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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거룩한 유산

admin 기자 입력 2020.08.18 22:59 수정 2020.08.18 10:59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여느 때보다 아버지 얼굴이 굳어있었다.
우리는 근심스러운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남부럽지 않게 산다고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너희 오 남매와 손바닥만 한 밭뙈기가 전부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아버지는 작심하신 듯 웃들(옛 들 이름)에 있는 전답은 큰아들 것이고, 개웅티(옛 들 이름)에 있는 건 둘째 아들 것이다.

쉿똥골(옛 들 이름)에 있는 건 막내 것이다. 하시면서 말씀으로 등기필증을 다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이 바로 법이고 누구도 항변할 수 없었다. 누나 두 분은 한 필지도 받지 못했다. 당시 딸에게 상속권이란 상상도 할 수 없을 때였다.

그날부터 나는 걱정되고 불안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침수되는 논이었다. 어느 때는 홍수로 방천까지 물이 차 올라온 것을 보았다. 생각만 해도 무섭고 떨렸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이런 논을 왜 나에게 준다고 말씀하셨던지 알 수 없었다.

여름이면 늘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그래서인지 심술쟁이처럼 여름내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가뭄이 극심했던 해였다.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벼는 배배 꼬이며 타들어 갔다. 사람들은 극도로 불안하고 인심마저 흉흉했다.

논을 가진 사람들은 밤늦도록 의논했다. 도랑을 파서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기로 했다. 그 이튿날 사람들은 지게 지고 삽과 괭이 등을 가지고 모였다. 관리자의 말에 따라 비지땀 흘리며 열심히 했다. 나는 나무로 만든 큼직한 삽에 밧줄을 두 줄로 매어 두 사람이 당기는 일을 했다. 13살 어린 나이에 어른들 틈에 끼어서 일한다는 것이 쉬운 일 아니었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난데없던 관리자가 나를 보고 다가와서 느닷없이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너 형이 나오지 왜 네가 나왔느냐?” 하며 역정을 부렸다.

그때 불참하면 궐을 매기기 때문에 머릿수만 채우러 나왔던 줄로 알았던 것 같았다. 홍수가 나면 제일 먼저 침수되는 논이 내 논이었다. 그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한 것도 모르고 관리자가 무턱대고 고함 질 하는 소리에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럴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 마녀사냥 하듯 하기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작업이 하루 이틀 만에 끝나지 않았다.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했다. 손바닥은 물집이 울룩불룩 생기고 진물이 났다. 견딜 수 없는 쓰라린 고통이었다.

얼굴은 핼쑥하고 눈은 죽도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한 사람처럼 쑥 들어갔다. 어쩜 해골과 똑같았다. 한 삽 두 삽 떠 오릴 때마다 물이 빨리 나오기를 기원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피곤함에 지쳐 땅바닥에 큰 대자로 벌떡 누웠다. 수많은 별이 반짝이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그중에서 제일 큰 별이 긴 꼬리를 흔들면서 내 가슴에 덥석 안겼다. 깜짝 놀라 일어났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하느님! 제발 비를 내리게 해 주십시오. 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께서 저희를 가엽게 여기시고 기도를 들어주셨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도랑을 허리만큼 파고 들어가니 갑자기 물이 샘처럼 솟아올랐다. 와! 물이다. 하며 함성이 터져 나왔다. 펌프가 힘차게 돌아가고 물이 펑펑 올라왔다. 갈라진 논바닥으로 물이 쉴 사이 없이 들어갔다. 들어가는 소리가 마치 목구멍으로 밥 넘어가는 소리 같았다. 아무리 들어가도 흔적도 없었다.

얼마나 목이 탔으면….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땅을 적시려면 아직 멀었는데 손바닥만 한 논에 물을 너무 오랫동안 댄다고 하며 관리자가 물길을 돌려버렸다. 남의 전 재산을 두고 손바닥만 하다니 생각할수록 속상했다.

나에게는 더없는 귀중한 생명과 같았다. 생각 없이 아무렇게 말하는 관리자의 모습에 참담함을 느끼며 견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장마보다 가뭄을 더 좋아했다. 장마는 사람의 마음을 늘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어느 여름.

회오리바람이 시커먼 먹구름 떼를 몰고 왔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번갯불이 번쩍이며 하늘을 대낮같이 밝혔다.

잇따라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 내며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땅에 쌓인 먼지가 빗방울 맞으며 하얀 솜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조금씩 내리던 비가 갑자기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나는 겁에 질려 안절부절못했다.

밀짚으로 만든 도리(도롱이 사투리)를 걸치고 밀짚모자에 삽 하나 들고 물꼬를 보러 나갔다. 금세 내린 비로 붉은 황토물이 도랑을 꽉 채우고 무서운 속도로 흘러갔다.

비가 조금만 더 내리면 금방이라도 방천 위까지 물이 차 올라올 것 같았다. 방천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논은 흔적도 없어져 버릴 것이고, 무너진 제방은 어떻게 쌓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다. 하늘은 끝일 줄 모르고 천둥 치며 세찬 비를 퍼부었다. 방천 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물은 무서운 속도로 불어 올랐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망연자실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정신 차리고 눈을 떠 보았다. 먹구름이 서서히 벗겨지고 장대비가 끝이고 가랑비만 오락가락했다. 도랑물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들에 나가보았다. 들녘은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너무나 비참하고 처참했다.

흙이 떠내려간 자리에 길만 겨우 남은 방천이 곧 무너질 듯했다. 물에 휩쓸려 꼿꼿이 서 있는 벼는 한 포기도 볼 수 없었다. 빗자루로 쓸어놓은 듯 뒤엉켜 쓰러져 있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했다. 물에 잠겨 쓰러진 벼는 흙이 뒤범벅되었다. 쓰러진 벼를 세우기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죽을 고생을 하며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웠다.

비만 오면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는 아버지를 좋아하고 때로는 원망도 했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거룩한 유산을 손 내밀어 받기가 민망하였다.

그러면서도 도랑 가에 있는 논을 주신다고 할 때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벌컥 화를 냈다. 아버지는 내게 어려운 불행이 닥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곰곰이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깊은 뜻을 되새겨 보았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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