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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보 작가 |
ⓒ N군위신문 |
같이 산채를 간 일행 중 한 사람이 엄청난 명품을 만나면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누구나 배가 아프게 마련이다. 모르긴 해도 공자님도 배가 아프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러한 감정을 삭이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어야 난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명품을 만난 행운아가 일행들의 집중되는 축하주에 알딸달해 있는 사이에 몰래 뒷촉을 떼거나, 아니면 난을 통째 감추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1989년도 장성에서 서울까지의 봉고차 속에서의 일이다. 담양에서 3촉의 대중투호(大中透縞)에 가까운 넓은 잎의 중투호를 만난, O시의 L씨는 장원 턱을 장성 통식당에서 푸짐하게 내었다. 당시 통식당에 먼저 와 있던 필자도 그 난을 보았는데,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대단한 명품이었다. 2촉은 성한 촉이고 1촉은 잘리었으며, 백벌브가 몇 개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난력이 오래지 않는 L씨는 난의 선배 모씨에게 먼저 백벌브를 한 개 떼 주어 그간의 배려에 답했다.
귀갓길의 차 속에서까지 축하주는 계속되었고 명품을 돌려 가면서 감상하였으나, O시에 도착 후 L씨가 난을 건네받았을 때는 앞의 성한 촉 2촉만 달랑 남아 있었다.
차속의 어둠을 이용하여 누군가 몹쓸 짓을 한 것이다. 당시는 누구의 소행인지 몰랐으나, 당사자가 뒷날 자랑삼아 하는 말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은 Y씨는 모씨가 난의 백벌브만도 못해 보이더란다. 아무렴 사람이 난의 백벌브만도 못할까만 그런 짓을 했다면 그럴 만도 하다. 훔친 백벌브에서 나온 새 촉을 서울의 모 난상이 거금을 주고 사갔다고 한다.
또 다른 얘기다.
난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아니한 K선생이 전북 고창군 성내면으로 혼자 산채를 가서는 운 좋게도 백벌브가 한 움큼 붙어 있는 백중투(白中透) 1촉을 캤다. 신바람이 나서 누군가에게 자랑을 해야겠는데 상대가 없었다.
차를 몰고 큰 길 쪽으로 나오다 봉고차로 산채를 온 여러 명의 산채꾼들을 만났다. 입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차를 세우고는 백중투를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그 사람들에게 차례로 감상을 시킨 후 난을 돌려받고 보니, 난이 흐느적거리는 것 같았다. 잎을 약간 당겨보니 쏙 뽑혀 올라왔다. 목이 부러진 것이다.
자고로 여자와 사기그릇은 탈이 나거나, 깨어지기 십상이라서 내돌리지 말라고 했는데, 하물며 그 여린 명품을 허탕한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였으니,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아무리 허탕을 하였기로 그 귀한 남의 명품을 분질러 놓다니, 고약하다 그 심보여.
‘쯧쯧쯧….’
그래도 분질러 놓은 것은 다음 얘기에 비하면 약과다.
2년 전, 어느 난가게에서 회원을 모집하여 버스로 장성군 삼계면으로 산채를 갔다.
집합장소에서 품평회가 열렸다. 복륜(覆輪)를 비롯하여 호(縞), 축입(蹴?), 산반(散斑), 소심(素心) 등, 그날따라 수확이 만만찮았다.
장원은 새끼손가락만한 생강근 2개가 붙어있는 5센치 정도의 1촉짜리 백호(白縞)가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비록 1촉이었지만 장래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장원을 한 J선생은 귀로에 농협 간이연쇄점에서 장원 턱으로 맥주를 두 짝이나 싣고, 안주를 장만하느라 장시간 오징어를 구어야 했다.
버스에 올라서는 앞좌석에서부터 차례로 맥주를 따라 주면서 장원의 기분을 내었다. 그 사이에 그 백호도 돌려가면서 감상을 하도록 하고 축하를 받았다.
장성 톨게이트를 지날 무렵, 장원을 한 난을 돌려받고자 했으나, 아무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급기야는 차내 방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난은 나오지 아니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한 사람이 그 난에 붙어 있던 생강근 한 조각을 내 놓으면서 생강근을 떼어 낸 것이 아니며, 자기 손에 왔을 때는 이미 떨어져 있길래 행여 새 촉이 나올까 하여 챙긴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배낭까지 뒤집어 보이며 결백을 주장했다.
없는 돈을 털어 장원 턱까지 내었는데, 난이 없어지고 보니 그 사람의 기분은 불문가지다. 일일회원으로 모집한 산채꾼들이고 보면 별 별 사람이 다 모였으리라.
하도 명품이라서 산신령님이 도로 회수한 것 같다고, J선생을 위로 했지만, 너나없이 의심을 받는 것 같아서 떨떠름한 기분을 내내 감출 수가 없었단다.
술기운을 빌어 남의 난을 감추었는지 모르겠으나, 흑싸리 쭉지보다 못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까 거름지게 지고 따라 가는 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난을 기르기에 앞서 바른 마음가짐부터 가져야 하리라 본다.
사무사(思無邪), 왠지 오늘따라 그 말이 떠오른다.
“난(蘭)이여! 난(爛)이여! 난(難)이여! 난(亂)이여!”
▶글쓴이: 이성보
-저서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 「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 「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