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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뻔디기

admin 기자 입력 2021.04.04 22:14 수정 2021.04.04 10:1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건강하게 살다 죽고 싶다. 누구나 한 번씩은 했던 말일 거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을 가진다. 건강 보조 약품들이 매체를 통하여 쉴 사이 없이 광고를 도배한다. 주위 사람들이 건강에 좋다고 하면 귀가 솔깃해진다.

약에 대하여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 알 정도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다.

유혹이란 말이 이런 데서 나온 말이겠다. 모르기 때문에 남들이 좋아한다고 무척 대놓고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게 비치기에 십상이다.

시장 모퉁이에 천막 쳐놓고 재밌는 만담 하며 휴지, 양풍이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선물로 주면서 약을 팔고 다니는 약장수가 있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로 천막은 늘 꽉 찬다. 연세 높으신 아버지들은 한 사람도 없고 어머니들뿐이다. 어머니들은 재밌는 약장수 이야기에 홀켜 정신없이 듣고 있다. 아픈 곳을 꼭꼭 질러가며 하는 이야기에 약을 먹으면 금방 낫는 것같이 생각한다.

거기다 약을 사면 휴지 같은 선물을 준다. 마음이 끌려 약을 사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준 용돈을 꼬깃꼬깃 모아 복주머니에 넣어 다닌다. 쓸 데가 없고 쓰려 해도 마땅한 곳도 없으면서 갖고 다니신다. 손녀 손자들이 오면 용돈 주는 것밖에 없다.

복주머니에 가득했던 돈이 적어졌다. 정신이 없어 어디에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날 며칠 기억을 더듬는다.

여명이 밝아 오듯 희미한 생각이 떠오른다. 언제였던가? 약장수가 우리 동네에 한 번 왔을 때 약을 샀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무심코 이야기만 들었지 약에는 별 관심 없었다. 약을 사지 않았는데 조그마한 선물 하나 주기에 미안해서 약을 샀던 적 있다.

어느 늦가을 이웃 사람이 우리 동네에 몇 해 전에 천막 쳐놓고 재밌게 이야기하며 약 팔던 약장수가 온다고 이야기한다. 엄마한테는 더 없는 기쁜 소식이다. 자식한테 건강에 좋다는 약을 사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약장수 오기를 기다린다.

약장수가 동네를 찾아다니면서 작년에 왔던 약장수 또 왔다며 마이크로 동네를 시끄럽게 한다. 엄마는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약장수가 쳐 놓은 천막으로 바쁜 걸음으로 걸어간다. 제일 앞에 앉아 오는 잠을 깨우며 만담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에 눈이 확 뜨인다. 내가 사려고 한 약을 누군가 사갈까 봐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제일 먼저 약을 사서 프라이팬 하나를 선물로 받고 밖으로 나온다. 엄마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벽장에 약을 넣어두고 자식 오기를 기다린다.
어느 날 자식이 식구들 데리고 온다. 엄마는 인사를 받는 둥 만 둥 성급히 일어서서 벽장에 둔 약을 꺼낸다.

약장수가 건강을 지키려면 이 약보다 더 좋은 약이 없다고 선전하기에 아범 주려고 쌌다. “한번 먹어 봐라.” 하며 건네준다. “엄마 잡수시지.” 하는 말을 바랐건만, 다짜고짜 “엄마! 이런 것을 사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또 사셨네.” 한다. 엄마는 말문이 막혔다. 꼬깃꼬깃 모아둔 돈을 아깝지 않게 약을 사줬는데 벌컥 화를 냈으니 엄마의 심정은 어떡했을까?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은근히 바랐던 엄마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엄마의 눈가엔 이슬이 맺힌다.

그럼에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몇 해가 지났다. 찾아온 지인들이 갖고 온 인삼 등 건강식품을 벽장에 어지럽게 넣어 두었다. 자식들이 오면 하나씩 주려고 마음속에 새겨 놓았다. 자식들이 간다고 인사하면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벽장에 넣어 두었던 건강식품이랑 반찬이랑 먹을거리를 들고나와 자동차 뒤 트렁크 밀어 넣는다. 손주 녀석이, “할머니 잘 먹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이며 인사한다. 엄마 마음에 숨어있던 먹구름이 벗겨지면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밝은 웃음 지으며 떠나가는 차를 바라보면서 따뜻한 손으로 허공을 가른다.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수명이 연장된다지만 건강이 따라가지 못해 안타깝다. 평생을 흙과 같이 사면서 고생하셨던 부모님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림의 떡이다. 예전에는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현대 과학 문명이 발달한 지금은 당뇨, 중풍, 고혈압 등 성인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약과 의사 병원도 많지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가 보다. 흔히 보는 고려장과 같은 요양 시설에 들어가는 날이 세상과 이별하는 날이 아니더냐? 100세란 말은 화려하지만, 거기까지 따라가지 못한 아쉬움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니 허전한 마음 가눌 데 없다.

삶을 중요시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거다. 어릴 때 길을 걸어가다가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아침 잡샀는게” 인사한다. 오냐, 하시며 반갑게 대답하신다. 어려운 시대 혹여 식사를 걸렀을까 봐 정성 어린 마음으로 인사하는 거 아닐까? 당시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름기라고는 한 군데 찾아볼 수 없다.

피부가 거칠고 살이라고는 한 줌도 없다. 산과 들로 다니면서 삐삐, 짠대, 소나무 껍질 등 벗겨 먹으며 허기를 면하고 했다. 조물주가 인간을 묘하게 만드셨다.

비록 먹을거리는 없어도 지혜를 주시어 이러한 것들을 먹으며 살라라 하셨다. 생약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생약을 잡쉈기 때문에 옛날 어른들은 잔병 없이 오래 살지 않았던가 생각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턱없지만, 노동이 많았던 당시를 생각하면 오래 사신 것 같다.

건강하게 오래 살다 죽으려면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단다. 옛날에는 가난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다.

옛 어른들이 단백질 부족함에도 오래 살 수 있었던 건 짠대 뿌리 같은 생약을 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시에 단백질을 맛볼 수 있었던 건 명주실 뽑고 나온 번데기가 전부였다. 이젠 먹을거리가 많아도 비만 등 성인병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100세까지 살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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