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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명함이 사라졌다

admin 기자 입력 2018.08.02 20:33 수정 2018.08.02 08:33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사연 많은 한세월이 물결치듯 지나간다. 지난해 사업을 정리하고 사업등록증도 반납했다. 인생 전반부의 막을 내렸다. 인생 무대 뒤쪽으로 사라진다는 걸 생각하니 갑자기 허망하고 서글퍼진다. 이젠 사업관계로 세무서에 올 일은 없겠구나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명함도 그 사명을 다해 이제 푹 쉬게 해줘야 되겠다는 아련한 생각에 새겨진 직함을 다시 짚어봤다.

명함은 사업상의 신분이요, 간판이요, 홍보물이다. 사업의 상징 같은 증표이기도 하다. 직함이 쭈르르 쓰인 명함을 내민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부각시켜 돋보이게 하는 매개체(媒介體)다. 그토록 뿜고 싶던 존재들의 몸부림이 가득했던 명함은 신경림의 시처럼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빠질 듯 빠질 듯”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이 죄는 삶의 아릿한 상징(象徵)이다.

은퇴 후 정좌(靜坐)하여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은퇴가 현실로 닥아 와 가보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이 두렵고 외롭고 헛헛함도 느낀다. 허구한 날 번듯하게 해놓은 것도, 손에 듬뿍 쥔 것도 없으니 실패한 인생, 자책감에 갇혀 산다.

매일 골백번씩 자책의 망치로 나를 후려치며 산다. 은퇴해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다면 백수건달일 것이고 시간도 없고 돈도 없으면 죽지 못해 사는 거나 다를 바 없을 성싶다. 어차하다 사나이 일생 망가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은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가을 단풍들처럼 각각의 색일 것이다. 가을 나뭇잎은 풍상과 일교차를 잘 견뎌야 더 곱게 물든다는데, 고운 빛깔로 일생을 버텨온 그립고 서러웠던 흔적을 마음에 새길 준비는 하고는 있는 걸까. 은퇴 후의 여정을 순항하기 위해서는 소일거리가 필요할 성싶다. 인생 후반부를 새롭게 시작 한다는 것은 적잖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은퇴하면 대게는 손에서 일을 놓는데 일이란 활력 넘치는 생명을 유지하는 원천이다. 사람이 원하는 걸 할 수 있을 때 그만큼 삶의 의지도 강해지고 비로소 행복함도 느낄 성싶다.

내 인생에도 필연코 다가 올 은퇴를 염두에 두고 내 자신의 롤 모델이 될 사람을 그려봤다. 십 수 년 전 고향향우회 행사 때 “붉은 낙화 밭을 걸어온 학도병”이란 시집을 고향선배 작가로부터 선물 받았다. 그때는 막연히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하는 꿈같은 생각을 가져봤다. 그러나 그게 계기가 되어 문학에 입문하여 시인이 되고 등단에 이르게 됐다. 꿈은 이루어졌다. 지금 글을 쓰고는 있지만 아직은 초짜 작가다. 낮밤을 설쳐 초고(草稿)를 쓰고 나면 나 혼자는 감히 만족한다. 하지만 즐거운 만족은 잠깐이다.

다음 날 읽어 보면 어딘가 비거덕거리고 틈새가 보인다. 며칠 동안 조금씩 고쳐 쓰다 보면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고치고 또 고치는 지난한 첨삭(添削)의 과정을 거처야 겨우 작품이 완성 된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퇴고(堆敲)를 거치지 않는 작품은 거의 없을 성싶다. 이렇듯 인생도 작품을 퇴고하듯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아쉬움 같은 게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밤잠을 헤매도 신명나는 문학을 좀 더 일찍 입문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막심하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문학 아니면 할 수 있을까. 만약에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인생 2막을 뭘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인생 전반부를 돌이켜 보면 실수한 일, 잘못된 일, 부끄러운 일---그때는 왜 그랬을까. 시작하는 일마다 애초 계획한 결과를 만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 허물고 새판 짜봤으면 하는 통절한 생각이 가슴을 친다.

이제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지나간 일, 남은 세월은 문학으로 정진하여 괜찮은 작품,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가가 되는 게 소망이다. 지난날과 똑 같을 수도 있으나 좋아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더 크다. 그건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퇴고하느냐에 따라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이다. 남은 세월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인생이란 원래 한바탕 웃고 우는 연극이 분명한 것 같다. 인간은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살다 한번뿐인 인생을 아쉽게도 그렇게 끝내는가 싶다. 아깝게도 그게 인생인 것 같다. 은퇴라는 것은 무대 밖으로 밀려 구경꾼으로 자리가 옮겨졌음을 뜻한다. 이젠 구경꾼으로 초연하게 현실에서 벌어지는 연극을 감상하면 될 성싶다. 현실을 찬성하든, 비판하든 갑론을박하는 것은 무대 위의 배우, 우리들의 희망, 사회를 이끌어가는 젊은이들의 몫이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이 노래는 어른들의 심성을 두드리는 멋진 노래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냐 있겠냐마는” 실연의 고통조차 달콤한 그리움으로 느낄 때 이미 젊음은 다 가버렸고 나이 늙어 산다는 것은 슬픔으로 가득하고 노쇠한 육체는 점점 시간의 변방으로 밀려간다. 회한이 썩인 노래다.

비록 얼굴에 주름은 가득할지라도 가슴 속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꿈은 가득하다. 길바닥에 뒹구는 꽃잎은 줍는 사람 없어도, 바람에 떨어진 가을이 물든 단풍잎은 누군가가 주어서 책갈피에 끼워 둘 성싶다. 마지막이 언젤 지는 모르지만, 기왕이면 폼 나게 살다 폼 나게 떠나고 싶다. 그냥 우스개로 해 보는 소리가 아니다. 실천하고 싶은 나와의 신중한 희망의 약속이다.

황성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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