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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창 회장 |
ⓒ N군위신문 |
하루를 끝내고 넥타이를 풀면 술 생각이 난다.
술의 역사는 바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의 65%가 이 세상에 술이 있어 너무 좋다는 통계를 언뜻 본적 있다. 나 역시 이 통계수치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다.
술이 인생이라는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게 해 주는 마취제와 다를 바 없을 성싶다. 세상사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준다는 망우물忘憂物이란 성어도 술의 이칭異稱이다. 술을 마신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술이 문제 자체를 잠시 잊게 해 사색의 공간을 넓혀 준다는데 기꺼이 동의한다. 술이란 참으로 오묘奧妙하다는 생각이 든다.
술은 인생의 멋을 한껏 돋우어 주기도 한다. 그 멋은 곧 풍류로 이어 지는 것 같아 술이 풍류와 밀접히 내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도 술을 많이 마시는 주객보다 한두 잔에 즐길 줄 아는 풍류객이 되고 싶은 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술을 마시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뇌가 단단한 빗장을 풀어 통제 불가능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 같다.
술에는 기분을 붕~뜨게 하고, 얼굴은 불콰하게 만들어져 무드를 분홍빛으로 보게 하는 별난 효용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애주가들이 흔히 하는 말로 술을 백약이장(百藥而長)이라 내세운다. 온갖 뛰어난 약 가운데서도 으뜸이란 뜻일 게다.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는 지나치게 관대한 것 같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술이지 싶다. 흔히들 좋은 일이 생겨도, 나쁜 일이 생겨도 제일 먼저 찾는 게 술일 성싶다.
목이 컬컬하다고 한잔, 반갑다고 한잔, 친하니까 한잔, 분위기 좋아 한잔 하다가 건배사로 이어져 “주향백리(酒香百里)!, 무주상심(無酒傷心)!”을 외치다 결국은 취해서도 한잔, 이별이 아쉽다며 또 한잔---.마음 맞는 술꾼끼리 수작(酬酌)하노라면 핑계도 끝이 없다.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암만 떠들어도 트집 잡는 사람 없어 좋고, 그 자리에서 한 얘기 또 하고, 돌아서서 또 하고, 말 그대로 중언부언(重言復言) 말도 많다. 정신 줄 어지간히 풀어져 마음가짐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끝내 퍼져버린다.
술을 절제해 마신다면 우리의 삶을 부드럽게 하고, 인간의 성정(性情)에도 여유가 생겨 인간관계를 훨씬 원활하게 해 긍정적 기능이 작용할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조선조 태종임금이 셋째 아들 충녕대군(세종)을 후계자로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충녕대군이 술을 마실 줄 안다.”는 것이었다. “중국 사신을 맞을 때 주인으로서 한잔도 마시지 못하면 어떻게 손님에게 권해 즐거운 자리를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양녕대군은 지나치게 마시고 효령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고 한다. 세종은 적절히 마시고 중간에 그칠 줄 알았다고 세종실록에 적중이지(適中而止)라고 적혀 있다. 세종은 마실 줄 알고, 그칠 때를 알아서 적중이지로 간택(揀澤)된 행운의 임금이다.
반면에 술로 인해 가정이 파탄난 사람, 자기 목숨뿐 아니라 남의 목숨까지 앗아간 어이없는 사람, 공들여 쌓아왔던 부와 명예를 송두리째 날려 버린 사람, 여기 열거한 사람들은 우리 주위를 돌아보거나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장소에서 불적격자로 낙마하는 인사들을 티브이 뉴스를 통해 많이도 봤다.
술이 시름을 잊게 해 주기보다 때론 산더미 같은 걱정을 만들어 탈일 때도 많을 성싶다. 나도 오래전 음주운전하다 된통 걸린 적 있다. 운전면허 취소처분에다 벌과금 백만 원까지 납부해야 했으니 우리 마눌님 속을 태워 얼굴 살펴보랴 한참 동안 속 쓰린 적도 있었다.
평소 원리원칙을 주장하던 내가 그것도 음주운전을 했으니 꼴이 뭐가 됐겠나. 자식들 보기 창피하고 민망해 여러 해 유구무언, 멀뚱멀뚱 바보처럼 지냈다. 술로 인해 망신은 당했으나 폐가까지 이르진 않았으니 천마다행이라고나 할까.
맨 정신으로 술 취한 사람의 행동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혐오감을 주는 행동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 모습들이 과거 언젠가 나의 모습이었다면 과연 남을 비웃을 수 있을까. 하여간 한두 잔 목줄 타고 쭉 넘어가면 찌릿한 감칠맛에 즐겁기만 하다. 그 맛에 그치 질 못해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盃)하다.
이미 나는 내가 아니고, 너는 네가 아닌, 지묘(至妙)한 상태로 빠진다. 술기운에 큰 소리 지르고, 웃통을 벗어젖힌 채 횡설수설하다 아무나 잡고 시비를 건다. 맨 정신일 때는 합리적이고 반듯하던 사람도 부어라 마셔라 고주망태가 돼 개차반이 따로 없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영웅호걸이 되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장강대화의 웅변이 쏟아지고, 자만이 튀어나와 위인현사(偉人賢士)도 안중에 없는 듯 시뻘건 얼굴로 주정을 부린다. 주정이 꼬불꼬불 꼬였는지 교양도 삐뚤빼뚤하게만 보여 진다. 문제는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인품을 다시 가늠해 본다는데 있다.
내가 술을 마신 햇수가 반백년은 될 성싶다. 술이 내 인생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샘인데 앞으로도 내 곁을 영 떠나진 않을 성싶다. 요즘 같은 세상에 술이 아니고서야 답답하고, 울화통 터지는 세상사 보면서 꼬인 심사 어이 풀 수 있으랴. 이때 독주가(獨酒歌) 시 한수 읊으면 조금은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다.
“부생(浮生)이 꿈이어 늘 공명(功名)이 아랑곳 가, 현우귀천(賢憂貴賤)도 죽으면 한 가지 아마도 살아 한잔 술이 즐거운가 하노라.“
나는 술을 좋아하고 즐겨 마신다. 애인처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술, 멀리 떼어 버리지도 못할 술, 한잔은 적고, 두 잔은 부족하고, 석 잔이면 딱 좋으련만.
황성창 부산연제문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