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정들었던 회를 떠나면서

admin 기자 입력 2020.02.18 15:02 수정 2020.02.18 03:02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2020년(庚子年) 1월 7일. 오늘이 여러분들과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습니다.
40여 년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지내왔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한국의 미래는 청년의 힘’으로 라는 구호 아래 청년회의소 창립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우리에게 아쉬운 석별의 시간을 알려줍니다. 정들었던 회를 떠나야 한다니 마음이 무겁고 착잡합니다.

진작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것을 나누며 즐겁게 지낼 걸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정이란 게 참 묘합니다. 떠나는 사람에게 그냥 보내면 될 것을 한 말씀해 주십시오. 하는 안진석 회장님과 집행부 그리고 회원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돌아보건대, 우리는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멀고 먼 고난의 행군을 걸어야 했습니다.
군위청년회의소는 1977년 2월 26일 (사)한국청년회의소로부터 인준을 받았으며 특우회는 1983년 3월 5일 (사)한국 청년회의소 특우회로부터 인준을 받았습니다.

특우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12년 2월 23일 (사)한국청년회의소 특우회에서 탈퇴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대표적인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은 회원님들의 땀과 정성으로 이뤄낸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는 미래를 먹고 노인은 과거를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의 이야깃거리는 하나같이 똑같았습니다. 단체모임 사회생활 직장생활 등을 하면서 겪었던 과거 이야기뿐입니다. 어느 때 나는 자랑거리가 없어 남들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민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영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남의 이야기만 듣고 참고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즐겁고 재미있었던 이야깃거리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회관을 건립할 때 숨은 이야깃거리랑 청년회의소 회장을 선출할 코커스 미팅(caucus meeting) 등을 자랑하려면 종일 해도 해가 모자랄 정도입니다.

본래 코커스 미팅이란 본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회원끼리 미리 갖는 예비 회의를 말합니다. 우리는 미팅의 본질과는 다르게 코커스 미팅이란 이름을 빌려 회장을 선출할 때 재미있는 분위기 속에서 입후보자에게 짓궂은 질문도 하고 답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한 미팅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회장으로 출마한 회원은 출마한 사유와 목적과 회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소신을 분명하게 밝혀야 했습니다. 이 순간은 자기의 포부와 열정을 마음껏 펼칠 절호의 기회이고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소신을 밝힌 뒤 회원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회장에 당선되면 회의 살림을 어떻게 꾸러 나가겠습니까. 회의 발전을 위해 협력기금을 얼마 내겠습니까? 하며 익살스러운 질문을 마구 쏟아냅니다. 기금을 얼마 내겠다고 답하면 적다 많다 하면서 폭소를 자아내면서 해맑은 웃음으로 회의장을 들끓게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 어느덧 노인이 다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면 노인답게 살아야 할 텐데 노인이란 이름을 듣고 싶지 않아 걱정입니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아무 생각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어떻게 늙어야 옳게 늙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두렵습니다.

금방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을 보면 노인이 되면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생각만 듭니다. 이젠 나도 노인 소리를 들을 만큼 나이가 되었으니 마음 놓고 지껄여 대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마구 지껄여대는 것은 아닙니다. 여태까지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자랑거리를 오늘 여러분들 앞에 늘어놓을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고 참 행복합니다. 혹여 잘못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4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청년회의소와 라이온스클럽 로터리클럽 세 단체가 있었습니다. 인구가 적은 우리 지역에 세 단체가 있어 회원 확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여 튼튼한 청년회의소를 만들어나가는 데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어느덧 회원들도 중년이 다 되었습니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갈고닦은 역량과 실력을 사회에 환원하여 풍요롭고 살기 좋은 내 고장을 만드는 데 앞장설 재목 거리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허황한 꿈이었을망정 남모르게 키워왔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감내하기 힘든 번뇌와 고뇌도 많았습니다. 회의 발전을 위해 회원은 타 단체에 가입할 수 없다.

‘가입하려면 탈퇴해야 한다’라는 비상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에 반발도 만만찮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타 단체에 가입해 있는 회원이 7∼8명이 있었고, 앞으로도 몇 명이 더 가입할 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우회가 와해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불안하고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 총회에 안건이 채택되어 열띤 토론 끝에 투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가부 동수였습니다. 캐스팅보트가 된 회장이 원안에 찬성하여 가까스로 회원은 타 단체에 가입하려면 탈퇴해야 한다는 원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특우회는 오늘과 같은 막강한 특우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회원님들의 끊임없는 협심과 단결로 끌어낸 결과라고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청년회의소 창립 초기에는 괄시도 받고 서러움도 많았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든 데 부담스러운 회비를 내가면서 활동한다고 말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만 하는 단체라 하며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감수하면서 창립하면서부터 남의 집 건물에 곁방살이하면서 지내왔습니다. 회원 수는 점차 늘어나고 회의 장소는 좁고 해서 회의할 적마다 ‘회관을 짓자’ 하는 말이 노랫말처럼 되었습니다.

회관을 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형편에 따라 얼마씩 출연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불가능한 일을 해냈던 것입니다. 고생 끝에 2층짜리 회관을 지었습니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우회도 창립할 당시 분위기가 약간 어수선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홍윤 회장님의 숨은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특우회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회관을 지을 때 건축에 관심이 높으신 손영수 회장님께서 재능기부를 해 주신 덕분으로 우리는 버젓한 회관을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의 헌신적 노력과 희생에 감사와 위로의 뜻으로 다 같이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뒤돌아보면 짧은 만남 속에서 우리들은 많은 숙원사업을 이루어 냈습니다. 젊음을 불태워가며 갈고닦은 역량과 기술을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청년회의소 회관을 준공하였으며 1995년 작고하신 박만관 군의원님을 필두로 하여 단체장 도의원 군의원 등 훌륭한 지도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지역마다 청년회를 구성하여 젊음의 기상을 높이는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기쁨이요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뜨거운 패기와 열정이 과열 양상을 띠는 것 같아 때로는 민망스럽고 안타까움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서로의 파멸입니다. 가정에 족보가 있듯이 우리는 결코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렵사리 이룩한 40여 년 역사를 헛되이 되지 않게 잘 가꾸고 보존하여 사회를 대변하는 성숙한 특우회가 되도록 노력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선배로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많은 이해와 관용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특우회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