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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애석한 마음

admin 기자 입력 2019.12.30 22:51 수정 2019.12.30 10:51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힘을 다 소진한 것 같다. 자두나무는 수령이 1백 년이라고 한다는데, 꽃피고 열매 맺고 하며 화려한 세월을 보낸 지가 겨우 수십여 년밖에 안 된다. 산전수전 다 겪고 한창 기쁨을 만끽하며 살 나이다.

그런데도 젊음의 패기를 마음껏 펼쳐 보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바람이 부는 데로 흔들리고 있다.

죽음은 막을 수 없다고 하지만, 누구나 살 만큼 살다 죽으면 행복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살날이 아득한데 죽으면 불행하다 보다 요절하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젊음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에 이러한 끔찍한 단어가 생겨났을 것 같다. 아무튼 죽을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도 죽임을 당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두가 탐스럽게 달린 6월이면 언제나 마음은 즐겁고 풍요롭다. 손을 뒷짐 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빨갛게 익은 자두와 일일이 눈 맞춤하며 밭을 한 바퀴 돌고 한다. 오늘도 예나 다름없이 밭을 한 바퀴 돌고 있다. 난데없이 탐스럽게 달린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잎이 누렇고 탱글탱글하던 열매가 쭈글쭈글해 있다.

나뭇잎들은 바람에 하나둘씩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엉성한 나뭇가지만 죽어가는 나무를 붙들고 있다.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무 밑둥치에 하얀 톱밥이 눈처럼 소복이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이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야 톱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끌과 끝이 뾰쪽한 연장을 가지고 나무껍질을 벗겨 가며 세세히 살펴보았다. 가까스로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구멍을 찾았다.

그 구멍을 통하여 톱밥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구멍이 있는 자리에는 나무와 껍질이 붕 떠 있었다. 흡사 밀가루를 반죽해서 불에 구울 때 반죽이 불룩하게 부푼듯했다. 구멍 따라 끌로 나무껍질을 벗겼다. 나무속에 커다란 진딧물이 집을 지어 그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진딧물 때문에 나뭇잎이 누렇고 나무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진딧물의 일생은 땅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자두나무에 들어간다. 자두나무는 당분이 많아 이름 모르는 벌레들이 많이 달려든다. 진딧물이 자두나무에 유독 많은 것을 보면 진딧물이 단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진딧물은 나무속에서 수액을 빨아먹고 나무속을 갉아먹으면서 산다. 나무를 갉아 먹고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을 통해서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하얀 톱밥이다. 그래서 진딧물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땅굴 파놓은 것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다. 나중에는 나무속을 텅 비게 만들어 버린다. 온전한 나무인들 견딜 수 있을까. 결국, 나무는 겉은 멀쩡하고 속이 텅 빈 통나무로 된 채 죽음의 길로 걸어가게 된다.

이런 것도 모르고 나무를 키운다고 하면서 손을 뒷짐 하고 어슬렁거리며 밭을 한 바퀴를 돌고 했다. 생각해 보면 한심스러울 짝이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뭐라고 했을까? 세상에 이보다 더 무식한 사람은 없다고 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두나무를 키운다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자랑을 늘어놓았으니 할 말이 없다.

마음을 추스르고 진딧물과 전쟁을 시작했다. 죽어가는 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었다. 너를 끝까지 지켜 주지 못했던 내 탓도 있지만, 진딧물 때문에 네가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까, 꽃도 제대로 피어보지 못하고 열매도 충실히 매어보지 못하고 죽음까지 위협을 받았으니 가엾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진딧물을 잡아 죽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진딧물아! 너는 나무가 죽어 쓰러져 가는데도 본척만척하느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는 천벌을 받아 죽어 마땅하다. 나무가 먹고사는 수액을 다 빨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육질까지 갉아 먹고 나무를 죽임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남이야 어떻게 살든 오직 나만 배불리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것 같아 너를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너를 죽이려고 오만가지 약을 다 써도 죽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다. 오늘 담판을 내야겠다. 나무 밑둥치에 톱밥의 흔적이 있는 나무를 찾는다. 진딧물을 잡을 때까지 뾰쪽한 연장으로 나무껍질을 온통 다 벗기다시피 한다. 진딧물이 나무둥치를 갉아먹고 땅굴처럼 파 놓은 나무를 본다. 이 나무도 얼마 못 가서 죽겠다고 생각하니 삶의 허무함을 느낀다. 진딧물을 잡았을 때의 기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기쁘고 속이 시원했다.

그래서 진딧물을 죽일 때는 그냥 죽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가혹하게 죽인다. 그렇게 죽여도 맺혔던 응어리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어느 때는 껍질을 나무 전체 다 벗겨도 진딧물을 잡을 수 없었다. 진딧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담판을 지어야 했다.

죽어 가는 나무를 보면서 일찍 발견하지 못해 애석한 죽임을 당하게 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조금만 더 일찍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러한 불행이 닥치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든다.

어린나무가 견디기 힘든 바람이 불면 부러질까, 한겨울이면 얼어 죽을까, 열매가 많이 달리면 무거울까, 병충해 입을까, 비가 오면 습기가 많아 죽을까, 가뭄이 심하면 말라죽을까 걱정하면서 애지중지하게 키웠다.

어느새 몰라보게 컸던 것이 너이다. 탐스러운 열매로 식구들의 얼굴에 늘 웃음꽃을 활짝 피우게 해 주었다.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홀연히 내 곁을 떠난다니 애석한 마음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정이란 들기는 쉬워도 떨어지기는 어렵다고 한다. 네가 떠난 자리에 나무를 심어놓고 너를 보듯 키우고 있다.
따뜻한 봄이 찾아오거든 한번 다녀가려무나. 기다리고 있으마.

권춘수 대구가축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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