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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옹이

admin 기자 입력 2021.05.18 15:35 수정 2021.05.18 03:35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우리 동네는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야산에는 돌이 많고 땅이 척박해 잡목이며 칡 억새 갈대 같은 잡풀이 무성하다. 군불을 지필만 한 낙엽송 소나무 같은 큰 나무는 거의 볼 수 없다.

겨울이면 월동 준비한다. 사람들은 나무하러 가려고 소등에 질매 얹고 걸 채를 단단히 맨다. 새벽밥 먹고 점심을 바가지에 싸서 소 질매 위에 얹고 2, 3십 리 떨어진 먼 산에 간다.

점심 나절쯤 도착한다. 나무 밑둥치인 고지 배기(그루터기) 말라 죽은 나뭇가지인 삭다리(삭정이) 등을 낫과 톱으로 잘라 소에 싣고 온다. 집에 돌아오면 어둠이 내린다.

산림녹화로 동네에서는 몇 해마다 한 번씩 잔솔과 큰 나무에 가지치기하며 나무를 키운다. 가지치기할 때면 동네 하심이가 “소깝하로 나오소” 하고 외친다. 굼불 땔 나무할 데가 없던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반갑다. 지게에 낫과 톱을 꽂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서둘러 나온다.

나무에 매달려 땀을 뻘뻘 흘리며 가지치기한다. 가지치기한 것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즐겁고 기쁘다.

피곤할 줄도 모른다. 당시에 청솟깝해서 가져온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하심이가 소나무 가지 칠 때 주의사항을 전한다. 가지를 자를 때 나무둥치에 바싹 붙여 잘라 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깝 양도 적고, 자른 부위가 흉스럽게 보인다며 신신당부한다. 사람들은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치기한다. 며칠 동안 가지치기를 다 했다.

청소깝을 한 아름씩 묶어놓고 마르도록 기다린다. 묶어 놓은 마른 솟깝 단을 나눈다. 하심이는 자기만 알 수 있도록 표시한 지게막대기를 하나씩 가지고 오라고 한다.

그리고 무작위로 지게막대기를 묶어놓은 마른 솟깝 위에 꽂는다.
막대기가 꽂힌 솟깝 단이 그 사람 것이다. 산에서 솟깝을 내릴 때는 하얀 먼지가 온 동네를 뒤덮는다.

찡그린 사람 하나 없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다.
잡풀과 뒤엉켜 덥수룩했던 나무들이 이발했듯이 말쑥하고 시원해 보인다.

한두 해가 지나고 산에 올랐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깜짝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산은 말이 없는데 나무들은 하나같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어설픈 모습으로 있다. 쭉 뻗고 매끈하던 나무는 온몸에 흉터 자국이 여기저기 있다.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흉터투성이 된 나무는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해맑은 얼굴로 한껏 멋 부리고 서 있다.

자연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간다.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무질서하게 만들어 버렸던지 알 수 없다. 나무둥치가 크면서 스스로 불필요한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내적인 잘못도 있다.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나뭇 가지를 잘라내야 하는 물리적인 외적 잘못도 없지 않다. 가지치기할 때는 연장을 나무둥치에 바싹 붙어 잘라내라고 하심이가 말했다.

예사로 들은 것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늦게나마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혹을 흉터라 부르지 않고 “옹이”라고 부르니 다행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날카로운 칼날에 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나무는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나무둥치는 그 눈물로 상처 부위를 바르고 또 바르고 수 없이 발라 준다.

나중에는 의젓한 옹이를 만들어 세간에 이목을 끌게 한다. 눈물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기에 상처를 아물게 하는 신비의 약이라도 들어있다는 말인가? 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가 썩지 않고 멀쩡한 것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항균작용이라도? 비나 눈이 와도 상처 부위에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방수 작용도 한다는 말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옹이가 점점 작아지고 고고한 품위를 만들어 준다? 이는 ‘신비’란 말밖에…. 누가 가르쳐 주지도 읽어주지도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알았던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저런 사유에도 옹이의 뻔뻔스러움은 말을 다 할 수 없다. 우리 집 앞 화단에 나지막한 소나무 한 그루 있다.

가지마다 옹이가 옹기종기 모여 오가는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 자리는 날카로운 칼로 나뭇가지를 잘라낸 흔적이 역력하다.

나무둥치에 붙어 있어서는 안 될 나뭇가지인지 사람들이 모질게 잘라낸 것 같다. 그 자리에는 눈물이 쉴 사이 없이 흘러내린다. 그럼에도 옹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히 앉아있다. 살며시 연민의 정이 간다.

어느 때 나무하러 가면 옹이가 많은 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늘씬하고 주∼욱 빠진 나무들이 많다. 옹이가 있는 나뭇가지는 모양새도 얄궂고 성질도 고약하다. 도끼로 찍어도 꿈틀도 하지 않는다.

반항하는 것 같아 보여 밉상스럽게 보인다. 불에 태워도 그냥 타지 않는다. 참았던 울분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시뻘건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타닥거리는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옹이를 볼 적마다 무섭고 떨릴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치밀어 오른 울분을 참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니 때론 짠할 때도 있다.

죽을 고생을 다하고 살아남은 옹이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무둥치에 붙어 힘차게 뻗어 나온 나뭇가지가 비바람에 처참하게 부러진다.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을 짓는다. 나무둥치의 지극 정성으로 그 자리를 맑끔히 아물게 한다.

그러고 그 자리에 너의 이름을 새겨 둔다. 이젠 길거리에 있는 소나무, 책상 위에 못난이 소나무에도 너의 이름이 붙어있다. 너의 이름이 없는데 없다.

세상 사람들은 너의 고생을 이제야 안다. 늦었지만, 너의 위대한 탄생을 축하한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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