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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멍석

admin 기자 입력 2020.11.16 21:04 수정 2020.11.16 09:04

↑↑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옛것을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생활에 쫓겨 어쩔 수 없어 그를 뿐 결코 잊으려 하지는 않는다.
옛것은 현재와 미래를 조명하는 거울과 같다. 선인들이 남겨놓은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따라간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기억이 난다. 외할아버지는 훤칠한 키에 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왔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풍채가 좋아 의기가 당당해 보였다. 여럿이 모인 가운데 우스갯소리도 잘해 인기가 대단하셨다.

일상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소쿠리며 멍석, 망태기 짚신 등을 만들어 쓸 정도로 손재주도 많았다. 짚으로 엮어 만들어 쓸 수 있는 것은 못 만드시는 것 없었다.
우리 집은 언제나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쓸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일과였다. 외할아버지는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새끼줄 꼬는 것을 낙으로 삼아 세월을 보내셨다.

새끼줄을 꼬기 위해 볏짚에 붙은 북데기를 추려내고 말쑥하게 한다. 볏짚에 물을 적당히 뿌리고 막대기로 두드려 짚을 부드럽게 한다. 그러고 나서 새끼줄을 꼬셨다. 식구들이 들에 나가면 집을 지키며 누군가 다녀갔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리고 하루 세 끼 식사하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거의 없으셨다.
외할아버지의 일터는 아랫방 옆에 있는 큼직한 헛간이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짚신부터 소가 신고 다니는 짚신까지 없는 것 없다.

헛간 한구석에는 새끼줄 뭉치가 가득하다. “외할아버지, 저 많은 새끼줄을 어디에 써시려고 합니까? 글쎄다, 농사철에 필요할까 봐 꽈 놓은 것이다.
겨울이 되면 밖에서 일할 수 없어 방에서 소쿠리 같은 작은 것들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화창한 어느 봄날, 외할아버지는 널찍한 마당 한가운데 꽈놓은 새끼줄을 간격에 맞춰 일 열로 기다랗게 놓는다.

새끼줄 위를 걸어가시며 몇 줄인지 세어 보신다. “외할아버지, 뭐하십니까?” “궁금하지?” “이것을 알려면 적어도 한두 달 아니면 일 년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을 걸.” 하시고는 더 말씀하지 않으신다.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지 외할아버지의 고약한 성미에 속이 상한다.

봄이 지나갈 무렵 외할아버지가 만드신 것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직사각형으로 만드신 ‘멍석’이다.

묵직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낸다. 새끼줄로 이러한 멍석을 만든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외할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까?” 손을 만져 본다.
손가락이 굳어 나무같이 딴딴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솜씨도 솜씨이거니와 만들겠다는 각오와 인내력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멍석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만드는 과정을 보기는 처음이다.
마당에 가로로 놓인 새끼줄에 또 다른 새끼줄을 가지고 세로로 엮는다. 한 줄 두 줄 엮으면서 멍석을 만든다.

사각형, 원형 필요한 모든 모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만든다.’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멍석이라고 하면 곡식 같은 것을 말리는 데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만드는 과정을 보고서 멍석에 대한 애착심이 더 간다. 재료 만들기, 섬세한 기술, 끈덕진 인내력 없이는 만들 수 없다.

기계로 만들 수 없고 손으로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볼수록 멍석이 소중하고 귀중하다.
일상에서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보석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 멍석은 보리를 타작해서 말릴 때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하다. 여름이면 타작한 보리를 말리려고 멍석을 펼친다.

그 위에 타작한 보리를 들어붓는다. 보리가 한곳에 몰린 것을 밀개로 고른다. 몇 시간 지난 뒤 발로 걸어 다니면서 보리를 뒤집어준다. 이렇게 해서 보리가 잘 말렸다고 생각되면 광에다 퍼 넣는다.

보리가 덜 말랐을 때는 보리를 한곳으로 제치고 멍석으로 덮고 그 이튿날 똑같은 방식으로 보리를 말린다.

멍석은 형틀(刑-)과 같다. 동네에 말썽을 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동네 법에 따라 동네 사람들이 그를 잡아 멍석에 둘둘 말아 굵은 막대기로 두들겨 팬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동네에서 추방해버린다. 요즘 법보다 그때의 법이 더 엄격했던 것 같다.

무더운 여름이면 둑 다리 위에 멍석을 펴고 모깃불 피워놓고 둘러앉아 감자랑 콩과 호밀을 한데 섞어 볶은 것을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어느 때는 이웃집에서 불이 났다. 세찬 바람에 타오르는 불길을 잡을 수가 없었다. 멍석을 가지고 불타는 지붕 위로 올라갔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멍석을 덮고 그 위에 물을 뿌렸다. 불길을 잡고 불을 껐다는 이야기는 잊을 수 없다.

정월 대보름이면 집집이 동네마다 윷놀이가 한창이다. 멍석에 윷판을 그려놓고 윷놀이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윷말 따라가면서 말을 잡고 잡히고 한다. “모야!”하고 던진 윷가락이 엉뚱한 것이 나왔다. 자기 잘못을 멍석에 돌리며 멍석을 마구 두드리며 화를 풀어댄다. 이렇듯 멍석은 우리에게 삶의 동반자로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지내왔건만 잊어버린다.

생활에 쫓겨 어쩔 수 없어 그를 뿐 결코 잊으려 하지는 않는다. 보잘것없이 보이는 멍석이라도 보존하고 가꾸면 그 나름대로 문화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헛간에 새끼줄 두 가닥에 매달려 있는 멍석을 어루만져 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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