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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다시 보는 중국 사관(史觀)

admin 기자 입력 2020.03.17 23:46 수정 2020.03.17 11:46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형체도 가늠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쫓기고, 사람이 사람을 피해 다녀야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바이러스 발원지 차단 실패로 온 국민이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를 감염이란 타깃에 노출되어 공포에 떨고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통해 감염된다고 한다. 대한감염학회는 두 차례 코로나 감염 우려에 대한 권고문을 내고 4가지를 경고했다.

중국 입국제한 확대, 지역감염 확산차단, 원인불명 감염자 급증대비, 음압병상 포화를 우려했다. ‘코로나19’ 발원지는 중국이다. 질병관리본부는 1월 20일 중국 여성이 국내 코로나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초기에 중국발 입국자를 차단하지 않아 국내 확진자가 계속 늘어났다.
초동 방역실패에 따른 대응조치가 오락가락하고 마스크 하나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은 자자하다.

코로나 확산을 막을 중국발 입국자를 통제하지 못해, 한국이 되레 입국제한을 당하는 국가적 수모에 분노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면 세계 189개국 곳곳을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는 나라가 어느덧 100개국을 훌쩍 넘었다. 유엔 회원국 193개국의 절반을 웃도는 국가가 한국을 코로나 확산 위험 국가로 보고 빗장을 걸었다.

심지어 섬나라 모리셔스에서도 한국에서 온 신혼부부 17쌍을 문전박대했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 북이 되다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각국은 앞을 다투어 중국인 입국통제로 이어졌지만, 우리 정부는 ‘특정나라, 특정국민의 입국을 막는 것이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며 막을 생각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 지난 2월에 통화하면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다. 코로나 대응에서 중국 측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동변상련(同病相憐)을 표했다.

한술 더 뜬 보건복지부장관은 ‘ 코로나 확산에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돌아온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감염원이라고 국민 가슴에 대못까지 박았다. 왜들 중국이라면 설설 기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중국 앞에 만 서면 납작 엎드려 쩔쩔 매고 기를 못 편다. 성주에 사드 배치 때도 손사래를 쳤다. 수백 년 속국(屬國)으로 산 삶에 길들여서인가, 아니면 사대주의 사고방식에 젖어 선가.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즉위 다음날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건국승인을 요청하고 명 황제는 국호를 조선으로 택해 줬다. 이후 조선은 명과의 관계를 ‘천자(天子=皇帝)-제후(諸候=屬國)’의 관계로 유지하면서 새 왕이 즉위할 때마다 명 황제의 승인을 받은 후에야 왕위에 올랐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암울(暗鬱)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1636년 12월 청은 조선을 침략하고 5일 만에 한양을 함락시켰다.

이에 굴한 인조는 삼전도(三田渡)에 나아가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1636년 청에 항복한 조선은 청일전쟁이 끝나는1895년까지 259년을 자주권도 없는 나라로 청나라에 빌붙어 노예처럼 살았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한 청나라가 휴전협정에 서명한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으로 전쟁은 끝났다. 조약의 주요 골자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에게’조선을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하고 조선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는 내용의 협정조약이다.

조선은 비록 일본에 의해 청에서 벗어나 비로소 청나라와의 사대(事大)나 조공(朝貢)의 사슬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시모노세키조약’이 입증하고 있다.

2012년에 개봉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영화 속 광해군 어전(御殿)에서 여러 판서들이 충성경쟁이나 하듯 명나라에 보낼 조공을 진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백성 2만 명을 명나라에 보내 오랑캐에 짓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사대(事大)의 예를 표하자고 진언한다.

이 말에 광해군은 발끈해서 “그대들이 죽고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곱절 백 곱절은 더 소중하다. 도대체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요, 명 황제가 그리도 좋으시면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시던가. 좀 부끄러운 줄 아시오”판서들의 사대 주창(主唱)을 참지 못하고 광해군은 마침내 분통을 터트린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의 일부분을 재구성한 픽션 사극영화 장면이다.
500년 전 백성을 어여삐 여겼던 광해군의 분노에 찬 그때 그 고함소리를, 어느 세월에 어느 누구의 목소리로 한번쯤 들을 수 있을 런지.

문대통령은 2017년 12월 중국 북경대학 연설에서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며 모국을 낮추고 대국(大國)인 ‘중국몽(夢)’에 함께 하겠다고 했다. 지구상에 200여국이 있지만 인구 5천만 명이 넘은 나라 중에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이탈리아, 한국 등 7개 국가밖에 없다.

우리는 미합중국에도, 중화민국에도 붙이지 못하는 큰 대(大)로 시작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초대 노영민(현 청와대 비서실장)주중대사가 시진핑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방명록에 ‘만절필동,공창미래(萬折必東,共創未來)’라는 글을 남겼고, 북경 외교가에 인사를 다니며 써준 글도 ‘만절필동’이었다.

‘만절필동’이란 말은 춘추전국시대 순자(荀子)가 쓴 말이다. 황하(黃河)가 수만 번 꺾여 흐르지만 결국은 동쪽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중국에선 충신의 기개와 절의로 읽히지만, 사대주의를 함의하는 충성의 맹세로 오해할 수도 있을 심히 우려되는 글이다.

선조는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 조선을 구해 준 명나라에 끝까지 충성하겠다는 뜻으로 ‘만절필동’넉자를 충북 화양 계곡 절벽에 선조 친필로 새겨 놓았다고 한다.

그때 조선은 중국을 황제의 나라로 받들었던 것 같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는 정부의 해괴한 변명을 들으면서 지금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사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중국은 우리에겐 언제나 지형적, 숙명적 존재인 것 같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의하면 시진핑 주석이 한중간에는 수천 년 역사 속에 많은 전쟁이 있었다고 전제 한 뒤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한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한국을 과거에 지배했던 속국처럼 우리를 깔보고 있는 것 같아 모멸감을 느낀다.

미국 시카코대 존 미어샤이어 국제정치학 교수는 “한국은 한 치도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지정학적 환경에 살고 있다.

국민 모두가 영리하게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뼈아픈 말을 했다. 1910년8월29일 한일 병합이 공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일본은 35년 간 우리를 식민지로 억압하고 괴롭혔지만, 중국은 짧게는 500년, 길게는 천년동안 조선 임금을 허수아비처럼 여기고 수많은 백성을 살상하고 잡아가 노예로 팔고 영토를 침략한 사실(史實)만은 대대손손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세계10위권 경제대국답게 어떤 큰 나라에도, 중국에도 맞설 당당한 결기가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고, 한국인으로 우쭐거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환영받던 나라라도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 한 순간에 고립무원에 빠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코로나’사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대유행 역병이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만 세계 속에서 왜 소외되고 있는지, 그동안 우리가 누려온 것들이 무엇이지, 무엇을 어떻게 잘 못 대처했는지 이번 기회에 중국에 대한 역사인식도 되짚어 봤으면 한다.

황성창 시인(재부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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