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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만 원장 |
ⓒ N군위신문 |
내 고향의 얼굴 군위신문 창간 22주년을 진심으로 축하 한다. 사람 나이로 치면 22세는 대학 3학년에 해당 한다. 가장 좋은 때다. 당장 취업걱정은 안 해도 되고 연애하기도 대단히 좋은 때다.
군위신문은 1995년 10월 5일 창간하였다.
사람 부족 돈 부족 속에 강산이 두 번 변하고 22년이 흐르는 동안 꾸준히 신문을 발행 해온 사공화열 사장한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군위신문은 군위군의 얼굴이다. 얼굴은 사람을 대표 한다. 여권이나 이력서에 붙는 사진도 전신이 아닌 얼굴 사진이다.
얼굴엔 눈, 코, 입, 귀가 있다. 보고 냄새 맡고 말하고 듣는다.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알 수가 있다. 한 달에 두 번 배달되는 군위신문을 보면 고향의 실정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군수, 군의회의장, 국회의원, 도의원, 군의원의 동정과 활동사항을 소상히 알 수가 있다. 대구공항이 유치 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있더니, 내년 6월이면 임기가 끝나고 심판을 받을 군수를 주민투표로 소환해야 한다는 우울한 보도도 있었다.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장 인준이 2표차로 안되었고, 군위군수 소환 주민투표는 22표차로 안되었다고 신문 방송에 크게 보도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소식은 기분이 좋고 고향이 군위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나쁜 소식을 접할 때는 고향이 군위라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랴. 앉은뱅이 앉아서 용쓴다고 객지에 있는 향우들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군위군의 면적은 서울특별시의 면적 605.25km2보다 큰 614.16km2 이다. 인구는 서울이 991만4천여 명인데 군위군은 고작 2만4천여 명이다.
인구 수로는 말이 군(郡)이지 그야말로 손바닥 만 한 군위군인데 군수 선거로 인해 10년도 넘게 여러 햇동안 두 패로 나뉘어 천만 서울시보다 더 시끄러우니 객지에 있는 군위인들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름도 바꿀 수가 있고, 국적도 바꿀 수는 있지만 고향은 바꿀 수가 없다.
군위군은 인구수 2만4천여 명에 유권자수는 2만2천여 명이다. 공항이라도 유치되지 않고 이 상태로 가다가 어르신들이 별세하면 군위군은 없어질게 불을 보듯 뻔하다.
과거 대구는 서울 부산 다음으로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공항이 있는 인천에 크게 밀렸다.
또 김해시도 구미시에 크게 뒤졌으나 지금은 공항 때문에 김해시가 구미시보다 인구가 훨씬 더 많다.
군위군은 좋은 기회를 한 번 놓쳤다.
박영언 군수가 3선 임기 마지막에 구미시 편입을 강력하게 주창하여 구미시의회는 통과 되었으나 군위군의회는 부결되어 구미시민이 못되었다.
그것은 국회의원 군수 도의원 권력욕 때문이었다는 것을 대부분의 군위인은 안다.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고향 군위군을 사랑한다면 눈앞의 사사로운 욕심을 버려야 한다.
백년 후 천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고향을 사랑한다. 그래서 아호(雅號)도 스스로 고향마을 원산리를 따서 원산(元산) 이라고 한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죽으면 선산이 있는 고향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고향을 위해서 별로 한 것도 없이 고향땅에 눕는다는 게 염치가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정말 쏜살같이 흘러간다더니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20주년 축하 칼럼을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오늘의 군위신문이 있기까지는 발행인과 몇 명 안 되는 직원의 공이 제일 크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각급 기관단체를 비롯한 군민, 출향 군위인들의 공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군위신문 애독자들은 신문 발행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돈이 투지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연간 구독료 3만원을 송금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10만 원 짜리 광고 하나라도 보내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며 상부상조로 살아가는 것이다. 티끌모아 태산으로 작은 정성이 모아지면 큰 힘이 될 수가 있다.
앞으로 창간 25주년, 30주년, 100주년이 될 수 있도록 무궁한 발전을 기원 한다.
이수만 언론인
한국컴퓨터속기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