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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유혹

admin 기자 입력 2021.06.15 20:09 수정 2021.06.15 08:09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술에 취하면 약이라도 있지만, 권력에 취하면 약도 없다.
사람들은 세상에 일어난 온갖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다.

달콤한 맛에 가정이 파괴되고 사업을 망쳤다는 등 믿기 어려운 소식들이 쏟아진다. 심지어 부와 명예, 권력마저 한꺼번에 잃어버렸다는 소식도 듣는다.

이 맛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무서운 마력이 있다. 여기에 한 번 발을 담그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린 좀비가 되는 것이다. 달콤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콤한 거 아니다. 병을 일으키는 무서운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작은 사업체를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지인이 있다. 생활 속에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다. 여느 봄, 바람 쐬러 가자며 전화가 왔다. 사업 핑계로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는데 바람 쐬러 가자고 한다.

뜬금없는 전화에 궁금증이 일어난다. 갑자기 무슨 일로 만나자고 했던지 묻지도 않고 둘은 산에 오른다.

소나무 피톤치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가슴을 활짝 열고 마음껏 들이마신다. 그윽한 향기가 가슴 속으로 밀물처럼 밀려든다.

소나무가 빽빽한 중턱에 넓적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둘은 거기에 걸터앉아 땀을 식힌다.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에 다람쥐 한 마리가 오르락내리락 재주 부린다. 다람쥐 따라 내 눈동자도 오르락내리락한다. 다람쥐가 되어 나무 위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면, 생각에 잠긴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뭇가지를 붙잡고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다니면서 세상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고 싶다.

다람쥐는 어릴 때부터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배운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걸음걸이를 배운다. 서로는 다른 재능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살아가는 방식과 방법이 같을 수 없다. 조물주가 개체에 따라 한 가지의 재능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 다행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양한 재능을 가지기를 원한다. 다람쥐는 인간이 쓸데없는 욕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들여다보고 같잖은 듯 코를 실룩하며 어디론가 달아난다.
산새들이 침묵한 가운데 지인이 말문을 연다.

“며칠 전 국민이 뽑은 어떤 분한테서 전화 왔더라.”
“무슨 일로 왔떠노?”
“시간 있으면 자기 사무실로 한번 오라고 카더라.”
“갈라고 켔나?”
“우야꼬 싶어 생각 중이다.”

정치에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집안 망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발을 잘못 디뎌놓을까 봐 걱정된다. 욕심도 부려볼 만도 하지만, 정치 감각도 없는 사람이 정치에 뛰어든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생각에 그 사람이 왜 전화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지인이 전화했다면 모르겠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안갯속으로 빠져든다.
어렴풋이 생각난다. 당시 도로 확장으로 토지가 많이 편입되었다.

그분은 지인의 토지가 도로에 편입되어 충분한 보상가를 받은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역유지에 재력도 탄탄하고 장래가 총명하게 보여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무실에 한 번 오라고 했던 것도 그런 생각으로 불렀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칭찬에 약하다. 조용한 사람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확고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지인은 두 번째다. 그럼에도 달콤한 맛에 깨어나지 못하고 방황한다. 애달프고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진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돈을 벌려면 돈을 땅에 묻어라. 그리고 재산을 빨리 망하려면 정치하라. 재산을 천천히 망하려면 자식 공부를 시키라고 했다. 마음에 담아둔 말을 건네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어떻게 하면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뿐이다. 지인의 날개를 폈다 오므렸다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면 말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해 더욱더 안타깝다.

책상 앞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파리가 꿀단지 주위를 돌면서 꿀을 먹다가 맛이 있어 단지 속으로 들어가 먹다가 날개가 꿀에 젖어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파리와 불나방’ 이야기를 읽는다.

결국, 지인은 달콤한 맛에 빠져 이솝 이야기 한 페이지에 담길 만한 가치를 가졌다.
부와 권력, 명예를 한 손에 거머ㅤ줬는 그는 어쩌다 한 번씩 만나면 꽃길 이야기에 입에 침이 마른다.

마음속으로 걱정한다. 술에 취하면 약이라도 있지만, 권력에 취하면 약도 없다. 결국, 그는 달콤한 유혹의 덫에 걸려 권력에 취했다. 그에게는 화려했던 순간들이 너무나 짧았다.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캄캄한 독수공방에서 홀로 가는 세월과 투쟁하고 있다.

그 많던 화려한 꽃과 나비들이 어디로 갔던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즐겁게 지냈던 별들도 언제 본 듯 쳐다보지 않는다.

인정이 메마른 세상, 후회와 통한의 소리에 지하에 계신 신들이 잠에서 깬다. 달콤한 이야기에 사업을 망쳤다는 이야기가 남 이야기같이 않다.

달콤하다고 모든 거 다 달콤한 것 아니다. 병을 일으키는 무서운 독(毒)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진실인가 보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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