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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빨리빨리 문화

admin 기자 입력 2020.05.04 22:23 수정 2020.05.04 10:23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의 랜드 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느 때는 외국 사람들이 빨리 빨리라는 말을 할 때 비아냥거리는 소리 같이 들려 비록 좋은 뜻으로 말했다고 하더라도 기분 좋게 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세계의 통용어가 되다시피 사용하고 있어 덤덤히 받아들여진다.
세계는 자기들만의 고유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느린 국민성 급한 국민성 등 다양하다. 유별나게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세상을 바쁘게 살아간다. 좋은 것만 아니지만 나 역시 바쁘게 살아간다. 나뿐만 아닐진대, 누구나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등 전반에 걸쳐 남한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긴장과 압박감 속에 살아간다.

장마가 오기 전에 보리를 타작해서 폭맥 하려고 마당 한가운데 멍석을 펴고 누런 보리를 널어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들에 가시고 나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멀쩡하던 하늘에 먹구름 떼가 몰려와 세차게 소낙비를 퍼부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소낙비에 정신 차릴 겨를이 없었다.

눈만 뜨면 보이던 방수 천막도 보이지 않았다.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멍석 위에 펴놓은 보리가 비에 떠내려가려고 꿈틀거렸다. 발을 동동 굴리며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보리는 하나둘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줄기차게 내렸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쉴 사이 없이 흘러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텅 빈 마당에 얄궂게 내리고 있는 비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소 먹일 꼴을 지게에 지고 땀을 뻘뻘 흘리시며 들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멍석에 널어놓았던 보리가 비에 떠내려가고 하나도 없는 것을 보시고 얼굴이 굳으셨다. “비가 오면 방수 천막이라든지 무엇이라도 빨리 덮든지 하지 뭐 했느냐” 하시면서 큰소리치셨다.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가 그까짓 것 보리가 뭘 그리 대단하다고 철없는 애한테 그렇게 꾸짖느냐 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가로막았다.

아버지 말씀대로 빨리 덮었으면 괜찮은 줄 알면서도 쏟아지는 소낙비에 당황한 나는 마음이 급하고 방수 천막은 보이지 않고 허둥대다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보리를 떠내려 보낸 죄스러운 마음으로 자세히 말씀드릴 용기가 나질 않아 말할 수가 없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표어가 가끔 눈에 띌 때였다. 아파트에 살 때 바로 옆 호수에 중년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젊은 한 아주머니가 대파 한 단을 비닐에 싸 들고 옆집 초인종을 눌러 대고 있었다. 주저 넘게 누구시냐고 물어보았다.

그 아주머니는 이 댁에서 대파 한 단 시켜서 배달 왔다며 계단을 뛰어 올라오느라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대답했다. 같잖고 기가 찼다. 엎어지면 코가 다일 텐데 다리가 뿌려졌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되어 젊은 아주머니는 파, 배추, 감자 등 농산물을 싸 들고 매일 같이 이집 저집 배달하느라 정신없었다.

사람들도 처음에는 배달 주문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이제는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배달했다. 조용하던 세월이 늘 조용하지만 않았다. 빠른 세월에 못 이겨 때아닌 눈보라가 휘몰아치면서 경쟁 시대가 시작되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다.

빨리라는 문화가 날개를 달고 개인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쌀 등의 무거운 화물은 화물 택배로 보내고 받고 했다. 보낸 물건이 도착했는지 알아보려고 택배 영업집에 하루에 수없이 오가고 했다.

이제는 택배 배달이 대중화되면서 큰 화물뿐만 아니라 식품 의류 생필품 등 사소한 것까지 집안까지 배달해 주는 택배회사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심지어 국영기업체까지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며 의심하였지만, 스피드 시대 걸맞게 모름지기 생활화되었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외세 침략에 시달려 왔다. 잠시라도 마음 편히 지낼 날 없이 쫓겨 다니듯 급하게 살았다. 밥 먹을 때 일할 때 어디에 갈 때도 늘 서두르고 바빴다.

그것이 습관화되어 느릿느릿한 성격이었던 조상들의 성격마저도 어느새 급하고 조급한 성격으로 변했다. 모름지기 이것이 몸에 뱄다.

이제는 양반다리 하고 하루에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밥을 먹으면 어머니는 얼른 먹고 치우라고 하셨다. 어느 때는 조그마한 일에도 조금만 늦어도 꾸물댄다고 야단을 치셨다. 야단맞으면서도 힘든 순간순간을 버티며 살아왔다.

그 순간들이 이제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의 랜드 마크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의 눈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2019 기해년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이 인류 최악의 전염병 페스트(흑사병)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가 처음으로 발생하여 많은 인명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만들어 펜데믹 확산을 조기에 막았다.

이것은 우리 문화의 자랑거리요 후손에 물려줄 주요한 자산이다. 잘 보존하여 후세까지 건강에 필요한 가이드가 되었으면 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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