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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도리깨질

admin 기자 입력 2020.07.02 16:25 수정 2020.07.02 04:25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망종이 다가온다. 벌써 들녘에는 보리 익은 냄새가 진동한다.
이맘때가 되면 ‘죽은 송장도 일어나 거든다.’라는 속담 있듯 농촌에서는 보리 베고 타작하고 모내기하며 일 년 중 가장 바쁠 때이다.

망종이 지나면 장마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장마 전에 보리를 거둬들이려고 바쁘게 서두른다. 어떤 집은 보리를 베어 논바닥에 깔아 놓고 보리가 마르면 한 아름씩 크기로 묶어 둑에 쌓는다. 그러고 나서 모내기를 먼저 한다. 우리 집은 타작을 한 다음 모내기한다.

보릿단을 나를 때의 풍경은 장관이다.
지게로 져 나르는 사람 소로 실어 나르는 사람들로 좁은 동네 길은 북새통이다. 사람들의 모습은 말이 아니다. 소 뒤를 따라다니면서 하얀 먼지를 뒤덮어 쓰고 눈만 빠끔히 보인다. 새까맣게 탄 얼굴에 삼베 적삼과 중의는 땀에 젖어 물에 빠진 것 같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릿단을 부지런히 갔다 나르고 한다.

소 뒤를 따라다니기가 쉽지 않다. 소 몰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마다 보릿단이 담벼락에 부딪힐까 봐 걱정한다. 매일 같이 다니던 골목이라 하지만 늘 불안하다. 그래서 동네 길을 들어서면 언제나 온몸이 조여든다.

한 번은 동네 길을 빠져나오는데 보릿단이 담벼락에 튀어나온 돌에 걸려 왜~소리 지르며 소가 쓰러졌다. 눈을 희멀겋게 뜨고 입에 거품 물고 계속 소리를 질러 댔다. 겁에 질려 허둥대며 보릿단을 하나씩 내렸다. 급히 달려오신 아버지를 보고 불안했던 마음이 금세 사라지고 꽉 막혔던 숨이 터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서운 태풍이 불어 닥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질책이 하늘을 찔렀다. 내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으시고 대뜸 “이놈 자식아!” “소를 잘 몰고 다니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는데도 뭐 했더냐?” 하시며 사정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보리타작은 잘개질로 한다. 잘개질은 넓적한 자연석을 거치대에 세워놓고 굵은 새끼로 보릿단을 한 바퀴 감아 잡고서 어깨너머로 둘러메어 힘껏 내려쳐서 낱알을 터는 방식이다.

보릿단을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몇 번 내리쳐도 낟알을 완전히 떨어내지는 못한다.
잘개질 하고 덜 떨어진 보리 이삭을 떨기 위하여 보릿단을 풀어 마당에 널어놓고 햇볕에 말린다. 보릿대 마르는 소리가 타닥타닥 거린다. 아버지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넘쳐흐른다. 아버지는 보릿대가 햇볕에 잘 마른다고 하시며 곧장 마당으로 내려갈 채비를 하신다.

탁탁거리며 도리깨질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도리깨질을 처음 배울 때 아버지한테 혼도 많이 났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열심히 가르쳐 주신 것도 아니었다. 꾸중하시는 일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 배우며 익혔다.

아버지는 도리깨질할 때 늘 ‘꼴’ 매서 했다.
‘꼴 매다’는 도리깨질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기술이다. 도리깨를 높이 쳐들어 공중에서 도리깨 열을 한 바퀴 빙 돌려서 힘껏 내리치는 방법이다. 보통 도리깨질하는 것보다 더 세게 내리칠 수 있다.

내려칠 때 나는 소리는 획획 거리며 매섭게 들렸다. 도리깨 열이 박자에 맞춰 돌아가는 것이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다.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댔다.

도리깨질을 잘하려면 도리깨 끝이 땅을 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일성이었다. 골매기에 어느 정도 자신 붙은 나는 어느 날 도리깨질 하면서 힘차게 내리치고 싶었다. 마음만 앞섰지 도리깨 끝이 땅바닥을 내리쳤다. 끝이 두 동강 났다.

아버지는 성질에 못 이겨 “일하기 싫거든 하지 말라. 왜 가만히 있는 도리깨를 못 쓰게 하느냐? 하시며 역정을 내셨다. 그런데도 준비해 두신 도리깨 대를 가지고 와서 구멍 내고 도리깨 열을 꽂아 주셨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꾸중에도 불구하고 배운 도리깨질 솜씨가 어느덧 동네에서 소문날 정도이다. 한마당 깔아 놓은 보릿대를 햇볕이 가장 뜨거운 점심때 도리깨로 두드린다.

나는 앞에 서서 양쪽 꼴 매가면서 한 번은 이쪽 또 한 번은 저쪽으로 번갈아 가면서 보릿대를 일꾼 두 사람에게 밀어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마당 깔린 보릿단을 거뜬히 치우고 나면 시장기가 든다. 먹을 거라고는 개떡뿐이다. 허리를 졸라매고 열심히 살았던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꼴 먹여가며 일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어린 마음에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졌다.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하셨다. 어느 한날 내가 도리깨질하는 것을 보시고 “네가 도리깨질하는 모습이 흡사 나를 똑 빼닮았다.”라고 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칭찬의 말씀 한마디가 찌든 생활고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다.

보리타작을 마치고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아버지는 소 몰고 모심기 준비하러 나가신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 따라가자면 한 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내년 망종 때는 잘할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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