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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내 명(命)을 거역(拒逆)했다

admin 기자 입력 2021.04.04 22:06 수정 2021.04.04 10:06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여당이 예상치 못한 대승을 걷은 후 정권 내부의 분위기가 야릇하게 돌아간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하루 아침에 왕조시대로 돌아간 듯 내시(內侍)들만 들 끓은 것 같아 뜨악하다. 청와대 내 비서관들은 갑작스레 자신들이 주군을 섬기는 가신 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마져 들게 한다.

이 정권 요직에 있는 구성원들의 언행엔 어딘가 모르게 왕조시대를 연상케하는 구석들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조국 사태 때 어떤 여권 중진의원은 ‘형조판서(법무장관)가 입조(入朝)했으니 의금부 도사(검찰총장)는 직분에 충실’하라는 글을 올렸다. 또 추미애 형조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내 명(命)을 거역했다”며 국회 법사위에서 대성일갈(大聲一喝)했다. 사리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자기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싫어하는 감탄고토(甘呑苦吐)다.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왕정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명’이니 ‘거역’ 등의 생경한 표현을 쓰고 있으니 그들의 의식은 어느 시대에 머물고 있는지 귀를 의심케 할 지경이다.

어쩌자고 이러는지 알순 없으나 확실한 건 정부 여당의 지도자들이 경쟁적으로 현대판 ‘용비어천가’를 불러댄다는 사실이다. 강원도 모 지역 의원은 문대통령을 조선의 태종에 비견(比肩)했다. 권력자로 향한 아부(阿附)라면 무소부지(無所不至), 즉 못할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한 건 아닌가.

또 청와대 강모 대변인은 ‘문대통령의 지난 3년 간은 태종의 모습이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모시겠다’고 말했다. 충성스러운 신민(臣民)이 되겠다는 노골적인 아첨을 보기에는 참으로 딱하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한 일이다.

공자는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라 했다. 임금은 임금의 역할, 신하는 신하의 역할,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 자식은 자식의 역할을 잘 할 때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나아간다 고 했다.

자기들의 잘못은 화투패처럼 숨겨 놓고 남의 잘못은 귤껍질처럼 까발리는 아첨자들이 자기 맡은 바를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임금과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문대통령이 지난 2월 지방 출장길에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환영 나온 공무원들 손에 ‘우주 미남’ 우유빛깔 문재인‘이라 쓴 아부성 팻말을 들고 있는 장면이 티브이에 대통령 동정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참으로 돼지가 방귀 낄 일이고 얼굴이 다 간지랍드라.

어느 어설픈 목민관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그 따위 코메디 같은 짓 하지말고 차라리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처럼 “너 죽을 래” 소리를 듣더라도 정부에 들이대고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충신 공직자가 많이 나왔으면 국가를 위해 오죽이나 좋겠나.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아첨은 ‘가’자로 시작하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적이 있다. 가련한 아첨, 가증스러운 아첨, 가소로운 아첨이다. 대통령이 참모들의 듣기 좋은 아첨에 딱 걸려들면 정책은 산으로 가고, 국가는 길을 잃고, 국민은 고통받는다고 했다.

조선시대에 이런 형태를 연옹지치라고 했다. 즉, 악성 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의 환부를 핥아준다는 뜻이다. 얼마나 찌질하고 한심스러운 아첨인가.

송나라 학자 범조우(范祖禹)는 ‘당감(唐鑑)’이란 역사 비평서에서 “충신이란 마땅함을 따르지 임금을 따르지 않으며, 도리를 따르지 아버지를 따르지 않는다. 임금으로 하여금 불의(不義)에 빠지지 않게 하며 아버지로 하여금 부도(不道)에 들지 않게 한다.

비록 임금이나 아버지의 명(命)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명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장차 임금이나 아버지를 편안한 곳에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했다.

목민관의 애국은 목숨과 직을 내려놓을 만큼의 용기 있는 충직한 직언 뿐이다.
임금(대통령)이란 바로 황극인(皇極人)이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있는 자들은 특권을 누리며 편법과 전횡을 일삼을 것이고, 없는 사람은 영영토록 음지에서 눈물을 뿌린다면 임금이 있은 들 무슨 보람이 있으며, 세상의 참됨에 질서를 논 할 것이 있겠는가.

문대통령 취임사에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해서 국민들은 큰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논 할 것이 별 있겠나 싶다. 정의란 누구에게 든 당당한 게 정의가 아니겠나. 논어 계시편에’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란 구절이 있다.

‘백성은 가난함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불공정함을 분노한다’라는 의미다. 정권말기에 이르렀는지 어지간한 개발예정지역에는 땅덩어리 투기로 온갖 거짓 정의와 거짓 질서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실 그대로 도하(都下) 신문지상을 도배하고 있다.

임금은 모름지기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자를 부축하여 탕탕평평(蕩蕩平平)한 땅의 이치를 좇는 것이라 생각한다. 임금은 백성의 하늘이라, 하늘의 뜻은 오로지 만물을 살려서 키우고 보듬에 있으니 언제나 그늘진 곳을 비추고 메마른 곳을 적셔 주지 않던가. 맹자가 이르기를 “민위귀 사직차주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主 君爲輕)이라 천하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고 했다.

이럴진데, 여당의 의석수만 믿고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 반대편의 의사에도 귀 기울이는 정치적 지혜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후필재앙(後必災殃), 즉 나라가 불가능한 일을 무리하게 행하면 후일에는 반드시 재앙을 맞는다고 한다. ‘현재가 과거와 싸우면 미래가 없어진다’는 잠언(箴言)도 있지 않던가. 우리가 경계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 명을 거역했다는 식의 왕조시대로 되돌아가는 과거 지향이다. 사람은 일대(一代), 사직은 만대(萬代)라 하지 않았던가.

황성창 시인
수필가. 재부 의흥향우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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