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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경남 산청을 다녀와서

admin 기자 입력 2019.11.21 06:22 수정 2019.11.21 06:22

ⓒ N군위신문
만산홍엽이 짙게 깔린 만추의 계절. 비쩍 말라 볼품없던 말이 살찌고 하늘은 더없이 높고 맑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싸우느라 땀 흘린 흔적이 역력하다. 땀의 결실을 수확하는 농촌의 가을 풍경은 풍요롭고 아름답다.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각에 맞춰 모여든다. 한 사람 두 사람 얼굴을 들여다본다. 우리 지역 역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문화유산을 아끼고 보전하려는 마음가짐이 얼굴에 묻어난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보전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지역 연구가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2백여 명의 남녀 문화원생들이 지난 10월 31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경남 산청 찾았다. 경남 산청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한 곳이다.

산청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라면 목면(木棉) 시배(始培) 유지(遺址)와 동의보감촌(東醫寶鑑村)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신라 말기 유학자 문장가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유적(遺蹟)을 들 수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문화유적 답사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좋다. 산청의 문화유산인 목면(木棉) 시배(始培) 유지(遺址)와 동의보감촌(東醫寶鑑村)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겉만 보지 않고 속속들이 들여다볼 생각을 했다.

목화는 고려 말 문신이며 학자였던 삼우당(三憂堂) 문익점 선생과 목화씨에 대한 얽힌 사연이 있다. 문익점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목화씨를 붓 뚜껑에 몰래 숨겨왔다고 알고 있다.

〔고려사〕 기록에도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보국으로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얻어서 … …”라고 되어 있다. 숨겨서 들어왔다는 내용은 없다. 당시 목화는 원나라 곳곳에 널리 심겨있는 것으로 반출 금지 품목 아니어서 붓 뚜껑에 숨겨서 가지고 들어올 이유가 없다.

〔태조실록〕에도 문익점 선생이 길가에 있는 목화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주머니에 넣어서 왔다고 한다. 그 절반을 장인인 정천익에게 심으려고 했는데 한 개만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몰래 붓 뚜껑에 숨겨 들어왔다는 말은 후세에 전해지면서 와전된 이야기라고 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경남 산청은 문익점이 가지고 온 목화씨를 재배하는 데 실패했다. 문익점 장인 정천익이가 심은 하나만이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목화씨가 싹을 틔우지 못한 이유는 인도 면(印度 綿)이라 우리나라 기후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천익이가 따뜻한 지방에 재배하였기에 하나라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목화 역사, 목면시배유지 전시관에 들어갔다. 목화를 따서 햇볕에 말린 다음 목화씨를 빼기 위해 목화를 쐐기에 넣어 돌린다. 쐐기에 나온 솜을 활로 부풀려 일정하게 부드럽게 한다. 부풀린 솜을 대나무 꼬챙이에 고르게 마른다. 물레질 하며 고치솜에서 실을 뽑아낸다. 베 짜기를 위해 여러 가닥을 가지런히 모은다. 실에다 풀을 먹여 왕겨 불에 말려 강도를 높인다. 도투마리를 베틀에 얹어 무명 베 짜기 하는 모습을 전시해 놓았다. 삼우당 문익점은 백성들의 의생활에 혁명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베를 짜기 위한 과정을 보면서 한 점 한 점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마당 한가운데 왕겨 불을 피워놓고 실타래에 풀을 먹이며 솔로 올 하나하나를 빗질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실타래에 먹이든 풀 냄새 왕겨가 타는 냄새 등의 옛날 그때의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서 묻어난다.

전시관을 한 바퀴 돌면서 고치솜에서 실을 뽑는 물레를 보고 누가 물레를 발명했을까 궁금했다. 당시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손자 래(萊)가 목화에서 실을 자아내는 틀을 발명했다라고 한다. 그래서 성씨 文 자와 이름 萊 자를 붙여 文萊라 부르던 것이 변이되어 ‘물레’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울창한 숲속에서 상쾌한 냄새 맑은 공기 그리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며 먹은 점심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배불리 먹고 하늘과 맞닿고 있는 먼 산을 바라본다. 산꼭대기에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깊어가는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구암 허준 선생이 태어난 경남 산청 동의보감촌에 갔다. 동의보감 책은 1610년(광해군 2)에 완성하여 1613년 목활자로 처음 간행된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이다.

‘동의(東醫)’란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龜鑑)이란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목화 이야기, 구암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 이야기에 하루의 해가 모자란다.

가을이 깊어가는 고즈넉할 때 함양에 있는 고운 최치원 선생 유적이 있는 곳에 들렀다. 범해(泛海), 추야우중(秋夜雨中) 시로 유명한 고운 최치원 선생은 경주 최씨의 시조이다. 2013년 6월 26일 시진핑 주석이 한국에 국빈 방문했을 때 ‘범해’라는 시를 우리 대통령에게 드린 적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고운 최치원의 저서 ‘계원필경(桂苑筆耕)’을 소중히 다룬다는 소식에 우리의 문학의 깊이를 탐구하는 중국의 모습에 귀감이 간다. 계원필경이란 신라의 문신 고운 최치원의 시문(詩文)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렇듯 세월에 묻혀버린 귀중한 재산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몫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새로이 창출하고 발굴할 수 있는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때이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경남 산청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우리도 후손들에게 훌륭한 문화유산을 물려주면서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었으면 한다. 문화와 역사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 아쉬운 석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서로 손 흔들며 내일의 건강과 행운을 빌었다.

권춘수 대구가축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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