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어버이날, 가족의 의미

admin 기자 입력 2020.05.19 22:30 수정 2020.05.19 10:30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2020년 봄처럼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나 싶다.
코로나 사태가 봄을 통째로 빼앗아 갔으니 말이다. 봄꽃들도 저희들끼리 피었다가 어느새 떠났는지 꽃 진 자리가 진한 초록으로 물들어지고 있다.

수필가 피천득은 청순하고 생동감 넘치는 오월의 이미지를 ‘방금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과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투명한 비취가락지’라고 찬미했다. 더욱이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와 모란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한들거리는 푸른 잎들이 연한 물결처럼 느껴지는 신록의 계절이기도 하다.

오월에는 가족과 관련된 날이 3개나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부부의 날처럼 가족 간의 유대를 기리거나 성년의 날 같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날들이 그러하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자식으로 맺은 가족끼리 어떤 마음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봤다. 부모라는 말은 자식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가족이라는 말만큼 우리에게 안온하고 인정스럽게 느껴지는 단어는 없을 성 싶다. 가족이란 부모를 기둥삼아 천륜으로 꽉 얽어맨 울타리로 둘러싼 가장 밀접한 인간관계이다. 그럼에도 가족 서로 간에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병행(竝行)해야 할 필연적인 상관관계에 놓여 있기도 하다.

가족 관계는 인류 역사이래로 형성해 왔고,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지구상에서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가족형태가 유지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가족이 주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그러나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존재감과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가족이 무엇인지, 가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의 물음에는 부모-자식, 형제자매로 좁혀 직계가족으로 매기고 싶다. 가족이란 대대로 이어 온 가계의 혈통, 운명의 공동체로 공통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면서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혈연이다.

부모-자식관계는 피붙이로 본능적 애착이 강한 특수한 관계다. 부모는 자식이 성장 자립할 때까지는 보호자로서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다. 부모-자식관계는 어떠한 인간관계보다 중요하며 자식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아버지의 행동습성이나 태도가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아비의 품성 그대로 자식들에게 투사(透寫)하고 반영한다고 본다. 그만큼 아비의 품행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밖에서는 독한 사람으로, 혹은 무서운 사람도 아버지가 되면 남들과 똑같이 자식바라기가 된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자신을 늘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와 갖추기 힘든 자격이 과연 무엇일까. 부모는 자식들을 키우면서 부모노릇하기 힘들다고 하소연 한다.

그렇다고 부모노릇을 도중에 그만 둘 수는 없지 않는가. 부모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를 느끼다가도 일단 부모가 되었으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부모가 된 전생의 업이 아닐까 싶다.

자식들이 클 때는 어렵고 힘들기만 했고, 더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알게 모르게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며 키우든 마음은 늘 초조했다. 하지만 그 고비도 다 넘기고 보니 모두가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부모-자식 간에 얼마나 서로가 사랑하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느냐는 결과만 평가한다. 허무한 가정(假定)이지만, 만약에 내가 다시 우리 자식들 어릴 때처럼 부모자리로 되돌아간다면 ‘자식들과 더불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꿈을 꾸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고 추억’도 만들어 주는 친구 같은 부모가 될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것은 부모의 따뜻한 한 번의 눈 맞춤, 다정한 말 한마디를 바랐던 게 어쩌면 자식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짠하고 아쉬움만 가득 쌓인 세월이 삼사십년 지난 지금도 힘들었던 회한의 그때가 아스라이 떠오른다. 많은 세월이 흘러간 옛 이야기다.

지금은 천지가 개벽한 디지털시대, 예전에 누렸던 부모의 권위는 사라지고 오히려 의무만 더 있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주자학에서 기원된 유교철학의 영향으로 부모는 자녀에게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웠으나 현대에 오면서 권위는 급격하게 추락하고 쇠퇴해 가고 있다.

부모라고 억지 부려 낡아빠진 권위를 찾겠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식 옆구리 찔러가며 부모의 영을 세워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칫 잘못 좌충우돌하다간 낭패를 당하기가 딱 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젠 부모보다 잘난 자식 자랑하다 팔불출 소리 듣더라도 동네방네 자랑하며 어깨를 으쓱대며 살고 싶다.

자식들이 부모가 이루지 못한 부분까지 채우며 잘 살기를 기대하는 욕심도 한껏 부리고 싶다. 부모가 노령기에 이르니 자연스럽게 자식들의 의견에 따르게 되고 마음을 의지해야할 종속적 위치로 변한 걸 느끼게 된다.

이렇듯 세월에 등 밀린 노인네가 춘하추동 돌고 도는 순환열차에 육신을 실으니 슬슬 찾아드는 생로병사를 내 어찌 싫다고 밀어 낼 수 있겠나. 찾아드는 황혼의 섭리를, 흔히들 자식을 사랑함에는 댓 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마음에 없는 괜한 소리다. 부모들의 뜻에 자식들이 따르길 바라고, 돈도 잘 벌길 바라고, 잘 살기를 바라고, 바라고바라고 또 바라는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다.

요번 어버이날을 맞아 내가 어떤 부모로 처신해야할지 묵직한 반성과 가족 간의 인연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강요와 간섭으로 비춰질지도 모르니 못 본 듯이 뒤에서 가만히 지켜만 볼 작정이다.

속담에 ‘자식 둔 골 호랑이도 돌아본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마음의 간절함은 말할 나위도 없지.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 부모에게 자식보다 더 귀한 것이 이 세상에 뭣이 또 있겠나. 생각엔 자식들이 부모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사회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놓아 주고 부모가 오직 건강하게 사는 것이 자식을 돕는 것임을 깨달았다.

일상은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자식들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품위나 품새도 단단히 여밀 것이다. 자식에게 덧붙이다면, ‘노마지로(老馬知路)’ 즉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뜻이니 어려울 때 경험 많은 늙은이의 지혜도 필요하다는 한비자의 고사는 마음에 꼭 새겨 두길 어버이날에 신신당부(申申當付)한다.

황성창 시인
(재부군위군 의흥면향우회 상임고문)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