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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지붕 위로 올라간 소(牛)의 내공(耐空)

admin 기자 입력 2020.09.01 23:03 수정 2020.09.01 11:03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하늘에 구멍이 뚫려진 듯 쏟아지는 천루(天漏), 녹슨 쇠못처럼 위력적이다.
수도권 중부지방, 강원 영서지방에 양동이로 퍼붓듯 폭우가 쏟아져 큰 피해가 발생했다. 강이 아닌 곳에도 붉은 흙탕물 급류가 흐르고 집안에 들어찬 물위로 가재도구가 둥둥 떠다닌다.

둑이 터지고 집도 파손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기우뚱하다. 비 피해로 쓰레기가 된 생활용품들이 곳곳에 쌓여 있다. 긴 손톱이 할퀴고 간 자국처럼 수해지의 상처가 오롯하다. 지하상가에서 침수된 물건을 들어내며 복구 작업을 벌이던 수재민들은 피멍든 마음에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비는 내리는 양보다 짧은 시간에 몰아치는 경분대우(傾盆大雨), 즉 집중호우가 문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6월 24일 시작된 올여름 장마는 무려 54일이란 새로운 기록을 세웠으니 수재로 당한 피해가 오죽 많으랴.

우리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엔 속수무책, 망연자실할 뿐이다. 섬진강 범람으로 축사가 물에 잠겼고 소들은 물속에서 허우적댔다. 지붕 위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서 있는 우심(牛心)을 보노라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애지중지 키우던 소가 폐사되거나 비에 떠내려갔다. 살아남은 소도 강물에서 헤엄치다 상처를 입거나 흙탕물을 마셔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속담에 ‘소는 농가의 조상’이란 말이 있다. 매우 중요해서 조상같이 위한다는 뜻이다. 그런 소를 잃었거나 죽었으니 피해 농민들 속이 까맣게 탓을 것이 아닌가.

일부 소는 남해 무인도까지 떠내려갔다가 구조되기도 했고, 합천 황강에서 떠내려간 암소는 무려 80km나 떨어진 먼 밀양 낙동강변에서 실종된 지 사흘 만에 발견돼 주인과 상봉하는 장면을 봤을 때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특히 이번 폭우에 해발 500m가 넘는 구례 오산 정상에 있는 암자 사성암(四聖庵)까지 올라간 10여 마리의 소떼가 유리광전(琉璃光殿)아래 마당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휴식을 취하고는 유유히 돌아갔다고 한다. 여유로움이 바로 우행(牛行)이다.

이곳 주민들은 도보로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소들이 어떻게 그곳까지 올라갔는지 신기해한다. 그래, 문득 불교와 소의 예사롭지 않은 관계를 떠올려봤다. 불교에서 소는 귀한 존재다.

석가모니 부처의 태자 때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인데, 여기서 성(姓)인 고마타는 ‘거룩한 소’를 의미한다고 한다.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자신의 본심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 찾기에 비유한 것이다.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게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법당 벽화 심우도(尋牛圖),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10단계의 과정을 그린 선화(禪畵)가 심우도이다.

소 떼가 사성암에 간 게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잃어버린 인간의 본성을 되찾아라.’는 법당 죽비의 내리침이었을까.

소떼가 마치 우리에게 묵직한 현 시국(時局)의 비상한 과제 하나를 남기고 간 것 같다. 요즘 세상이 참 어지럽다.

도덕은 무너진 지 오래고, 이젠 어떤 게 평등이고 공정이고 정의인 지 헷갈리는 세상이 돼 버렸으니 말이다. 마음속의 ‘잃어버린 소’를 우리는 어디서 찾아야하나.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소를 탄자여! 가소롭다. 소를 타고서 소를 찾다니”라는 선시(禪詩)가 우리에게 뭔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영남학파인 남명 조식 문하에서는 글을 읽다 마치면, 즉 졸업을 하면 졸업장 대신 짐승 한 마리씩 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정승까지 오른 정탁(鄭琢)이 학문을 마치고 스승 곁을 떠날 때 남명 선생은 “뒤란에 소 한 마리 매어 놓았으니 몰고 가도록 하라”고 했다. “자네는 기가 세고 조급하여 자칫 넘어져 다칠 것이 걱정되니 소를 몰고 가라는 것이네” 소처럼 둔중(鈍重)하게 세상사는 것으로 그의 결함을 교정시켜주는 교훈적인 ‘소’인 것이다.

큰일을 당했을 때마다 이 마음의 소를 상기하여 처신했기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만년의 정탁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다.

물론, 그 소는 실제로 있는 소가 아니라 마음의 소인 것이다.
소는 동서 문화권에서 풍년과 생산성을 상징하는데 공통되고 있다. 밭을 가는 농경을 해서뿐 아니라 머리에 난 뿔이 반월형이고 차츰 부풀어 반달을 상징해서 풍년을 연상케 되었다.

곡식이 누렇게 익는 풍년색인 누렁 소, 이 풍년 기원과 무관하지 않을 것만 같다.
넉넉한 소가 부디 인간들에게 위안과 교훈, 안식의 삶을 안겨 주었으면 한다. 속담에 ‘유월 장마는 쌀 창고요, 칠월 장마는 죽 창고’라 했다. 7, 8월비는 벼 이삭이 필 무렵이라 크게 해롭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삭이 필 때 비 한 방울은 눈물 한 방울이다‘고 했듯이 여름 장마는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뜻이다.

수해로 올 농사, 결실이 어쩔지 걱정이 태산 같다. 인도에서는 예부터 소를 신성시하여 그 고기를 먹지 않을뿐더러 소에 상처를 주는 일조차 꺼렸다고 한다. 소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혹은 경외와 숭배의 대상으로 기르기도 했다.

비는 그쳤다. 그러나 근심을 불러온 장맛비, 수림(愁霖)의 수준을 넘었다. 온 나라가 비에 젖고, 슬픔에 젖었으나 이젠 활력을 찾아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집중호우로 초토화 된 농가도 어떻게든 복구해 살아갈 것이다. 끝물 장마 이후 내려 쬐는 폭염과 후덥지근한 지열에 지금 그들은 턱밑까지 꽉 차오른 가쁜 숨에 쓰러지기 직전이다.

멱우(覓牛)라는 교훈이 있다. 남에게 의존하거나 경쟁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구하고 스스로와 싸워 이기라는 뜻-이다. 아마 소가 뚝심이 있고 꾸준한 것이 스스로를 잘 다스린 때문으로 보았기에 생긴 말인 것 같다.

폭우에도 끄떡없던 소의 내공처럼 묵묵한 뚝심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면 참 좋으련만.

황성창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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