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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동창회

admin 기자 입력 2019.08.02 14:00 수정 2019.08.02 02:00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별들의 잔치다. 이름 없는 별들은 보석같이 반짝이는 별들 속에 묻혀 제 모습이 가려질라.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 멋과 맛이 한데 어울려 화려하든 잔치가 안갯속에 살아지듯 어느덧 머릿속에서 서서히 멀어져 간다.

그럼에도 동창회가 있는 날이면 왠지 마음이 행복하고 설렌다. 지금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모진 세월이 남긴 주름살은 몇 개나 되는지 보고 싶다.

먼 곳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들이 한껏 멋 부리며 삼삼오오 짝지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교정에 들어선다.

햇빛을 못 본 탓인지 여유로운 생활 탓인지 얼굴들은 하나같이 하얗고 귀태스럽게 보였다. 한 친구는 풀을 빳빳하게 먹인 모시로 지은 한복을 입고 들어온다.

다른 친구는 평상복 차림에 검은 안경에 하얀 중절모를 쓰고 팔자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음으로 걸어 들어온다.

또 다른 한 친구는 백구두에 흰 바지 입고 해맑은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며 들어온다. 여태 보지 못했던 멋있고 당당한 보무에 놀란 입을 다물 수 없다.

산다는 게 별거 있나 했더니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햇볕에 그을려 꾀죄죄한 얼굴에 맞지 않은 옷차림으로 바쁜 걸음으로 들어선다.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관심을 주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초라하고, 쓸모없는 존재까지 느낀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나를 이해하여 주지 못한 것에는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허름한 바지 주머니에는 땡그랑거리는 동전 몇 푼이 들어 있어 마음은 든든했다.
식순은 제1부 제2부 제3부로 되었다. 4~50명 되는 가운데 식이 엄숙히 거행되었다. 제1부는 인사소개와 회장 인사말과 담임 선생님의 격려사와 동창회장의 축하 말씀이 있었다.

제1부 순서가 끝나고 잠시 짧은 중간 휴식 시간을 가졌다. 제2부는 시 낭독, 장기자랑이다. 첫 번째로 단아한 모습으로 등장한 여학생의 시 낭독이 있었다. 울분을 토하듯 한 음성으로 톤을 높였다가 금세 애원하듯 낮추고 하며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그의 청아한 음성이 숨죽은 듯 조용한 대강당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로 등장한 친구 네 명이 하모니카로 교가를 합창한다. 친구들도 잊혀가는 교가를 더듬으면서 따라 부른다.

그러고 나서 하모니카로 애창곡을 한 가지씩 부른다. 한 친구가 고요하고 매력적인 저음으로 문정선의 ‘보리밭’을 아름다운 선율로 부르며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다. 두 번째 친구는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부르며 ‘고향의 봄’을 애절하게 불렀다. 세 번째 친구는 해는 져서 어두운데 하며 조영남의 ‘고향 생각’을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게 불렀다. 네 번째 친구는 초가삼간 집을 지은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 부르며 다 같이 고향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사물놀이패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등장한다. 축 늘어진 어깨를 들썩이며 친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꽹과리 박자에 맞춰 손뼉 치며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누구의 말도 없이 다 같이 일어나서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제3부는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친구들의 장기자랑에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한다. 술이 거하자 친구들은 나름대로 숨은 장기를 아낌없이 발휘한다. 마이크를 잡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목이 터지라 노래한다.

노랫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며 지칠 줄 모른다. 기쁨에 넘쳐 이 친구 저 친구 손 잡으며 어린아이처럼 마냥 어쩔 줄 모른다.

농사일도 만만찮은데 어디에서 저런 흥이 나올까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중모리장단에 맞춰 민요가 흘러나온다.

한 여학생이 치맛자락을 허리춤하고 나풀거리며 춤을 춘다. 쿵작거리는 음악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분위기가 무럭 익어 갈 무렵 사물놀이패들이 응원한다. 흥분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얼굴에는 땀이 뒤범벅되고 옷은 땀에 젖어 물에 빠진 사람처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기쁨과 행복에 가득한 이 순간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었다. 흥분에 도취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시간이 시기 한 듯 멈추지 않고 더 빨리 흘러간다.

아름다웠던 추억거리를 안고 헤어져 할 시간이 알려준다. 행사를 성황리에 끝마친 우리는 다 같이 ‘고향의 봄’을 합창하며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석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들이 빠져나간 텅 빈 자리는 썰렁하고 고요한 적막감이 흐른다. 그들이 남겨 놓은 그 자리에는 시 낭송하던 카랑카랑한 목소리, 넷 친구가 부르던 하모니카 소리, 나비처럼 나풀나풀 춤추든 한 여학생의 모습이 아련히 남아있다.

반짝이는 별들 속에 제 모습이 가려질라. 걱정하든 이름 없는 별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냥 ‘이대로 지켜볼 수 없다’ 하며 대책을 숙의했다.

다음에는 우리가 더 세련되고 아담한 분위기로 오늘 보다 더 풍성하고 멋진 잔치를 벌이자며 굳게 손을 잡았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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