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그 봄

admin 기자 입력 2021.03.03 16:27 수정 2021.03.03 04:27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꾸역꾸역 찾아온다, 불쌍한 것.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나 하는지. 천지 모르고 천연스럽게 찾아오는 봄을 보고 뭐라 할 말이 없다. 안쓰럽고 안타깝다라고 말하기에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꿈틀꿈틀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귀를 의심하며 유심히 들어 본다. 음력 마지막 달 섣달에 피는 꽃, 홍매화 풍년화 복수초 등 봄의 전령사들이 봄소식 전하려 채비하는 소리다. 달력을 넘겨본다. 며칠 있으면 봄이 온다는 입춘이 큼직하게 적혀있다. 찌든 세상에 사느라 봄이 오는 줄 모르고 산다.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창밖을 내다본다. 밖은 여전히 차갑고 쌀쌀하다. 콧등이 시큰하고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꽁꽁 얼어붙은 땅이 오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입에는 마스크 머리에는 털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닌다. 잘 알고 지내든 사람들도 변장한 모습에 누구인지 모르고 지나간다. 지나치고 돌아보면 그 사람도 뒤돌아본다. 서로를 확인하고 웃으면서 세상사 이야기를 나눈다. 나무들도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옷을 벗고 가벼운 봄옷을 입을 준비한다.

산기슭 작은 연못에서도 얼음이 찌찌 거리며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봄의 소리가 차츰차츰 가깝게 들린다.

봄은 여인들의 옷자락에서 온다. 텔레비전 기상예보관들의 옷이 밝고 화사하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봄이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겨울 찬바람이 무엇이 아쉬운지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도심 한복판을 휩쓸고 다닌다.

사람들은, 몸을 움츠려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어간다. 봄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시샘도 많아 누군가 자기를 질투하고 시기하면 잠시도 참지 못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듯 말 듯 한 옷을 입고 한껏 치장해서 거리를 누비고 있는 여인들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화를 벌컥 낸다. 지난해 겨울이 남기고 간 겨울바람을 몰고 온다.

사정없이 불어 댄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당황한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발을 동동 굴리며 떨고 있다.

살갗이 따갑고 손이 꽁꽁 얼어붙는다. 재채기 나고 콧물이 연방 쏟아진다. 멋쟁이들은 스키어처럼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멋 부리며 거리를 활보한다. 코트 깃 올리고 부츠에 얼굴만 한 동그란 금테 안경을 걸치고 머플러 휘날린다. 살래살래 흔들며 걷는 걸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본다.

어깨를 으쓱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봄과 여인” 한 쌍의 드라마틱한 영화 한 장면이다. 봄은 정녕 여인들의 옷자락에서 오는가 보다.

봄이 온다는 소식에 잠 못 이룬다.
지난해 못다 이룬 꿈 이루겠다는 푸른 꿈이 꿈틀거린다. 절기상으로 며칠 전에 대한(大寒)이 지났다.

입춘이 곧 다가온다. 사람들은 꽃을 보고 봄이 오는 것을 안다. 그해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며 점까지도 친다. 꽃 중 봄의 전령사는 복수초꽃이다. 산과 들 곳곳에 봄소식을 전한다.

태평스럽게 자고 있던 꽃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눈 비비며 삭막한 산천을 색색으로 물감을 칠한다. 잠에 취해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나를 깨운다.

봄소식에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봄이 온 것이 분명하다. 방에 누워 있을 수 없다. 방바닥에 들러붙은 몸뚱이를 일으켜 밖으로 엉금엉금 걸어 나간다.

봄의 재촉에 못 이겨 들녘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봄이 시작된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향긋한 봄 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모자에 등산복 차림으로 봄맞이 떠난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 만나 서로의 안부 물으며 즐거운 한때를 가진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런가 하면 봄이 오면 삽짝 붙들고 우는 이도 있다. 이름 없는 명패를 달고 남 집에서 일 년을 어떻게 지낼까? 무사히 넘겨야 할 텐데 걱정한다. 그렇다고 뼈 빠지게 일하는 것만 아닐 진 데. 단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얽매여 산다는 것뿐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봄이 어느새 여기까지 와 버렸던지 모른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가꾸고, 가을이면 거두어드리고, 겨울이면 내년 봄을 기다린다. 톱니바퀴처럼 쉼 없이 돌아간다.

밋밋한 삶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걱정 없이 살았다. 지금은 그렇게 살지 못해 아쉽다. 농사지을 젊은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하다.

세월만 낚고 있는 노인들만 집 지키고 있다. 꽃피는 봄이 와도 봄이 온 줄 모른다.
농촌의 봄 분위기는 썰렁하고 텅 빈 집에서 도깨비 나올까 봐 두렵다. 북적대던 길거리는 쥐죽은 듯 조용하다. 농촌의 따뜻한 훈기는 온데간데없다. 싸늘한 분위기만 거리를 쏘다니고 있다. 살아간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살아 숨 쉰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지나간 봄이 다시 농촌을 찾아든다. 썰렁하던 농촌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젊은이가 떠난 그 자리에 농기계가 채워준다.

봄이면 햇볕에 새카맣게 탔던 사람들의 얼굴은 몰라보게 하얗다. 살이라곤 한 줌도 없든 핼쑥하든 얼굴도 불그스름하게 보기 좋다.

밭 갈고 씨 뿌리고 모내기하며, 벼 거두기도 하는 것 등 모든 것을 기계가 다 해준다. 고작 하는 일이란 기계가 들어가지 못한 손바닥만 한 밭뙈기가 전부다.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전국을 다니며 세월을 즐긴다. 봄이 지나면 언제 다시 오려나 걱정하며 기다린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