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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동물의 지혜

admin 기자 입력 2019.07.17 18:48 수정 2019.07.17 06:48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어찌 보면, 동물은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새끼를 낳고 기르는 것을 보면, 갓 태어난 어린 새끼가 맹수들의 공격을 받을까 봐 밤을 이용하여 새끼를 낳는 것을 보면, 새끼를 낳은 흔적을 없애기 위해 태반을 먹어버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지혜롭다.

봄은 번식의 계절이다. 산기슭 몇 평 남짓한 외양간에 수십여 마리 소를 기르고 있는 우리 집에도 봄이 왔나 보다. 지난해 수정한 소들이 새끼 낳을 준비 하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건강한 새끼를 낳아주기 바라면서 열심히 뒷바라지했건만 행여나 잘 못 될까 걱정이다.

일찍이 새끼를 낳아 젖먹이는 놈도 있고, 새끼 낳으려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서성이는 놈도 있다. 오늘내일 새끼 낳을 녀석은 먹새가 한결 더 좋아지고 자기보다 힘이 센 녀석 곁에는 가질 않는다.

새끼를 보호하는 모성애를 보면서 동물 세계의 신비를 느낀다.
배를 불룩하게 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는 소의 뒷모습을 본다. 새끼를 가졌다는 기쁨도 있지만, 이는 잠시다. 불쌍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산과 들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풀을 뜯고 하던 것들이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열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 하다.

그러나 말 못 한다고 주는 대로 먹기만 한다고 식충이 취급한 적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생각이 든다. 오늘부터 온정이 담긴 사료를 주기로 했다. 육중한 몸을 일으켜 한참에 내 곁으로 걸어온다.

평소에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싫어하던 놈이 웬일인지 눈을 지그시 감고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새끼 낳을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불안한지 소들은 온순해지고 나에게 의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켕긴다.

가족처럼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 좋은 사료를 주어도 배가 불러 한참에 다 먹을 수 없다. 쉬었다가 쉬엄쉬엄 먹으려고 남겨놓은 것을 비둘기 떼들이 한 톨도 남김없이 먹고 날아가 버린다. 우 우~ 소리 지르며 쫓아도 눈만 말똥말똥하게 뜨고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를 업신여기는 것 같아 속이 상하고 죽이고 싶었다.

사료를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준다. 어제저녁에 준 사료가 덜 먹고 그대로 남아있다. 그 위에 비둘기가 마치 비행기가 편대를 이뤄 비행하듯 떼를 지어 달려든다. 기가 차서 멍하니 바라본다. 사료는 당밀과 옥수수 무기질 등으로 배합되어 있다. 그중 옥수수는 살을 찌게 하는 사료의 주성분이다.

비둘기는 영양가 많은 옥수수만 골라 먹고 다른 것은 먹지 않는 것을 보고 날짐승들의 영리하고 지혜로움에 놀랐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비둘기는 여윈 것 같은데 우리 집에 무단출입한 비둘기는 살이 쪄서 오동통하다. 살이 쪄야 할 소는 바싹 마르고 비둘기는 오동통하다. 세상에 이를 수가? 먼발치에서 보고 있어도 막무가내다.

옆에 누가 왔는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재잘거리며 쪼아 먹고 있다. 반들반들한 눈을 뜨고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사료를 쪼아 먹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면 참아 두 눈 뜨고 볼 수 없다. 작은 돌을 집어 던지려 해도 혹시 방풍용 비닐이 째질까 봐 던질 수도 없다. 속이 타들어 가고 안절부절못한다.

비둘기는 영리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사료를 줄 때가 되면 용케도 그 시간에 맞춰 날아온다. 한번은 유심히 쳐다보았다. 소 마구간 앞에 있는 나뭇가지에 떼를 지어 날아와서 재잘거리며 호시탐탐 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처음에는 초병 한 마리가 날아와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정을 살핀다.
그러고서 나무에 있는 동료에게 고개를 끄떡이며 신호를 보낸다. 신호를 받고 두 마리가 날아와서 마구간 지형 정찰을 하고 돌아간다. 얼마 후 비둘기 떼들이 편대를 이루어 시커멓게 날아온다. 소름이 끼치고 무서움이 든다. 편대 중 한 마리가 사료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어서 비둘기 떼들이 안심한 듯 한꺼번에 달려든다. 전술과 다를 것이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가만히 앉아 당할 수만 없었다. 긴 나일론 줄에 흰 옷가지를 서너 개 매달아 놓았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에 외양간에 갔다. 역시나 신나게 재잘거리며 남은 사료를 정신없이 쪼아 먹고 있다. 이놈들아! 오늘은 혼 좀 나보라, 기다렸듯 줄을 세차게 집어 당겼다. 갑자기 흰 옷가지가 펄럭거렸다. 깜짝 놀란 비둘기 떼들은 날 살리라 하고 혼비백산했다.

허겁지겁 날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잠시나마 속이 후련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 하지만 골칫거리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저공비행 하면서 겁주는 놈들도 있다.

비둘기 떼들은 내쫓아도 보복이라도 하려는지 멀리 날아가지 않고 이웃집 자두밭 나무 위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다. 속이 상할 대로 상했다.

돌을 집어 던졌다. 그제야 선두 비행 한 마리가 어디론가 날아가자 줄지어 날아갔다. 여느 때는 새들과 전쟁하느라 아침을 걸렀던 적도 있었다.

비둘기도 먹고 살려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날아드는데 왜 못 먹게 했을까, 옥수수 한 톨 얻어먹지 못하고 쫓겨나는 모습을 보고서 속이 후련할 때도 있었지만 짠할 때도 있었다.

그러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비둘기들은 날아다니면서 돈도 주지 않고 맛있는 것 다 골라 먹으면서 왜 남의 것을 탐내는지 알다가도 모른다. 밥상에 주인이 숟가락도 채 들기도 전에 야단법석을 떠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물의 지혜롭고 슬기로움에 감탄할 뿐이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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