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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내 인생의 여백

admin 기자 입력 2021.04.18 23:14 수정 2021.04.18 11:1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봉사활동을 생각한다. 정신없이 사느라 앞뒤 돌아보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때늦은 감 있지만, 이제라도 재능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제대로 된 열매를 수확할지 걱정하며 시작한다.

70km 속도로 달린다. 뒤따라오던 차가 느닷없이 뒤 트렁크를 들이받는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린다.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다친 데 없느냐고 묻기는커녕 차를 너무 천천히 몰았다며 윽박지른다.

기가 차고 엉기나 할 말을 잃는다. 늙었다고 아무렇게 대하는 것 같아 괘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손자 녀석 같은 걸 보고 따질 수도 없다. 속앓이하며 자기 잘못을 남에게 뒤덮어 씌우려는 세상 허탈하고 울분이 터진다.

한심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는 이런 세상에 사는 자신을 원망하며 스스로 망가지는 것 같다.

하나의 밀알로 밝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불쑥 솟구친다.
마을마다 경로당이 있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다가 8부 능선을 지난다.

예사로 보이던 경로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나이가 많아지면 오갈 때 없어진다. 자연스레 노인들끼리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노인이라도 같이 어울려 지내야 정(情)도 나고 허물없이 지낼 수 있다.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경로당 간판을 멀리했다.

이제야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노인이란 호칭이 실감난다. 경로당에는 노인회, 부인회가 있다. 가입하면 회원들과 어울려 같이 지낼 수 있고 정도 쌓고 부대끼며 즐거운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심 끝에 노인회에 가입한다. 노인이면 누구나 회에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까다롭다. 절차와 규정에 따라 가입해야 한다.

가입을 신청하고 기다린다. 며칠 뒤 승인되었다며 통지가 왔다.
기쁘기보다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동네 노인회라 해서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 의외로 엄격했다. 까딱 잘못했으며 큰 우(愚)를 범할 뻔했다.

절차와 규정 등이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몰랐다. 법이 살아 있다는 존재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처음으로 경로당에 들어갔다. 한 동네 같이 살면서도 지나칠 때마다 눈인사만 주고받은 것이 전부다.

다정다감하게 대하지 못하고 지내 온 것이 마음에 거린다. 여럿이 모여 앉아 놀고 있는 방에 불쑥 얼굴을 내민다.
노인답지 않게 서먹서먹하다. 같이 어울려 허물없이 지내오지 않았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주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친숙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여럿이 모여 하는 이야기는 늘 재밌고 화기애애하다.

축산 등 직업에 따라 성격과 사는 방법과 이야깃거리가 모두 달랐다.
사는 모습이 제각각인 것을 보고 사람 사는데 별것 있느냐 다르게 사는 사람 없구나! 재밌는 세상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가면 무엇이든 해결한다는 말 있다. 마음이 가라앉고 앉고 서고 할 내 자리가 어딘지 알게 되었다.

동네 총회 날 노인회장 추대에 수락했다. 삶에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로, 동내에 관심을 두지 못했던 마음에 진 빚을 언젠가 갚으려고 생각해 왔다. 봉사활동을 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갚고자 무거운 짐을 걸머질 각오 했다.

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동네에 접목해 보고 싶었다. 약간의 힘이 들었지만, 회의를 거쳐 일을 시작했다. 회의장 분위기를 아담하게 꾸며보고 싶었다.

수십 년 지난 역대 회장님들의 사진을 어렵게 찾아 회의실에 걸었다. 회관 등록증 등 나란히 걸었다. 동장 집무실에 새로운 집기를 들여놓았다.

서류를 철로 묶어 찾아보기 쉽게 정렬해 두었다. 보기가 참 좋았다. 동민 화합과 건강을 위해 사물놀이패를 만들려고 했다. 코로나19 발생으로 하지 못하고 해제되면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동장 집무실도 새로 마련하려고 한다.
아담하게 꾸며놓은 회당에서 오순도순 재밌는 이야기 하며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난데없던 치매가 들이닥친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치매라 한다.

노인들의 말에 오죽하면 죽을 때 치매에 걸리지 않고 죽게 해 달라고 할까? 고이 죽고 싶다는 말이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치매에 걸려 온갖 고생을 하다 죽을까 봐 두려워한다. 동네에 한 분이라도 불행한 일이 일어날까 봐 매월 치매 예방 교육에 시간을 보낸다.

내 인생의 여백을 온전히 노인회에 바치고 싶다. 시작에 불과하지만, 더 열심히 하려고 마음 다짐한다. 동장 집무실도 짓고 사물놀이패 만들어 동민의 안녕과 건강을 지키며 화기애애한 동네로 만들고 싶다. 동네에 진 마음의 빚을 갚아가며 봉사활동 통해 제대로 된 열매를 수확해 보고 싶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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