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문구멍으로 본 세상

admin 기자 입력 2020.11.02 21:34 수정 2020.11.02 09:3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연탄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는 숱한 사연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다. 그 자리에 연탄 냄새가 솔솔 피어오른다. 피할 수 없는 냄새와 부대끼며 살아간다.

겨울이면 여름에 땔 나무하러 간다. 가까운 산에는 군불을 지필만 한 큰 나무가 없어 먼 산까지 간다. 이른 아침에 소등에 질매(길마)를 얹고 넘어지지 않도록 새끼줄로 단단히 묶는다. 그 위에 걸채를 얹는다. 바가지에 깡 보리밥을 싸서 지게에 지고 2, 3십 리 되는 먼 산을 간다.

거기에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많이 있다. 마른나무와 삭정이 고지뱅이 등을 톱으로 잘라 소등에 싣고 온다.

산림이 점차 황폐해지자 정부에서 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산 금지’ 팻말을 산 입구에 세웠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산에 못 들어가면 어디 가서 나무를 하란 말인가? 하며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불평도 많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평하든 사람들이 적어지고 나무하러 가는 사람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연탄을 사용하면서 편해진 것을 알고서 진작 나왔더라면 좋았을 걸 하면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탄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연탄불이 꺼졌을 때 어떻게 할 줄 몰라 애를 먹는다. 밤에 잠을 잘 때도 혹시나 연탄불이 꺼졌을까 봐 걱정되어 몇 번이나 내다보고 한다. 연탄은 일상에 많은 보탬이 되어주었지만, 때론 불행한 일도 많이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으로 실려 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움을 떨칠 수가 없다.

연탄을 사용하면서부터 동네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사람들은 나무 타는 연기가 문틈으로 새 들어와도 예사로 생각했다. 방문을 활짝 열고 옷가지 등을 흔들며 연기를 밖으로 빼내고 했다.

연탄가스도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고 예사롭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연탄가스중독으로 사람이 병원에 실려 가는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열악한 살림에 병원에 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가정요법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탄가스중독에는 겨울 동치미 국물이 좋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밤에 잠잘 때는 머리맡에 동치미 국물을 한 그릇 떠 놓고 잠을 자기도 했다.

생활양식도 변하기 시작했다. 사색을 즐기며 산책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달빛이 쏟아지던 어느 날 밤 베개 베고 지난날들을 반추해 보았다. 생전 처음으로 사업에 뛰어든 나로서는 짧았던 시간 속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했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서곤 했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숱한 세월 속에서도 젊음의 향기는 잃지 않았다. 어른들의 축복 속에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핏덩이가 태어난 지 두어 달이 막 지났다. 낮까지만 해도 손짓·발짓하며 옹알이하던 녀석이 한밤중에 칭얼거렸다.

젖을 먹여도 먹지 않고 안아주고 달래도 계속 칭얼거렸다.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다.
한밤중에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찌할 줄 몰라 애간장만 타들어 갔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빨리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입이 바싹 마르고 침이 넘어가지 않았다.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갑자기 생각났다. 연탄가스중독에는 동치미 국물이 최고다. 하는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혹시나 하고 방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방안에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코를 의심하며 냄새나는 곳으로 따라가 보았다. 잠자리 머리맡에서 연탄가스 냄새가 진동했다.

아내는 축 늘어진 어린 핏덩이를 안고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양쪽 문을 열고 옷가지 들고 흔들었다.

연탄가스가 흰 꼬리를 달고 밖으로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린것이 콧등이 시린 찬바람을 마시고도 시원했던지 보채지 않았다. 목숨은 모질고 질겼다. 막혔던 숨구멍이 한꺼번에 뚫린 듯했다.

먼동이 뿌옇게 밝아온다. 겨울의 한가운데 추위는 역시나 차갑다. 깔아 놓은 장판을 걷어붙였다. 방바닥에 거미줄 같은 틈새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벌어져 있다. 장롱을 들어냈다. 장롱 밑에는 폭탄을 맞은 듯 운동장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연탄가스가 굴뚝같은 이 구멍을 통해 쉴 사이 없이 뿜어 댔다. 온 식구가 죽지 않고 살았던 것이 기적 같았다. 오히려 신기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 들이마신 것도 아니었다.

이 집에 이사 온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들이마셨다. 문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살아있는 게 꿈만 같다.

연탄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젠 숨만 쉬어도 연탄가스가 콧구멍으로 쫓아 들어오는 것 같다. 애지중지 여기던 연탄을 그렇게도 좋아했건만 중독이란 복병이 숨어있었던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탄은 화려했던 한 시대를 마감하고 많은 사연을 남겨둔 채 쓸쓸히 우리 곁을 떠났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