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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제독 이여송과 도체찰사 류성룡

admin 기자 입력 2019.10.17 15:13 수정 2019.10.17 03:13

↑↑ 홍영선 위원
ⓒ N군위신문
지난 9월28일, 경북대학교에서 「임진란 정신문화 선양회」 주최 ‘대구지역의 임진란사 연구’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대거 침입하니 부산진과 동래성이 잇달아 함락(陷落)되었다.

류성룡은 이때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무하여 군무를 총괄하고, 지방군무의 감독관인 도체찰사(都體察使)에 임명되어 적군을 방어케 했으나, 신립(申砬)장군의 충주 패전으로 마침내 서울이 위태하게 되었다.

1592년 5월 1일 개성에서 선조가 국란타개의 방안을 물으니 류성룡은 왕에게 아뢰기를 “명나라에 내부(內附)한다는 것은 안될 말입니다. 임금께서 우리땅을 단지 한 걸음이라도 떠나신다면 조선땅은 우리의 소유가 안될 것입니다”고 하였다.

한편 전세(戰勢)가 불리하여 국왕은 개성에서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까지 파천(播遷)하였다.
류성룡은 안주(安州)에 주재하면서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을 맞이하고는 평양 수복작전 계획을 수립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왜의 추장(酋長)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가 물러나자 제독은 승승장구하여 청석동(靑石洞)에 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전면(前面)에 백기(白氣)가 하늘까지 뻗치는 찬기운이 미치니 제독이 말하기를 “이는 왜인 검객대(劍客隊)이다.” 제독은 군대를 한번 잡고, 한번 둘러싸고, 한번 묶는 방법인 ‘일자아(一字兒)형’으로 주둔시키고, 말 위에서 쌍검을 뽑아 몸을 솟구쳐 창공으로 날아갔다.

군인들이 우러러 보니 칼 끝에 달아맨 고리소리만 쟁쟁하게 백기 안에서 울려나올 뿐이었다. 조금 있으니 왜인의 몸과 머리가 떨어졌고, 제독은 말위에 있었을때 장군의 군대는 청석동 입구를 빠져 나왔다.

제독이 벽제(碧蹄)에서 패한 뒤 진군할 뜻이 없었다. 이때 류성룡이 접반사(接伴使)로서 제독에게 나아가 군무를 논의 하였다.

제독은 그 때 흰 무지개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서둘러 상투를 틀며 말하기를 “검객이 오고있소” 제독은 쌍검을 뽑아들고 침실로 들어간 뒤 문을 닫지 않은 채 서애로 하여금 그곳에 동정을 살피도록 하였다.

삽시간에 힌 무지개 기운이 들어오더니 쟁쟁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으며 냉기가 온 집안에 가득 하였다.

이때 갑자기 방 밖으로 발 하나가 쑥 나오더니, 문지방을 차고 들어가는것이 보였다. 서애는 그 발이 제독의 발이라고 생각 하였고, 또 발이 문을차고 도로 들어간 것은 문을 닫을려는 의도라고 생각하여 일어나 문을 닫아주었다.

잠시후 제독이 미인의 머리를 땅에 내 던졌다. 서애는 그때서야 정신이 안정되었다.
제독이 말하기를 “왜인 중에는 검객이 많았는데 청석동에서 다 섬멸 했었소 이 미인은 왜인중에서 제일 고수(高手)여서 검술이 신통함이 천하무적(天下無敵) 이었다오, 이제 다시는 근심할 것이 없소. 그런데, 그때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소?” 서애가 대답하기를 “문을 차고 도로 들어가시기에 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독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내 발인줄 알고 문을 닫았었소?” 대답하기를 “왜인의 발은 작은데 그때 보니 제독의 발이 크더이다, 그러니 장군의 발인 줄 모르겠습니까?” 하니 제독이 “조선에도 큰 인물이 있구료”라고 말 했다.

서애가 “문을 닫고자 했던 까닭을 감히 묻나이다.” 제독이 “미인은 바다 위 공중의 광활한 곳에서 검술을 배웠기 때문에 일부러 내가 작은 침방으로 들어가 그녀로 하여금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오, 칼싸움을 수십합(數十合) 하다보니 미인이 힘을 잃고 있었소, 혹시라도 그녀가 문을 나가 멀리 도망갈까 염려된 까닭에 문을 닫고자 했던 것이오 만일 문을 나가 버리면 벽해만리(碧海萬里) 어느 곳에서 그녀를 잡을 수 있겠소? 오늘 일은 그대가 문을 닫았던 공이 진실로 크다오” 이로부터 제독은 서애를 더욱 공경하고 중히여겼다고 한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하였으니 서애는 1542년(중종37) 10월 1일 의성현 사촌리(沙村里) 외가(外家)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퇴계선생은 그를 한번 보시고 “이 사람은 하늘이 낳은 사람이니 후일에 반드시 국가에 큰 공을 수립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명철한 판단력과 정치가적 소질을 예견한 것이었다.

서애 류성룡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나라가 어려울때 선생같은 명재상이 나타나기를 고대해 본다.. 위의 이제독과 류성룡간에 대화는 『청구야담(靑邱野談)』에 있는 「청석동(靑石洞) 천장(天將) 투검객(鬪劍客)」 이란 제목으로 실려있다.

조선시대 삼대야담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문학적인 성과를 가장 잘 포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문으로된 야담집이다.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 군위군편 2책에도 없는 내용이고, 또한, 군위는 서애와 깊은 연고가 있어, 소개하니 일독하기 바란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홍영선(洪永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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