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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지도자와 지배자

admin 기자 입력 2018.07.03 22:41 수정 2018.07.03 10:41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정각 오후 6시를 가리킨다. 분주했던 투표장은 문이 굳게 닫히고 빈 의자만 썰렁해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필승을 다짐하면서 긴 여정을 숨 가쁘게 달려온 후보자들의 얼굴에는 환호와 한숨이 교차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슴 조여가며 기원한다.

선거 때가 되면 국민들은 후보자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어느 때보다도 많았다. 참신하고 유능한 지도자를 뽑기 위해 사람들이 유세장으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후보자의 유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논리와 의사만 주장하고 퇴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유세가 끝난 뒤 유세장은 지지자와 반대자와의 엇갈린 반응으로 한때 웅성거리며 어수선하기도 했다.

추억거리라고 말하기에는 가슴 아픈 일이다. 5~60년대에는 누구나 헐벗고 굶주린 상태로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선거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후보자들의 유세를 들으러 온 사람으로 유세장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불행스럽게도 마음은 하나같이 딴 곳에 있었던지도 모른다. 유세장 바로 옆에는 가마솥 걸어놓고 부글부글 끓는 소고깃국과 술, 밥 그리고 떡이 풍성했다. 굶주린 배에 술과 밥을 배불리 먹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아무 데에서나 잠을 자고 했던 일들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선거는 후보자들에게 잔인한 산물인 것 같다.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모습은 다양하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면서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답례하듯 어정쩡하게 서서 보고 있다. 조용하던 마음이 흔들리고 숙연해진다. 그런데도 기호를 쓴 장갑을 끼고 현란한 춤을 추며 국민들의 마음을 끌게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의외로 다르다.

그뿐만 아니다. 트럭에 인물사진과 기호가 적힌 현수막 달고 로고송으로 종일 거리를 누비며 다니는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이제는 많이 변했다. 오후 늦게 투표장에 갔다. 투표소 안에는 투표종사원들과 몇 사람이 투표하고 있었다. 선거종사원들은 투표자의 신원을 알아보기 위해 일일이 조회했다. 투표지가 무려 6장이다.

한 기표소에서 3장을 투표하고 나와 또 다른 기표소에서 3장을 투표했다. 한두 번 해보았지만 조금 긴장되고 어색했다. 어리둥절하게 투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내가 지지했던 사람에게 올바르게 투표했던지 의심마저 들었다. 특히나 교육감 선출은 더욱 그러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선거공고물에 적힌 약력만 보고 후보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투표방식이 없을까 생각하며 투표장을 빠져나왔다.

국민들은 우여곡절 끝에 청렴하고 위대한 지도자들을 뽑았다. 지도자는 평소에 쌓았던 경험과 체험을 통해 국정에 관하여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라 믿었다. 호기심과 기대감도 컸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공약을 제대로 지켜 줄까 하는 쓸데없는 의구심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지도자는 말로 먹고산다고 하지만 지도자의 진실성과 참신한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문화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였다. 따지고 보면 정치문화에 관하여 말할 자격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에 정신 빠져 가끔 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할 때도 많았다.

입후보자들의 선거공고물에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확실한 공약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같이 노인복지 일자리 창출 같은 실현성 없는 공약을 스스럼없이 남발하는 것을 보고 참담함을 느꼈다.

그런데도 지도자가 되고 나면 지휘봉을 휘두르는 지배자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이를 두고 가관이라 했다. 국민을 배신하고 국민과 약속했던 공약은 휴짓조각 되어버렸다. 순수했던 웃음 띤 얼굴이며 허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굽혀 절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정을 다스리다 보면 그럴 수 있겠지 하며 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도 그의 몸에서 묻어나는 위엄만큼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단했다.

정치사의 한 단면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이골이 났던지 말 한마디 못하고 씁쓸히 지켜보고만 있다.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지만, 힘의 한계를 느낀다. 기껏해야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는 달랑 투표권 한 장뿐이라 어쩔 수 없다. 처절하고 굴욕적인 세상을 어떻게 버티어 가며 여태 살아왔든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한숨이 절로 난다. 기다림은 새 역사를 창조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우리들의 봄은 언제쯤 피어날까?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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