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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당연

admin 기자 입력 2020.08.02 23:44 수정 2020.08.02 11:44

↑↑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국민의 4대 의무는 교육, 국방, 납세, 근로이다. 대한민국 남성은 국방의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나도 스무 살을 넘기면서 조국의 부름을 받고 낯선 논산 땅을 밟았다.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은 내일을 걱정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서먹서먹했던 얼굴들이 차츰차츰 익어가면서 서로가 믿고 의지하며 하나가 되었다.
훈련소에서 다듬어진 우리는 각자 소속부대로 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산 설고 물 선 태백산 아래 강원도 인제에 도착했다.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막사며 선임자들의 얼굴 모두가 낯설었다. 선임자들은 작대기 두세 개씩 달고 있었다.

나는 고작 작대기 하나가 전부였다. 저절로 기가 죽었다. 새카맣게 탄 얼굴로 훈련소를 떠날 때만 해도 사기가 충천했다. 178㎝ 후리후리한 키에 가슴이 떡 벌어진 늠름한 육군 이병이었다. 갑자기 초라하고, 넘쳐흐르던 패기는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불안하고 긴장되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여기에서 3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다행히 대대 의무대 약제실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중대에 파견 나간 동료들이 일 주일에 한 번씩 업무차로 오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되었다. 아직 군 생활에 때가 묻지 않아 모든 게 생소하고 서툴렀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청소며 의료기구 소독이며 불침번 등으로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3개월이 금방 지나갔다. 그동안 친숙해진 선임병도 생겼고 내무반 돌아가는 분위기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세월이 약이라 하듯 약간 여유가 생겼다. 어느 여름, 비가 추적추적 그칠 줄 모르고 종일 내렸다. 창 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하나둘 열심히 헤아렸다. 땅에 떨어지는 빗줄기는 이내 형체를 잃어버리고 흩어져 버렸다.

또 내리고 흩어져 버리기를 수없이 했다. 빗물은 한 덩어리가 되어 콸콸 소리 내며 쏜살같이 흘러갔다.

물 따라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을 자꾸 부추겼다.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두 줄기 눈물이 양 뺨을 타고 내렸다. 빗속에서 워커 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을 훔치고 뒤돌아보았다.

약제실 선임하사였다. 그는 전남 해남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였다. 성격이 조용하고 인자해 보였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데 나이에 비해 무척 성숙해 보였다.

내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고생 많지?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온갖 상념들이 떠오르지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3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간다고 하며 따뜻이 위로해 주었다.

내일이면 작대기 두 개, 일병 계급장 다는 날이다. 작대기 한 개가 그토록 부러워했는데, 두 개를 단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여명을 뚫고 아침 햇살이 마구 쏟아졌다.
부대원들은 하루를 맞이할 준비 하느라 분주했다. 조금 있으면 일병 계급장을 단다는 설렘에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행정과장이 계급장을 달아주고 ‘상병 계급장 달도록 열심히 해라’ 하며 격려해 주었다.
녁에 의무대원들과 같이 회식하기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우리는 부대 밖에 있는 한 식당으로 갔다.

선임들이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 주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 한 잔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군대는 힘들고 괴롭다고 하지만 때로는 기쁘고 즐거울 때도 많았다.
가을이면 배구 씨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가을 축제가 열렸다.

3개 중대와 본부 중대가 한자리에 모여 페스티벌을 벌였다. 스포츠를 남달리 좋아했다. 내가 누구인지 깜빡 잊어버리고 마음이 들떴다. 배구 농구 축구 등 구기 운동을 좋아했다.

특히 태권도 검도 등 무술을 더 좋아했다. 검도는 누구와도 자웅을 가릴 정도였다. 대대본부는 3개 중대보다 모든 것이 열악했다. 나는 대대본부 씨름 선수로 출전했다. 우리와 맞설 중대는 대대를 대표하는 씨름 선수단을 가지고 있어 위력이 막강했다.

나는 첫 번째 선수로 입장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지피지기란 말이 있다.
씨름은 들배지기 호미걸이 등의 기술로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피 끓는 패기와 무릎치기 기술 하나뿐이다.

심판의 시작 호각 소리가 났다. 상대편에서 들배지기 하려고 무릎을 내밀었다. 번개같이 무릎 치기를 했다. 황소가 넘어가듯 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 조이며 바라보던 본부는 무명선수가 대표 선수를 이겼다 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군 생활도 적응되고 병장 계급장도 달았다. 의무대원들을 통솔할 어엿한 병사가 되었다.
내 곁에서 알뜰히 보살펴주던 선임하사가 제대할 준비를 한다. 관물을 반납해야 하는데 하나가 부족했다. 내 것으로 쉽게 반납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후임자가 선임자를 편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당연한 예의로 알았다. 선·후임 간의 끈끈한 정이었을까?

선임자가 떠나고 난 뒤 얼마 후 나도 제대할 날이 다가왔다. 세상에는 닮은 것도 많지만, 닮지 않은 것도 많다. 닮지 않은 것을 보고 닮아라하는 것은 억지다. 마찬가지로 ‘나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따지고 보면 억지 같은 소리였다. 사람의 심리는 참으로 묘했다. 제대를 며칠 앞두고 후임을 내 앞에 불러 세웠다. “네가 한 일이 옳다고 하겠지만, 세상사 꼭 그러한 것만 아니다. 이제까지 내려온 전례 따라 사는 것도 하나의 예법이 될 수 있다.” 하며 심하게 꾸짖었다.
반세기 지난 지금도 생각난다.

3여 년 동안 맺은 전우애로 떠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드렸던 정겨운 모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가 떠나던 날 우리는 서로의 행운을 빌며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때 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함께하는 공동체에서도 전례는 당연히 하나의 예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에 없는 동네 법처럼.’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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