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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내 인생의 브레이크

admin 기자 입력 2019.12.15 22:42 수정 2019.12.15 10:42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좁은 도로에 자동차가 지천을 이룬다.
명절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서 있는 자동차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차들은 가다 서다 반복하면서 거북이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이 순간, 브레이크 고장으로 자동차가 멈출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참혹한 광경을 상상해 본다.

브레이크는 내 생명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명까지도 지켜주고 있는 파수꾼이다. 브레이크 없는 세상은 암흑의 세상과 무엇이 다를까. 세상만사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뛸 것이다.

밝은 세상은 한순간에 무법천지로 변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욱’하는 성질을 부려가면서 살아갈 수 없도록 제동을 건다.

복잡한 세상에서 삶이 어떤 것인가를 한 번쯤 되새기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 노루 한 마리가 포수에 쫓겨 달아난다.

숨을 헐떡이며 산등성을 넘고 넘어 고갯마루에 올라온 노루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개 들어 뒤를 돌아본다. 포수가 보이지 않은 것을 확인한 노루는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내 스스로 지혜롭게 살았다고 하지만 노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얻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기껏 허송세월뿐이다.

살다 보면 한 번씩 뒤돌아보면서 생각하고 고민하며 사는 것도 하나의 지혜일 진 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가다 서다 반복할 수 있는 제동장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브레이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소중히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운전하기로 마음가짐을 다짐한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어느 한여름 점심때였다. 한 축산농가에서 소의 발정이 왔다. 하며 전화가 왔다. 인공수정은 기술도 필요하지만, 발정 시간을 잘 맞춰 주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간을 잘 맞추어야 수정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고 곧바로 달려갔다.

자식 자랑하는 사람을 ‘팔푼이’라고 한다는데 걱정이 된다. 칠순이라고 자식들이 사준 소나타 신형을 선물로 받았다.

새 차를 몰고 멋도 부려보고 자랑도 하고 싶었다. 들뜬 기분으로 인공수정을 하러 갔다. 전화했던 집은 우리 집에서 약 12㎞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집까지 가는 도중에는 신호대가 여러 개 있었다. 어느 지점에 왔을까? 내가 달려가고 있는 도로 2백여 미터 앞에 신호대가 있었다.

오른편에는 4∼5십 채 넘는 큰 마을이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직진 신호에 따라 70여 ㎞ 속도로 서행했다.

차도는 왕복 4차선으로 중앙에는 분리대가 있었다. 분리대는 횡단보도까지 되어있지 않고 50여 미터 정도 남겨둔 상태였다.

동네 사람들은 들에서 일하고 동네로 들어오자면 먼 길을 둘러서 와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빨리 오려고 빙 둘러가지 않고 눈치껏 4개 차선을 가로질러 다녔던 것 같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조심스레 주행 신호에 따라가면서 횡단보도를 막 넘으려는 순간 주행 반대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느닷없이 달려와 차의 왼쪽 문짝을 들이박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그 자리에 멈췄다. 스피드미터가 없었다.
황급히 차에서 내려 그 사람을 부둥켜안았다. 얼굴에는 피가 낭자했다. 누군가 던져준 수건으로 얼굴을 말끔히 닦았다.

그 와중에도 걱정되어 그 사람의 가슴에 내 귀를 대어 봤다.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렸다. 살았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했으나 여전히 가슴이 쿵덕거리고 불안했다.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119는 환자를 싣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하늘이 노랗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받고 흐릿한 정신으로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보고 환자가 가망이 없어 보였는지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경찰이 치료할 수 없으면 환자를 큰 병원으로 빨리 보내시오 하며 야단친다. 그제야 시내 종합병원으로 갔다.

며칠 후 가족들과 같이 현장검증을 했다. 환자가 4차선을 무단으로 가로질러 오토바이를 몰고 온 것이 잘못으로 판정이 났다. 처음에는 방정맞은 생각만 들었다. 환자는 차츰차츰 회복되어 갔다.

일이여 년이 지났을까? 환자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에도 선뜻 가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당연히 식구들에게 위로의 말씀도 드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란 가슴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년 뒤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늘 마음속에 드리워졌든 검은 그림자가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원장이 사람을 치어 감옥에 갔다는 소문이 날개를 달고 퍼졌다.

찾아오는 손님도 적었다. 브루셀라병 검사, 구제역 예방할 무렵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집에 예방하러 가게 되었다.

주인이 나를 반색하며 언제 나왔나, 그동안 고생 많았지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그 사람에게 다잡아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얼굴색이 변하며 말을 더듬는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내가 감옥에 갔다는 소문을 듣고 병원을 안 하는 줄 알았다 하며 머리를 끌 적이며 머쓱해 했다.

지난날 악몽 같은 사고로 수년 동안 불안해하며 고민에 빠졌던 것을 생각하며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후부터 나는 자동차를 몰고 나갈 적마다 안전을 위해 브레이크를 점검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일상에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을 가속페달을 밟아 대형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가끔 본다.

브레이크 없는 세상은 죽음의 세상과 같다. 내 인생의 브레이크. 내 생명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의 생명까지도 지켜주고 있는 파수꾼이다.

권춘수 대구가축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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