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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혹시나가 역시나다

admin 기자 입력 2020.05.19 22:25 수정 2020.05.19 10:25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전화가 걸려온다. 봄이 온다고…. 오면 될 텐데 누가 말렸나 은근히 속 상한다.
부산떨며 오는 것이 역겹고 마음에 걸린다. 봄이 온 줄 모르고 뭉그적거리고 있는 산골짜기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다. 새싹들이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봄소식을 전한다.

지난해 봄이 어떻게 생겼던지 기억나지 않았다. 올해는 꼭 보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세상만사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우리나라도 1월 20일 발생하여 우리를 경악케 했다. 설마 괜찮겠지 하며 반신반의했던 코로나가 하루에 한두 명씩 확진자가 나왔다. 사람들은 TV 앞에서 불안해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다.

매스 미디어에서 대구 신천지 교회에서 집단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람들은 긴장하면서 신천지 교회로 눈이 쏠렸다. 교주가 나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방역업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루에 수십여 명씩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

삽시간에 전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교회를 봉쇄 하라고 연호를 외쳤다. 자식이 신천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몰랐던 부모들은 내 자식 내놓으라 하며 통곡한다.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이러스다. 암은 전염이 되지 않지만, 바이러스는 전염이 된다. 아주 빠른 속도로…. 대구 신천지 교회에서 코로나 19, 31번째 환자가 확진자로 판명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코로나 19 발원지가 대구라고 했다.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심했던 일도 한둘 아니었다. 대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디에 갈 수 없고 가려고 해도 못 오게 했다.

어디에 사느냐고 물어도 대구에 산다고 말을 할 수 없다. 친구가 상을 당해도 갈 수 없다. 외지에 있는 자식이 부모를 찾으려 해도 부모는 한사코 말린다. 혹여 자식이 다녀간 후 코로나 19가 발생한다면 빗발치는 이웃들의 눈초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자식을 지척에 두고도 만날 수도 볼 수도 없으니 생이별보다 더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묵묵히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대구광역시 관계자와 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혈육은 끊을 수 없었다. 코로나 사태로 전국이 들끓고 있는 와중에도 대구에 있는 자식들이 걱정되어 안부 전화가 온다. 경산에 코로나 19 감염 확진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을 때이다. 경산에 있는 처남댁이 내가 입맛 없다는 소식을 듣고 남의 눈을 피해가며 배추를 김장김치처럼 맛 갈 나게 담아 왔다.

오후가 되면 햇빛이 방안까지 쏟아진다.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눈이 시려 햇빛 가리개로 가려야 한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 문이 열리는 소리가 착각할 정도로 들린다. 누가 왔는지 문을 열어 본다. 아무도 없다.

우체국 배달원이 우편물을 집안에 넣어놓고 문 닫는 소리다. 그러고 난 후 얼마 되었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경산에 있는 둘째 처남댁이다. 아주버님께서 입맛이 없다 하시기에 좋아하시는 김치를 반찬통에 담아 문 앞에 두고 갑니다라고 한다. 인사드리고 싶어도 사람들이 볼까 봐 그냥 돌아간다고 한다. 세상에 어찌 이를 수가! 수백 리 먼 길에서 모처럼 찾아온 처남댁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죄인처럼 남들이 볼까 두려워하며 종종걸음으로 내달리는 모습이 아련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 전달하지 못해 애만 태운다.
마스크 끼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외출할 때나 누구 만날 때 심지어 들에 갈 때도 마스크를 껴야 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관공서 병원 은행 같은 데는 꼭 껴야 했다. 때론 잊어버리고 마스크를 끼지 않고 관공서에 들어가다 정문 앞에서 승강이를 벌 릴 때도 있었다.
갑자기 마스크 사용 숫자가 늘면서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예상치 못한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전쟁과 다름없었다.

마스크 두 장 사려고 꼭두새벽부터 우체국 농협마트 앞에 긴 줄을 서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물량이 적어 눈 깜짝할 사이 다 팔렸다. 추위에 벌벌 떨며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렸던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때만 해도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황사용 마스크 KF94가 있는 줄 모르고 일회용 마스크 50장들이 한 통을 샀다. 코로나 19사태가 점점 더 심각했다. 마스크를 끼지 않고는 바깥출입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불안하여 또 사려고 갔다. 하얀 마스크는 없고 검은 마스크밖에 없었다. 검은 마스크는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지 않았다. 그마저 그것도 한 통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그것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약국에 갔다. 그새 누가 사서 가지고 가버렸다. 사람들이 마스크 한 장이라도 더 사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볼 때 일회용 마스크라도 감지덕지라 생각했다.

혹시나 봄을 보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역시 나다. 지난해 봄이 왔든지 갔든지 모르게 지나갔다.

올해는 봄맞이하려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기대는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하루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되기를 바란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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