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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한 해를 보내는 마음

admin 기자 입력 2018.01.02 09:48 수정 2018.01.02 09:48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2017 丁酉年 기쁘고 슬펐던 일 많았다.
세계는 미국 우선주의, 중국 시진핑 등극, 현대판 형제의 난,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 가상화폐 비트코인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남일 같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문제, 세월호 사건, 사드 문제, 청탁금지법 시행, 적폐청산, 무허가 축사 적법화,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등으로 잠시라도 쉼 없이 달려왔다.

영혼의 고향도 마찬가지다. 군수 주민소환문제로 잠깐 썰렁했지만 다행스럽게 조용히 잘 보냈다. 군민의 단합과 애정 어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산 넘어 산이라 하듯 아직 통합 대구공항 이전문제가 남아 있다. 마음고생을 하며 서로서로 위로하며 보듬어 주었던 한 해였다.

갓 태어난 아기가 으앙~ 하고 운다. 눈부신 바깥세상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마에 시퍼런 핏줄을 드러내면서 운다. 맹랑한 것. 알고 있는 것이라곤 우는 것뿐이다. 어쩔 수 없다. 돈 권력 명예 어느 하나 없다. 가을 추수 후 들판에 압축 포장 사일리지(일명:곤포사일리지)가 여기저기 서 있다. 아파트 단지를 보는 것 같다. 찬바람에 버티고 있다. 배가 불룩한 것은 의젓해 보인다. 배고파 보인 것은 세찬 바람에 문풍지처럼 슬피 운다. 아무도 찾지 않은 그늘진 곳 아기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더욱 울고 있다. 그런데도 엄마는 천연스럽게 본척만척 한다.

어미 소의 울음소리 다양하게 들린다. 발정 왔을 때, 젖이 퉁퉁 불어서 새끼를 찾을 때, 배가 고파서 울 때 소리가 따로따로이다. 애정 어린 소리, 애달아서 하며 우는 소리, 비참하고 통탄한 소리이다. 배고픔을 채워 주면 만족한 듯 이내 조용해진다. 결코, 배고픔은 먹는 음식 아니다. 올바르고 솔직하고 정직한 그런 음식을 말한다.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환경단체를 구성하여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농약병, 폐비닐, 스티로폼 등으로 오염된 땅을 살리는데 줄곧 해 왔다. 몇 해가 지났다. 노력의 결과 지금처럼 깨끗한 환경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북해도 목장을 견학했던 일 있다. 방목장, 착유실, 퇴비사 등을 보고서 환경을 중요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젖소 한 마리가 하루에 배설하는 방귀는 세금을 낸다고 한다. ‘방귀세’란 말에 놀라고 의아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곧 시행되지 않을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현듯 찾아왔다. 환경부·농식품부·국토부·행안부 네 개 부처에서 2015.11월부터 2018.3월까지 “무허가 축사 적법화” 지침이 농가에 내려왔다.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으면 축사 사용중지·폐지 명령 등 행정처분을 받는다 했다.

“무허가 축사 적법화”란 축산 농가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소고기 돼지고기 달걀 수입 등으로 축산 농가는 죽을 고비를 겪고 있다. 여태 이렇게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죽어가는 산과 강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 어떠한 난관도 극복해야 했다. 환경이 살아야 우리가 살 수 있고 환경을 보존해야 자연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는 단순히 쉬운 것만 아니다.

몇 제곱미터에 불과한 축사가 있다. 수십 년 전에 지은 돼지우리가 있던 밭을 샀다. 돼지를 사육하다 한우로 바꾸었다. 지붕이 낮아 헐고 높게 올렸다. 새마을 축사 표본이 있었다. 그대로 지었다. 모르는 것이 죄라는 말이 있다. 허가를 받고 소 우리를 지었지만, 준공을 받지 않았다.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허가는 받았지만, 준공이 안 된 상태라 등기등본이 없다. 늘 마음이 불안했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설계사무소에 들락거렸다. 민원실 지적공사 갔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어영부영 여기까지 왔다.

이 무렵 “무허가 축사 적법화” 신고하라는 연락이 왔다. 굴레에서 벗어난 듯 기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날개를 펴고 훨훨 나르고 싶었다. 한시라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호사다마라 할까? 기쁨도 잠시 먹구름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 했다. 구비서류를 하는데 엄청 힘들었다. 서류를 들고 네 개 부처를 돌아다녀야 했다. 까다로워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루에도 수십 번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기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올 수 없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시작했다.

꼭 그러하지 않지만 죄가 없으며 경찰서에 갈 일 없다. 적법화 때문에 경찰서에 갔다. 공연히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다행히 담당 경찰관이 친절히 대해주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며칠 지난 뒤 과태료 강제 이행금 통지가 날아왔다. 이것저것 혼자 힘으로 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설계사무소에 위임했다. 마음이 조급해 견딜 수 없었다. 매일같이 물어보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답이라고는 며칠 걸립니다. 더 기다려야 합니다. 되풀이되는 대답뿐이다. 불법이라는 죄의 사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결국, 해냈다. 법무사에서 전화 왔다. 등기비용 설계비용 얼마입니다 했다. 축사가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놓이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서류를 들고 신부님께 축성 받으러 갔다. 미소를 지으시면서 이러한 것에는 축성을 드리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산소 찾아가 조상님께 기쁨을 고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 누구보다 기쁘고 행복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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