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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인각사에 삼국유사 뿌리를심다

admin 기자 입력 2019.11.03 20:19 수정 2019.11.03 08:19

↑↑ 박만규 씨
ⓒ N군위신문
군위를 삼국유사의 고장 충효의 고장이라 한다. 지금으로부터 800여년전 고려국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가 훗날 이 나라의 스님으로서 국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지만 나라는 힘이 부족하여 원나라의 지배를 밭게되므로 한 노 스님으로 희망을 잃은 백성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하여 국사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군위와 인연을 맺게 됨은 인각사 부근 어느곳에 95세의 어머니가 살고 있기에 어머니를 봉양 하고저한 뜻도 있었을 것이다.

스님이 인각사에 오신 후 1년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스님도 5년후 돌아가시니 향년 84세 법납 71년 이었습니다.

이렇듯 스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5년동안 그동안 기록하고 모아온 시와 글을 엮어놓은 것이 삼국유사의 책이고 이 책이 군위의 보물로서 지금은 세계의 보물로 알려지고 있다.

이토록 큰 보물이 뿌리를 내린 인각사 부근 우보에 살면서 나는 인각사와 일연스님도 깊이 생각하여 본적이 없었다.

이러한 내가 2019년 10월 18일 군위군 문화관광 해설사 실무교육 관내 견학 시간에 처음으로 보각국사의 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망가질 수가 있을까, 그러나 복원된 비를 보고 마음이 한결 즐거웠다. 춤추 듯 휘몰아치 듯한 왕의지 행서체의 비문의 글씨 좀 더 머리에 남기고 싶어 가까이서 보고와서 형광등 불빛 아래서 해서체로 그림을 그리듯 춤추는 붓을 잡고 광대가되어 본다.

4000여글자 한자 한자 한문장을 공부하여 가노라니 문득 민지의 문장 죽허의 글씨속에 나라와 충열왕에 대한 충절 목숨을 걸고 이룩한 걸작이며 충열왕의 애절함이 일연스님의 비로 원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는 작품으로 과시하는 것이다.

당시 원의 속국이된 고려는 일연 스님 비명에 국사의 비명을 쓸 수가 없었다. 상국인 원나라에 국사의 제도가 있었기에 속국이된 고려에서는 국사란 호칭을 쓸 수 없음에도 보각국사비명으로 비를 세우고 원의 속국에서 벗어나는 대담성이다.

또한 충열왕은 일연스님이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음과 같이 일연스님이 충열왕 자신에께 꿈에라도 나타나서 정사를 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듯 보각국사비는 충과 효와 역사의 거울로 삼고 지금의 사람 모두가 깊이 생각하였으며 한 바램으로 해설사로 이바구꾼으로 이바구하여 봅이로다.

군위문화관광 해설사 교육을 마치고 개인 발표회할 글 연농, 박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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