 당명으로 바꾸는 것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한다. 당명을 바꾼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왜인지 알 수 없다. 하기야 정치적 철학과 시대적 과제로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름은 달라도 그릇에 담긴 내용은 항상 변함이 없을 진데 라고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주위 환경에 따라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다.
당시에는 생활고와 아들을 낳았어도 콜레라 병으로 죽고 해서 호적에 올리지 않고 기다렸다가 이삼 년 후에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같은 동기라도 나이 차이가 컸다. 코흘리개 때는 몰랐지만 중늙은이 들면서부터 이름 부르기가 껄끄러웠다. 늦었지만 이름 대신 호를 지어 부르기로 했다.
호는 이름 석 자 부르기보다 편했으며 부인이 살았던 지명을 따서 지었다. 한참 동안 부르기가 어색했다.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부를 수 있어 서로가 위안이 되었다. 호는 이름보다 부담 없이 부를 수 있어 좋고, 다정다감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친구들 사이에도 더욱 친숙감이 들었다.
형 둘, 누나 둘이 있다. 형들은 족보에 따라 돌림자로 이름을 지었는데 내 것은 돌림자가 아니고 엉뚱한 획으로 이름을 지었다. 형들은 수(洙)자 돌림이고 내 것은 수(水) 자다. 초등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보면 학년마다 이름 획이 다르게 적혀있다. 정정하고 결국 졸업장에는
본래의 내 이름으로 되었다.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네 형은 족보상의 항렬자로 되어있는데 너의 것은 되어있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들이 틀림없다 하며 놀림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가 일정 양식을 갖추어 면사무소에 신청하였는데, 담당 직원 실수로 획수가 다른 이름으로 기제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내 운명을 결정지어 줄 이름이 되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큰 우환 없이 살아왔던 것만도 이름이 좋아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일남 이녀를 키우면서 애들한테 지워준 이름이 괜찮아야 할 텐데 하고 마음속으로 늘 걱정했다. 잘되면 제 탓이라 하겠지만,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릴까 괜스레 걱정도 되었다. 인생 백 세 세대라 한다. 중늙은이가 된 지금, 지나온 과거가 가끔 떠오를 때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조상이 지어준 이름 석 자 가지고 여기까지 살아왔던 제 모습을 뒤돌아보면서 조상의 음덕에 늘 감사히 생각한다.
개원했는지 수십여 년이 지났다. 처음 개원할 때 만 해도 병원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고민했다. 기존 병원도 있고 해서 좀 색다르게 짓고 싶었다. 주민들이 기억하기 쉽고 빨리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찾아보았다. 대구라는 이름이 언뜻 떠올랐다. 당시 대구는 선망의 지명이기 때문이다. 형들은 그것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지 않을까 하며 제안했다.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내가 지은 이름으로 택하여 무사히 지내왔다.
늙으면 눈도 밝아지고, 흰 머리카락도 검은 머리카락으로 변한다는 말 있다. 그래서 그런지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 병원 이름은 퇴색되지 않고 예전보다 더 빛나고 반짝여 보였다. 자식들도 내가 지어준 이름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면 감사하고 마음이 흐뭇했다.
조상이 지어준 이름으로 우리 가정은 늘 화목하고 환한 웃음으로 지내고 있다.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명패를 어루만지며 지난날의 추억거리를 더듬어 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