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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군위신문 |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하였다고 연일 방송한다. 양계 농가들은 울상이 되어 지난날의 아픔을 되새기며 망연자실해 있다.
가정에서는 달걀값을 걱정하며 주머니 사정을 살핀다. 상가에서는 달걀이 없어 팔짱을 끼고 멍하니 앉아있다. 하루아침에 경제가 마비된 것 같다. 온 국민은 양계 농가들의 고통과 아픔을 같이하면서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AI는 닭·오리 칠면조 등에 발생하는 치명적이고 무서운 전염병이다. AI란 조류인플루엔자를 말하며 조류독감이라고도 한다. 영문으로 표기하면 Avian Influenza이다. 이를 줄인 말이 곧 AI이다. 이병에 걸리면 10일 이내 거의 ‘떼죽음’을 당한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종이 된 것을 말하며 이것은 사람에게도 감염을 일으킨다.
방역 선의 창시자 프랑스 내과 의사인 아드레앵 프루스트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국경을 넘어 국제방역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발생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공동으로 방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생은 주로 감염된 철새의 배설물에 의하여 일어난다. AI 전파는 발생한 농장을 출입한 차량과 종사원들 그리고 AI에 감염된 닭고기, 오리고기, 생계란 등에 의해서 전파된다. AI는 접촉으로 전파되지만, 공기로는 전파되지 않는다.
외국에 다녀온 적 있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출입국은 인산인해이다. 입국절차를 밟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출입국 관리자가 “축산업에 종사하시는 사람은 소독하고 나가시기 바랍니다”하고 마이크로 계속 방송한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나는 빨리 나오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다. 하지만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 딴소리하는 것 같아 머리를 긁적이면서 계면 적어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느닷없이 고성이 터져 나온다. 축산과만 나왔다는 것뿐이지 내 직업은 축산업이 아니다. 왜 소독을 해야 하나 하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틈을 타 얌체 없는 사람은 빨리 나가려고 새치기하느라 분주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왜 새치기를 하느냐 하며 소독실 입구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세상인심이 아무리 야속하다고 하지만, 이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양계 농가들은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생활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다. 남이야 어떻든 나 몰라라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공무 수의사들은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홍역을 치른다. 발생지역 곳곳에 소독실을 설치해 놓고 밤을 꼬박 새운다. 축산차량과 닭의 이동을 금지하며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다. 진료업무를 하는 수의사들의 차량은 몇 해 전부터 족쇄처럼 위치파악장치 GPS를 달고 다닌다. 이곳저곳 다니며 진료하는 도중에 혹시 병을 옮길지도 모른다고 하며 달고 다녀야 했다.
병의 발생 근원지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수단과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뿐만 아니다. 차량 유리 앞면에는 노란 바탕에 빨간색으로 축산시설 출입 차량이라고 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소독과 방역을 빠짐없이 했음에도 때아닌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에게 위안을 주며 달랬다.
닭의 생애를 그려 보았다. 손바닥만 한 닭장에 갇혀서 사료와 물을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 기계처럼 알만 낫고 바깥세상 구경이라곤 엄두도 낼 수 없다. 감옥 생활과 다를 바 없다. 주인이 사료를 주면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겠지만, 그마저 볼 수 없다. 사료 주고 달걀 모으는 일은 기계가 다 하기 때문이다. 캄캄한 세상에 살면서도 주인이 그리워 꼬끼오~ 하고 불러도 소식 없다.
하염없이 애타게 기다리는 닭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였다. 병들고 힘없이 처져 있을 때 그 제사야 주인은 알아차리고 소독하고 예방하고 부산을 떤다.
세상모르고 사는 순박한 닭장에 엉큼한 조류인플루엔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든다. 무서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따스한 닭의 피 속에서 자리를 잡는다. 하루 이틀 지나자 닭의 몸에 이상이 생긴다. 얼굴이 붓고 열도 나고 벼슬도 파랗고 나른해 보인다. 사료도 덜 먹고 알도 낳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인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미운 오리 새끼처럼 그냥 살처분해버린다.
이 병에 걸린 닭·오리를 매몰하는 광경을 보았다. 주인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멍청하게 서 있는 닭에게 세상 밖을 구경시켜준다고 꼬드겨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철문이 덜컹 소리 내며 스르르 열린다. 이윽고 대문이 열린다.
대문 바로 앞에 으리으리한 트럭 한 대가 묵묵한 표정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다. 닭들은 세상 밖을 나오자 정신을 못 차린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차를 타고서 제 세상 인양 날갯짓을 하며 떠들어 댄다.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분이 좋아 닭들은 꼬끼오하며 목청을 까짓것 높인다. 어떤 놈은 옆에 있는 놈의 벼슬을 쪼아댄다. 어떤 놈은 날개를 펴 옆의 놈 얼굴을 후려친다. 가지각색으로 흥얼거리며 장난질한다.
매몰 장소에 이르자 시끌시끌하게 떠드는 놈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머리를 쳐들고 눈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머리를 친구들 다리 사이로 파고든다. 차량이 뒤를 추어올린다. 닭들은 내려가지 않으려고 날개를 펴 퍼덕거리면 몸부림친다.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힘없이 작별인사를 한다. 그 자리에는 금세 적막감이 흐른다. 수많은 울음소리가 가슴을 찢는다.
겨울에 함빡 눈이 무릎까지 내렸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철새들이 비행기 편대처럼 날아온다. 땅이 꽁꽁 얼어붙어 먹을 것이 없다. 사람들은 내년에 또 오라고 눈 위에 먹이를 뿌려준다. 철새들은 정신없이 쪼아 먹는다. 편대를 지어 날아오는 모습, 예쁘게 단장해 있는 모습, 먹이를 먹는 모습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데도 왠지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
온 국민이 분개한다. 먹이를 주고 보호구역까지 만들어 주면서 보살펴 주었다. 그런데도 철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잠자리마다 이를 퍼뜨려 놓았다. AI는 닭에 치명적일 것뿐만 아니다. 사람까지 위협을 주고 있다. “창과 방패”가 되었다. 이전투구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