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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2월의 비

admin 기자 입력 2021.03.18 21:57 수정 2021.03.18 09:57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새벽부터 부슬부슬 내린다.
내일이 입춘인데 벌써 봄을 재촉하는가 보다 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겨우내 얼었던 논바닥이 녹아내린다. 노란 잔디가 샛노랗게 물들인다. 버드나무들이 기지개 켜며 겨우내 켜켜이 껴입고 있던 옷을 하나둘씩 벗는다.

강 이쪽과 저쪽을 연결한 얼음이 ‘우지직’하며 깨지는 소리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찬기가 서린 봄 햇살에 두꺼운 얼음이 군데군데 녹아있다.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성급한 낚시꾼들이 모여든다. 낚시꾼들이 던진 릴이 희미한 곡선을 그리며 냉랭한 봄 하늘을 가로지른다. 릴 소리에 물고기들이 화들짝 놀라 꼬리 치며 달아난다. 잡으려고 안 잡히려고 숨바꼭질한다. 새까만 물오리 떼들이 물 위를 유유히 거닐며 구경한다.

절기로는 분명 봄인데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비가 내려도 날씨는 여전히 춥고 쌀쌀하다. 봄 아가씨들이 봄이 온 줄 알고 벗었던 겨울옷들을 다시 꺼내 입는다.

겨울 심보는 참말로 알 수 없다. 산기슭 바위에 얼어붙은 얼음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더 얼어붙게 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꽃들은 아침 햇살에 유난히도 반짝인다. 깊은 산속 외딴집 한 채가 겨울에 묻혀 사람 사는 세상 아닌 것 같이 쓸쓸하다.
계곡에 흐르는 물이 얼음집을 짓고 숨죽이고 있다. 그 속으로 맑은 물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사람들은 간간이 들리는 물소리에 봄이 오는 소린가 하며 움츠렸던 마음을 녹인다. 분주한 틈 사이 봄바람이 겨울바람을 쫓아내고 안방을 차지한다.

대문간에 커다랗게 입춘대길이라고 쓴 명패를 달고 봄이 왔음을 알린다.
봄이 온다고 그냥 오는 게 아니다.

혼신을 다한다. 늦겨울 세찬 바람이 봄을 알리는 전령사들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전령사들의 눈에는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견딜 수 없는 쓰라림과 고통, 슬픔과 눈물이 한꺼번에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봄의 새싹들이 갈길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맨다. 돌 같은 흙을 뚫고 올라오다 힘겨워 죽임을 당한다. 봄이 오다 말 다 하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섭섭해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생사를 걸고 끈덕지게 우리 곁을 찾아온 봄, 나는 어떻게 받아드리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인간은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며 살 수 없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체육공원이 있다. 축구장, 족구장, 게이트볼 구장, 체력 단련 기구 등 있을 건 다 있다. 10여 년 넘는 느티나무, 벚나무들이 공원을 둘러싸고 있어 운치를 더해 준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는 풍성하고 넉넉한 느낌을 준다.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자전거 타고 이 공원을 찾는다.

나무와 대화하면서 한 바퀴 돌고 한다. 나무들은 가지고 있는 멋과 장기 자랑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파란 하늘 향해 마음껏 뻗어있는 나뭇가지는 일상에 찌든 내 마음을 활짝 펴준다. 쳐져 있든 어깨가 으슥해지고 힘이 솟는다.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유일한 나의 안식처다.

힘든 겨울을 보낸 이른 봄, 털모자에 두꺼운 옷을 걸치고 공원에 간다. 눈만 빠끔 내고 코를 훌쩍이며 앞만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봄이라 하지만 겨울바람은 여전히 차가운 느낌을 준다. 공원에 들어서자 사람 하나 없고 억센 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쓸쓸하고 외로운 산골처럼 적막감마저 든다. 녹음 짙은 나무들의 옛 모습은 흔적도 없다.

하늘을 찌를 듯 용기백배하던 나뭇가지는 앙상한 뼈만 남아있다. 추위에 견디다 못한 나무는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상처투성이다.

겨울 지내는 동안 큰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를 송두리째 맞으며 한 판 붙어서 이긴 승리의 훈장일 거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보는 생각과 느낌이 서로 다르다. 다른 사람과의 시각을 비교하여 본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다.

나무는 고통과 아픔을 견디며 남루한 몸으로 봄을 맞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은 그의 대가로,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꺼져가는 생명을 다시 소생하게 해준다. 서로가 의지하고 공존하며 사는 자연의 일상을 보며 부러움만 느낄 뿐이다.

봄의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다. 새싹들이 용을 쓰며 땅을 헤집고 세상 밖을 나온다. 파란 새싹들이 실바람에 실려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판에서 새소리에 맞춰 흥겨운 춤을 춘다.

아기들이 옹알이하는 모습과 같이 사랑스럽고 신기하다. 한편으로는 무럭무럭 자란 싹이 충실한 열매를 맺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한다. 풍성하고 우아한 아름드리나무들도 움 틔울 준비에 분주하다. 우직하고 뚝심 있는 소들도 마구간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깔고 새끼 낳을 준비 한다.

조용하던 세상이 시끌벅적 야단법석이다. 한결같이 봄은 우리에게 생명과 희망 용기를 심어 주면서 삶에 무한한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겨우내 움츠린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2월의 비. 꽁꽁 얼었던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며 봄을 재촉한다. 봄소식에 긴 침묵을 깨고 온갖 생명이 죽을힘 다하여 세상 밖으로 나온다.
새 생명이 혹여 늦겨울이 남겨 두고 간 찬바람에 얼어 죽을까 단단한 대지를 부지런히 녹인다.

겨우내 목말라 허우적대든 나무들이 물 넘기는 소리가 꿀꺽꿀꺽하며 요란하다. 복숭아밭에는 벌써 꽃봉오리 맺고 밭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여진다. 살아 움직이는 온갖 생명을 약동시키는 비, 정녕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아니던가. 내가 봄을 알고 봄이 나를 아는 그런 따뜻한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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