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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신비롭고 경이롭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의 모습은 변함없다. 누구와 약속이 있었는지 아니면 타고난 천성일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끈기 있게 견디어 온 인내력에 깊은 관심이 간다.
그의 모습을 본다. 가까이 있으면 크게 보이고 떨어져 있으면 작게 보인다. 웃으면 따라 웃고 화낸 얼굴을 하면 따라 그대로 흉내 내듯 한다.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마다 따라 한다.
그럼에도 사각지대에 있는 것은 볼 수 없다. 나의 겉모양은 볼 수 있지만 속은 들여다볼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에 수십 번 들여다보아도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짓궂은 장난을 쳐도 가만히 보고만 있다. 어느 때는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서 있으니 왠지 겁이 나고 무서웠다.
세월이 흘러 기억조차 어스름하다.
한국반공연맹 각 시도군 지부장들이 청와대를 방문한 적 있었다. 별나게도 대통령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앞면에 걸려있던 거울이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유심히 쳐다보고 있을 때 뒤에서 대통령이 웃으면서 서 있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없어졌다. 환상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거울은 지켜보고만 있다. 대통령은 거울을 볼 때 웃는 얼굴로 보는지 아니면 찡그리는 얼굴로 보는지 알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거울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대통령한테 전할까 걱정했다. 동료에게 물어보았다. 거울은 입이 무거워 아무한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듣고 안심했다.
그가 시집간 집이 목욕탕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옷을 벗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민망해서 볼 수 없어 손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보았다. 오동통하게 살찐 사람, 살이라곤 한 줌도 없는 말라빠진 사람, 육체미가 넘치는 건장한 사람을 보았다.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세월이 흐르자 생각이 차츰차츰 무디어져 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옷 벗는 모습이랑 귀신같이 말라빠진 나신들이 눈에 어른거려 밤잠 설칠 때도 많았다. 입이 쇠보다 무거웠다. 세상에 희한한 일을 매일같이 보아도 혼자만 알고 지낸다.
뉴질랜드 다녀와서 복통으로 고생했다. 회복도 안 된 상태에서 또 중국에 갔다. 긴 여행의 피로가 겹쳐 만사가 귀찮았다. 즐겁고 재미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동행인들은 관광하러 나가고 홀로 방에서 피로와 싸우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사이 몸무게가 10kg 넘게 빠졌다. 몸이 나른하고 입맛도 잃고 머리가 빙빙~ 돌고 현기증이 났다. 이를 때는 따뜻한 물이 최고라 했다.
목욕탕에 갔다. 집에서 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목욕탕 옷장에 있는 대형 거울에 비치는 발가벗은 나를 땀구멍까지 보여준다. 목은 황새 같고 허리는 개미 같고, 몸은 한 달 동안 밥 한 톨 얻어먹지 못했던 것 같았다. 민둥산처럼 살이라고는 한 줌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은 이렇게 해서 수명을 다하는구나 하고 씁쓸한 웃음 지으며 목욕탕을 빠져나왔다. 내 모양이 이 꼴인데도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다. 세상에 이렇게 미련한 것도 있는가 하고 생각했다. 나도 미련하고 어둔하지만 나 보다 더 했다.
딸이 시집가던 날, 거울 앞에서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는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딸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딸이 남겨두고 간 책이랑 인형이며 여러 물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딸이 즐겨 쓰던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여기저기에서 묻어난다. 책상 귀퉁이에도 주인 잃은 거울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울 앞에 서면 시집간 딸 생각이 난다. 남자의 눈물은 일생에 세 번뿐이라 했는데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밖으로 나왔다.
환한 얼굴에 웃음이 끊어지지 않는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애지중지하게 여기던 거울도 못 본 척한다. 신부 대기실에서 친구들과 참새처럼 재잘거린다. 아름답게 가꾼 모습이 구겨졌을까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거울에 비춰본다.
오만가지 이야기를 하며 수다 떨어도 거울은 들은 척도 거들어 보지도 않는다.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다. 온 식구가 웃으며 떠들썩하게 들어온다. 환하게 웃던 딸의 모습이 금세 일그러지고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엄마가 눈물을 닦아 주며 딸의 등을 두드린다. 거울에 비친 모녀간의 만남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시집간 딸이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긴가민가하고 창문을 열어 본다. 두꺼비 같은 아기를 안고 개선장군처럼 들어온다. 시집보낸 부모는 늘 걱정이다. 혹시나 아이를 가지지 못하면 하는 생각으로 밤잠 설칠 때 많다. 이렇듯 부모는 자식들을 볼 적마다 애틋한 심정으로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는가 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