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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척하며 산다는 게

admin 기자 입력 2020.12.20 21:50 수정 2020.12.20 09:50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나보다 어리석은 사람 있을까만. 남들이 가진 것 다 가졌으면서 사람답게 살지 못한 내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어쩌다 철면피한 얼굴로 살 때도 있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한국전쟁 후였다. 비료가 귀하여 대부분 농가에서는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똥과 오줌은 퇴비를 만드는 데 더할 수 없는 좋은 재료였다. 시장에 갔다가 오줌이 마려워도 참느라 애를 먹으면서도 집에 와서 누고 했다. 당시 초·중·고등학교 화장실은 거의 재래식이었다. 화장실이 가득 차면 손으로 퍼내어야 했다.

그때는 분뇨처리 업소가 없어 학교와 일반 기관 화장실은 대부분 농사짓는 사람들이 퍼 가져갔다. 그렇다고 아무나 가져갈 수 없었다. 뒤 배경이 있어야 했다. 아버지는 농사만 지을 줄 아셨지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퍼 왔든지 궁금했다.

겨울철 되면 아버지는 이른 새벽에 똥 단지를 걸머지고 초등학교에 가서 분뇨를 퍼 왔다. 학교 부근에 있는 다섯 마지기 논바닥에 골 따라 뿌리고 했다. 어디까지 뿌렸던지 잊을까 봐 다 뿌리고 난 그 자리에 똥 단지 아궁이를 틀어막은 짚 뭉치로 표시했다. 운동장만 한 큰 논바닥을 겨우내 뿌렸다.

한 번은 아침 먹으려고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갑자기 구린내가 들이쳤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며 어디에서 구린내가 이렇게 나지 하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머쓱하신 듯 낮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똥 단지를 지고 논으로 가는데 밤새 내린 서리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똥 단지는 땅바닥에 내동이 쳐 깨지고 똥물이 튀어 옷에 묻은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잘못했으면 이보다 더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갑자기 측은하고 불쌍해 보였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참삶과 근면한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하루는 동네 사람들과 같이 나무하러 갔다. 농촌에 살면서 나무하러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무엇이 그리 대단한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침 일찍 먹읍시다. 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가 같잖아서 저 녀석이 오늘따라 왜 저렇게 큰소리로 야단일까 하며 쳐다보았다. 아침을 먹는 둥 만 둥 나무할 준비를 다 해서 지게 지고 마을 입구로 나갔다.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얼마 뒤 새끼와 까 꾸리(갈고리)며 낫 등을 지게에 지고서 한 사람씩 모이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두 살 더 많은 짓궂은 또래가 나보고 네가 웬일로 나무를 다 하러 가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하며 놀려댔다.

여러 사람 앞에 낯 갈이 심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친구들은 나보다 나무를 더 잘하기 때문에 열등감 아니면 수줍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비록 서툴지만, 마음만은 너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턱도 아니다.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했다. 나는 어쩌다 한 번씩 가기 때문에 잘할 수 없었다. 한나절 지나 이리저리 흩어놓은 나무를 한곳에 모았다. 내 생각으로는 엄청 많아 보였지만, 한눈에 봐도 친구들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자기 키보다 두 배나 될 만큼 많은 나무를 했다. 피로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죽을 힘 다해 나무를 했어도 아기 베개보다 작았다. 그러면서도 허기진 배에 눈은 움푹 들어가고 입술은 바싹 마르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수군거리며 비웃는 소리가 귓전을 타고 나를 더욱 곤경에 빠뜨렸다. 빛나던 이름 석 자가 한순간에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상황을 뒤집고 싶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황당한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줄을 서서 내려왔다. 얼마쯤 왔을까 어깨가 무너지는 듯 아팠다. 한 발짝도 더 걸어갈 수 없었다. 대열에서 벗어나 지게를 내리고 쉬었다. 다리가 벌벌 떨리고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했다. 아직 집까지 가려면 아득한데 걱정이 되었다. 친구들은 힘들어하지도 않고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갔다.

지게에 지고 간 나무들이 발걸음에 맞춰 춤을 추며 서서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바위에 덩그렇게 앉아 친구들이 내려 가버린 텅 빈 길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산그늘이 깊게 내린다. 짹짹거리는 산새 소리만 요란하다. 깊은 산중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기 베개만 한 나무를 걸머지고 쓸쓸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지게뿐이다. 갑자기 무서움이 들이닥친다. 토끼 한 마리가 나뭇잎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에 정신이 아찔하다.

다시 지게를 지고 죽을힘 다해 집까지 온다. 지게를 땅바닥에 눕혀놓고 지게 끈을 걸머진 채로 누워서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별들이 반짝이며 나를 위로한다. 잘해보려고 이른 아침부터 서성댔지만, 뽐내고 싶었던 생각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할 줄 모르면서도 할 수 있는 척했던 것이 이렇게 골병들게 한다. 잘하고 싶었지만 마음뿐이다. 서툰 솜씨로 겨우 내내 나무하려 다닌다. 겨울이 끝날 때쯤 제법 잘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나무를 지고 갈 수 없을 만큼 해서 지난날 고생하며 내려왔던 그 길 따라 가볍게 내려온다. ‘척’하며 산다는 게 나를 너무나 슬프게 한다. 내 마음에 남아있는 모든 척을 훌훌 털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 아침을 맞는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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