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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옥니

admin 기자 입력 2020.12.03 22:28 수정 2020.12.03 10:28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던지 하루가 멀다고 드나든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벌써 마음은 얼어붙기 시작한다.

어제오늘도 정확한 시각에 맞춰 그 자리에 앉는다. 윙윙거리는 기계 소리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한때는 소주병 뚜껑을 어금니로 따면서 튼튼한 치아를 자랑했던 때도 있었다.
그때가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어 한 세기로 다가가고 있다. 닳고 깨지고 시커멓게 구멍 난 치아를 가지고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든다.

나무는 나이가 많으면 많을 수록 풍채가 웅장하고 우아하지만, 사람은 몸도 작아지고 치아도 빠져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느지막이 가진 것이라곤 쓸데없는 통증이 유일한 전 재산이다.

산통, 담석통, 치통을 3대 통증이라 일컫는다. 사그라드는 홀쭉한 얼굴에 치통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쳐든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지면 병을 달고 다닌다고 한다. 나 역시 2, 3년 동안 내과 외과 안과 치과 등 안 다녀 봤던 곳 없다. 겉은 멀쩡하지만, 육신은 벌집같이 빠끔한데 한 군데도 없다. 젊었을 때는 병원에 가 본 적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한다.

한날은 갑자기 오른쪽 어금니가 시리고 아파서 치과에 갔더니 문이 잠겨있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갔다. 어쩌다 한 번씩 치료를 받곤 했지만, 오늘처럼 불안하고 긴장했던 일 없었다. 치아를 뽑아야 한다고 할까 봐 지레 겁을 먹었다.

원장은 좀처럼 치아를 뽑지 않고 치아를 살릴 수 있는 데까지 치료해서 치아를 살린다. 훗날 임플란트할 때 옆 치아와 같이 덮어씌울 때는 그 치아가 기둥이 되어 준다고 하면서 조심하며 사용하라고 한다. 진솔한 이야기에 수십여 년 지난 지금도 다니고 한다.

치료받는 순서가 되었다. 불안해하면서도 애써 편안한 척하며 치료받는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웠다. 간호사가 자동으로 흐르는 수도꼭지 밑에 컵을 놓는다.

치료기기가 전깃불 아래 요란하게 번쩍거린다. 입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램프로 비춘다. 치료기기를 만지는 소리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이윽고 윙윙하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날카롭고 뾰족한 끝이 골병든 치아에 무섭게 달려든다. 밀고 당기면서 얼마나 씨름했던지 입안은 온통 피투성이다. 물로 입을 헹구고 또 입을 벌린다.

원장이 심하게 아프거든 머리를 돌리지 말고 손을 들으라고 한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날 때마다 가슴이 오싹하고 온몸이 하늘로 당겨간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힘이 빠진다. 힘없어 축 늘어진 나를 보고 걱정되었든지 눈을 감지 말고 뜨라고 한다. 치료가 끝나고 설명한다.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계속 심하면 대학병원에 가서 세밀히 검사받고 치료를 받아보려고 한다.

자다가 얻은 병? 아내가 치통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날이 밝자 허겁지겁 동네 치과에 갔다. 원장이 치아를 유심히 살펴보고서는 연필로 치아를 그려가면서 상세히 설명한다. 평소에도 그렇게 해주었지만, 오늘따라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치료하기가 힘이 든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 내가 앞질러 이야기한다.

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처음 있는 일이라 섭섭하고, 당황했다. 병원에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동네 치과는 접수가 간단하고 치료를 빨리할 수 있었지만, 대학병원에는 접수가 매우 힘들었다.

접수를 겨우 마치고 기다렸다. 예약한 환자들이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았다. 몇 월 며칟날 오라고 하며 진료 후 안내문을 준다. 아침나절에 가서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녹초가 되어 방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진다.
나는 임플란트하려고 아내는 때웠던 치아 일부가 떨어져 치료를 받으려고 같이 다녔다. 치주과와 보철과에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내와 같이 치료받으려 다니는 것은 좋았으나 걱정도 되었다.

문을 닫고 다녀야 하므로 동네 사람들이 큰 병으로 입원했던 줄 알고 뜬소문이 날개를 달고 다닐까 봐 마음이 켕겼다.

임플란트하는 것이 쉬운 줄 알았는데 생각대로 쉽지가 않았다. 윙윙거리는 기계 소리에 놀랐던 나는 기계 소리에 턱이 사시나무 떨 듯했다. 의사가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해도 긴장되고 겁에 질려 저절로 떨렸다. 의사가 이야기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을 물으면 무턱대고 “예” 하면서 대답만 했다.

치주과에서 서너 달 치료하는 동안 지칠 대로 지쳤다. X-ray는 수도 없이 찍었다. 일여 년 가깝도록 치료를 받았다. 진절머리 나고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걱정이다.

임플란트하는데, 충치 먹은 치아를 치료하고 발치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길어 2, 3백 리 먼 곳에서 오가고 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는다. 어느 때는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지칠 대로 지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치료가 언제쯤 끝나는지 물어봐도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않는다. 앞으로 몇 번 더 오셔야 한다며 또 날짜를 잡아준다. 아무 말 못 하고 끝날 때까지 예약한 날짜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 옥니는 튼튼하다고 하는데 옥니로 되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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