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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무허가 축사 적법화

admin 기자 입력 2019.11.03 20:17 수정 2019.11.03 08:17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몇 평 안 되는 마굿간에 암소 몇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중에는 배를 불룩하게 해서 새끼 낳을 준비하는 놈도 있고 어떤 놈은 새끼를 낳아 핥아 주는 놈도 있다. 젖을 배불리 빨아 먹은 새끼 녀석은 꼬리를 치켜들고 이리저리 뛰면서 재롱을 부린다. 천진난만한 모습에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잠시뿐,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안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옛날에는 밭 모서리나 공터가 있으면 알게 모르게 돼지우리랑 소 마구간을 지어 가축을 먹였기 때문에 무허가 건물이 많았다. 이러한 것도 모르고 나는 수십여 년 전에 밭 한쪽에 조그마한 돼지우리가 있는 밭뙈기를 샀다.

혹시나 하고 건물이 무허가인지 아니진 알아보았다. 무허가 건물이었다. 이러한 건물을 샀기 때문에 마음이 늘 불안하고 찝찝했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동네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 밑에서 동네 노인들이 모여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차를 멈추고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 합니까 하고 동네 노인들 틈에 끼었다.

한 노인이 자기가 집을 지을 때 고생담을 꺼내 들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한다. 마침, 잘 되었다 하며 귀담아들었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집을 다 짓고 나면 준공검사를 받아야 한다. 준공검사를 받고 등기소 가서 등록해야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골치가 아팠다. 내 건물은 건축 허가는 받았지만, 준공검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허가 건물이라는 불명예 이름으로 덧없는 세월을 보냈다.

송아지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고 소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헐렁하든 마굿간이 비좁았다. 걱정되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마굿간 바로 밑에 넓적한 공간이 있었다. 공간을 메우면 적어도 수십여 마리 소를 거뜬히 먹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굿간이 도로변 가까이에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기가 쉬워 마음이 불안했다. 눈을 딱 감고 작업을 강행했다.

웅덩이를 메꾸려면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나흘 만에 다 끝냈다. 웅덩이가 넓적하고 평평한 땅으로 변했다.

거기에 건물을 지었다. 겁은 낫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또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빨리 지었다. 송아지들이 넓적한 제 방을 차지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음매 음매 거리며 정신없이 뛰놀고 한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했다.

불편 없이 몇 해를 지냈다. 말 타면 종을 앞세우고 싶다는 말 있듯이 퇴비사를 짓고 싶었다. 퇴비사는 본래 있어야 하는데 사정상 짓지 못했다.

그래서 당돌하게 건축 허가 없이 퇴비사를 덜렁 지었다. 다 짓고 나니 보기는 좋았으나 불안하고 겁이 났다. 며칠이 지났다. 괜찮겠지 하고 마음을 놓았다.

어느 날 점심나절이 될 무렵 담당 공무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찌 알고 전화할까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들었다.

누군가 퇴비사를 지었다고 고발이 들어왔다고 한다. ‘고발’ 이란 말은 내 생애 처음 들어본 말이다. 끔찍스럽고 무서웠다. 어찌할 바 몰라 이리저리 다니며 서성거렸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고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고 머릿속이 텅 비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 건축 허가를 내고 할 것하고 몇 번이나 후회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허가가 나지 않은 곳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토록 짓고 싶은 퇴비사(堆肥舍).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지은 퇴비사였다.

정도 한 번 붙여보지 못하고 내 곁을 떠나야 했다. 그것도 일찍 고발했더라면 덜 속상할 텐데 작업을 끝내고 계산하던 그 날 고발했다. 얼마나 속상했던 지나는 너를 저주할 것이라 했다. 아무리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정성 들여 지은 퇴비사는 철거하는 사람의 손에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허공 속에서 말없이 흐느꼈다. 내 탓이다. 하며 가슴을 친다. 사라진 그 자리에는 외롭고 적적한 바람만 오갈 뿐 머릿속에 잠시 황홀했던 형상만이 썰렁한 그 자리를 메워 주었다.

생각할수록 속상했다.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누가 고발했던지 알아보고 싶었다.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다. 여태까지 남한테 시비 한 번 걸어본 적 없이 살아왔던 나에게는 너무나 억울했다.

고발하려거든 퇴비사를 짓기 전에 하든지 아니면 하지를 말든지 하지, 다 짓고 계산을 마치고 난 그다음 날 아침에 할 것 뭐 있나? 세상이 아무리 고약하다 해도 이것은 아니었다. 후일에 들리는 말로 나와 잘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왜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부딪쳐 보고 싶었다. 세상의 허무함을 느끼며 마음을 달랬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2015년 3월 24일 무허가 축사(畜舍) 적법화가 제정되었던 날이다. 여태껏 준공검사와 등록하지 못한 축사 때문에 속앓이하며 지내온 나에게는 더없이 반가웠던 날이다.

퇴비사 때문에 상한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치유해 주었다.
불법으로 애를 태웠던 축사도 말끔히 정리되었다. 등기필증을 빨간 보자기에 싸 들고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난 참 기쁨과 행복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든 시커먼 구름이 걷히고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며 반갑게 웃음을 안겨준다. 복잡한 세상에 새로운 각오로 출발하는 “무허가 축사 적법화”는 후손들을 위해 누구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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