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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울산 대왕암

admin 기자 입력 2019.10.17 15:03 수정 2019.10.17 03:03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출발 시각이 가까워진다. 서산에 걸려있는 나이임에도 회원들은 선글라스와 허름한 모자를 눌려 쓴 체 시각에 맞춰서 속속 모여든다. 밝은 미소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한다. 군 의원들이 나와 일일이 손을 잡고 격려하며 배웅한다.

어느 때보다 즐겁고 설레는 아침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건 노인들만이 누리는 유일한 특권일지도…. 머리는 반쯤 벗겨져 있고, 몇 가닥 남은 흰 머리카락은 마치 지붕을 덮고 있는 이엉처럼 서로 엇글려 있다.

핼쑥한 얼굴에 이마에는 굵은 주름살이 깊게 파여져 있고, 꼿꼿하든 허리는 세월을 견디다 못해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두꺼운 돋보기에 중절모며 바람이 쑥쑥 드나드는 헐렁한 바지는 예나 지금이나 삶의 애환이 절절히 스며있는 ‘핫바지’라는 이름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버스가 한 시간 남짓 달리다 걸음을 멈춘다. 이내 핫바지 부대가 버스에서 내린다. 어디로 가는지 누군가 앞장서 가는 데로 따라간다. ‘해우소’이다. 벽을 보고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오줌을 눈다. 그것을 붙들고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소용이 없다. 힘차게 내리치는 소낙비 소리는커녕, 뚝뚝 떨어지는 낙수 소리마저 처량하게 들린다.

그러면서도 오줌을 시원하게 눈사람처럼 해우소를 태연히 걸어 나온다. 손 씻고 거울 앞에서 몸을 비틀어가며 이리저리 비춰보고 한다. 능청 떨고 있는 모습은 두 눈 뜨고 볼 수 없다.

해우소 앞에는 생활용품들을 파는 매점이 있었다. 출발 시각이 남아서 심심하게 이것저것 눈 맞춤하며 둘러보았다. 낯익은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았다. 구석 한 귀퉁이에 꼭꼭 숨어있는 보석을 하나 찾았다.

‘이것 얼마 합니까?’ 하고 주인한테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비쌌다. “주인장! 얼마 깎아 주시오” 하니 턱도 없었다. 흥정은 밀고 당기고 하는 ‘밀당’ 이 있다고 하던데 고약한 사람이구나 하고 말을 더 건네지 않았다.

슬며시 오기가 났다. 한 번 더 말을 건넸다. 그제야 주인장은 못 이긴 척하며 쥐꼬리만큼 깎아 주었다. 결국, 해냈다는 기분에 언짢았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 사람이나 나나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처지인 것 같은데 무턱대고 값을 깎아달라고 했던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속고 속이는 세상이라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얼마나 왔던지 버스가 바다 위에 놓인 구름다리를 달린다. 버스 기사가 울산교를 지나갑니다. 하며 안내 방송을 한다. “구름다리 아래로 보이는 항구가 울산항입니다. 해외로 나가는 자동차들은 거의 다 여기서 나갑니다. 울산항에 정착해 있는 배를 보십시오. 배 상체 부위에 검은 테가 둘려져 있습니다. 검은 테가 해면에 닿아 있으며 기름이 가득 실려 있는 유조선이고 해면에서 위로 떠 있으면 기름을 다 빼고 난 유조선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울산, 하면 자동차와 조선·해양 산업이 발달한 공업 도시다라고 알고 있다. 이제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공업 도시가 아니라 문화도시 같았다. 버스는 우리를 울산 대왕암공원으로 안내한다. 문화 역사 관광도시에는 어디에 가든 사람들이 붐빈다. 이곳 대왕암공원도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어디로 가는지 물결처럼 흘러간다. 우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리가 흘러가는 데로 따라간다. 피부가 검고 얄궂은 의상을 입은 외국인들도 무리에 끼어 대왕암공원을 찾는 것을 보고 놀랐다.

과거에는 대왕암공원을 울기공원이라 했다. ‘울기’(鬱埼) 는 울산의 끝이라는 뜻으로 일본강점기에 붙인 이름이라 하여 현재에는 대왕암공원으로 수정하였다고 한다.

대왕암공원에는 울산 대왕암과 울기등대가 있다. 대왕암(大王巖) 하면 경주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문무왕의 수중왕릉으로 기억하는데, 울산 대왕암은 처음 들어본다. 그래서 사람들은 학문과 지식의 황금어장을 찾으려 끊임없는 여행을 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울산 대왕암공원은 신라 시대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문무왕처럼 동해의 호국룡(護國龍)이 되어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진 곳이다.

우리는 대왕암공원으로 들어갔다. 대왕암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수령이 백여 년 넘어 보이는 울창한 소나무와 빽빽이 들어선 대나무밭이 울산의 수려한 자연환경의 명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백 년의 소나무에서 뿜어내는 진한 솔향을 맡으면서 고고하고 당당했던 조상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댓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서걱서걱하며 곤히 잠자는 위인들의 단잠을 깨운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며 나를 끌어당긴다. 벚꽃, 동백, 개나리, 목련 등이 송림의 운치를 더해준다.

울창한 송림을 벗어나자 울기 등대가 나왔다. 등대 앞에 있는 설명서를 바쁜 걸음 하면서 읽어 본다. 1906년 3월에 세워진 울기등대는 우리나라 동해안 최초의 등대로서 동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주위에 조성된 해송림은 조선 시대 말을 기르던 목장이었는데 러·일 전쟁 이후 해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인공적으로 1만5천 그루의 해송림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사진을 한 컷하고 허겁지겁 일행들을 따라갔다. 탁 트인 해안절벽이 나온다. 사람이 옮겨 놓은 듯한 불그스레한 거대한 바윗덩어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하얀 거품으로 바위를 씻어 내리고 있다.
점점이 이어진 바위를 붙들고 가슴 조이며 육지에서 대왕암을 연결하는 철재 다리 위를 걸어간다. 철재 바닥이 나무판자로 되어 있어 틈 사이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고소공포증 환자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 대왕암 정상에 도착했다. 끝없이 펼쳐진 넓고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희망 사랑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 여기가 제일인 것 같다. 반가운 사람들과 다정히 사진을 한 장 컷하고 천천히 내려온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특이한 모양을 한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흰색 불그스레한 색을 가진 바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불그스레한 것은 철분이 산화된 것 같아 보였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수월했다. 울창한 숲길을 빠져나왔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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