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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좁은 문에서 하늘의 문으로

admin 기자 입력 2020.01.23 10:41 수정 2020.01.23 10:41

↑↑ 황한택 씨
ⓒ N군위신문
나의 삶에서 가치관을 일구는<생각>의 출발은 고교시절 은사이신 고 김규성 선생님께서 장용학의 소설 <원형의 전설>열독 추천으로부터 비롯된다.

원형(동굴)이란 원초적 힘에 이끌려 행해진 오택부와 오기미 남매간에 태어난 주인공 사생아 이장이 사회적 갈등을 겪으며 다시 근친상간으로 세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세계는 원래 원형이며 현대의 병적인 문명에 의해 경계와 매듭, 처음과 끝이 생겨났다.

이런 이분법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인간은 주관적인 편견과 의식의 조작 속에 감금되어 있어 이러한 이원론의 분열에 맞서 일원론의 원융의 세계를 그려보고자 하는 내용이다.

대학에 진학하여 경영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교양학습 과정(인문학)을 두어 문학 강의를 한 학기 배우고 토론하면서 앙드레 지드 소설 <좁은 문>과 토스토엡스키의 <죄와 벌>을 접하고 생각의 큰 물기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좁은 문 -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바람이 난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제롬을 통하여 지드 소설의 일관된 주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종교적 경건함>과 <쾌락을 추구하는 현실적 본능>의 이분법적 대칭 관계에서의 갈등을 보여준다. 예수의 가르침은 교회라는 울타리 안의 삶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다짐이리라.

제롬과 사랑하는 외사촌 알리사는 주일예배에서 함께 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설교 말씀대로 제롬은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넘어 하나님의 길에 이르듯이 노력한다면 알리사와의 사랑에 결실을 가져오게 되리라 믿고 사랑을 고백하지만 알리사는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제롬을 실망시킨다. 제롬은 알리사를 단념하고 3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둘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알리사는 지상의 사랑을 버리고 ‘좁은 문’을 거쳐 행복에 이르는 길을 걷고자 한다.

그 뒤 제롬은 알리사가 요양원에서 숨진 사실을 동생 줄리엣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된다. 알리사의 일기에는 “하나님이시여 다시 한 번 그 분을 만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라는 구절을 비롯해 몹시도 제롬을 사랑했지만 ‘좁은 문’인 하나님에의 봉사 때문에 고민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문 - 1,085페이지에 달하는 연작 소설이자 작가 이윤기의 삶과 공부 과정을 쓴 자전적 인생론은 70고개를 넘어온 나의 삶 과정에 결론의 모티브(motif)를 제공해준다.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태어난 해방둥이 유복자 이유복이 자신의 어릴 적 삶 속에서 한국전쟁과 가난을 겪은 것부터 중·고등학교 생활, 교회생활과 그 시절의 낭만과 풋사랑, 신학교 진학, 그리고 사랑하는 한재인의 출산과 입대, 월남전 파병, 전역 후 건설현장 체험, 미국 유학생활과 작가로서의 삶,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떠난 일본 여행, 그리고 모든 오해의 해결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인생사이다. 그 속에 작가의 종교관, 인생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삶의 카리큘럼은 학교와 교회가 마련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사람은 창조적인 사람은 자기 삶을 위한 커리큘럼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학교는 공부를 하는 체제이지 삶을 가르쳐 주는 곳은 아니예요. 교회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체제이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 것은 아니예요.

미당 서정주의 <나를 길러 준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는 시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삶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라는 바퀴에 잠깐 실렸다가 사라지는 것에 지나지 못한다. 어디에 처할 것인가! 바퀴살을 잡고 있으면 바퀴가 구를 때마다 내 몸이 오르내린다. 나는 이 기복이 싫다. 그래서 굴대 쪽으로 다가가 본다. 굴대의 중심에 부동의 일점(一點)이 있다. 그 일점이 내 자아가 있는 자리다.>

<산을 오르내리다 가만히 보면, 선산은 내가 오르내리는데도 부동하는 한 점이 있다. 그 한 점은 내 아버지 대에 그랬듯이 내 아들 대에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 부동의 일점이 내가 인식하는 하늘의 문이다.>

이 윤기는 대미를 이루며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결론으로 삼는다.
<나는 사람의 삶은 나와 남의 관계속에서 끊임없이 그 삶을 변화시켜 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남의 삶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나는 가정합니다.

첫 번째는 포두가 포도즙이 되는 것과 같은 물리적인 변화의 단계인데, 나는 이것을 <변형(Transformation>이라고 불러봅니다. 두 번째는 포도가 포도주로 되는 것과 같은 화학적·연금술적변화의 단계입니다. 나는 이것을 <변성(Transmutation>이라고 불러봅니다.

세 번째는 포도주가 그것을 마신 사람안에서 성체가 되기도 하고 술주정이 되기도 할 때 일어나는 제3의 초물질적인 변화의 단계인데 나는 이것을 <변역(Transubstantiation)>이라고 불러봅니다. 이 변역의 특징은 끊임없이 변역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이라고 부르는 종교의 가르침이 여러 각도로 달리 해석되는데도 불구하고 연쇄 작용을 통하여 끊임없이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연쇄 작용을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경험하는 사물을 무엇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 저 사람은 저 사람이 경험하는 사물을 무엇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 이것이 내가 들게 된 화두이자, 나와 남이 지어내는 행위를 평론할 때 쓰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란 화두를 들고 변역을 거듭하면서 큰 매듭 <生命史觀> 남기고 작고한 이 찬구 교수는 철학과 종교와 과학의 합일(合一)을 지향하며 우주와 지구와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생명체다. 따라서 우주 역사의 발전 과정은 <생명 에너지>의 진화 과정으로 부드러운 자유와 날카로운 질서가 조화롭게 실현되는 시대 즉 자유시장경제와 공공복지제도가 동시에 실현되는 <하나의 지구촌 시대 - One World>로 발전해간다고 설파한다. 형제처럼 지내며 토론하고 논쟁하다가 너무 일찍 작고했다.

그 생명 에너지는 어디서 생겨나는가를 두고 이 교수는 <신의 존재>를 믿었고 나는 감히 <스스로 그러함>으로 일관한다. 죽기 전에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의 융합>으로 가는 길을 찾아 「One-World」의 세계를 그려보는 꿈을 꾸고 있다.

서울 황한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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