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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첫 해외여행

admin 기자 입력 2021.07.02 17:23 수정 2021.07.02 05:23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동경의 대상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세계를 가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소설 같은 이야기다. 기회가 나면 언젠가 한 번 가 볼 생각을 하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느 여름 친하게 지내고 있는 관광회사 사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며칟날 동남아시아 여행가는 손님이 몇 분 있는데 같이 가자고 한다. 가보고 싶든 차 잘 되었다며 친구 10여 명과 같이 떠나기로 했다.

1991년 7월 친구들과 같이 3박 5일 일정으로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마카오 등 동남아시아 관광길에 오른다. 대구에서 버스로 김포 국제 공항으로 달린다. 말로만 듣던 김포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어리어리한 건물이 나를 압도한다.

국내외 사람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저 사람들과 같이 해외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진다. 보이는 것마다 생소하다.

눈동자가 고정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 가방을 흘낏 쳐다보기도 한다. 지게로 질 만큼 큼직한 가방이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여기에 비하면 내 가방은 턱없이 부족하다.
사람들이 출국 서류를 쥐고 출국장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내 서류가 잘못되었을까 봐 불안하다. 줄 따라 한 사람씩 들어간다. 내 차례가 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간다. 금테 안경을 쓴 직원이 비행기 좌석 번호표를 확인한다.
출국장 안에 검색대가 있다. 검색원이 몸에 지닌 모든 소지품을 검색대 위에 내려놓고 들어가라고 지시한다.

검사원이 탐지기를 들고 몸 전체를 검사한다. 무사히 통과했다. 긴장이 풀리고 막혔던 숨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승객 대기 장소에 면세점이 있다. 술, 담배, 화장품 등 여태 보지 못한 외국산 물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가 보고 싶지만, 혹시 시간이 지나 비행기를 못 탈까 봐 겁이 나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비행기가 굉음 소리를 지르며 하늘 높이 치솟는다. 가슴에 잔잔한 전율이 흐른다. 창문을 통해 살며시 아래를 내다 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김포 공항의 모습은 정말 우아하고 아름답다. 부쩍이든 기내가 갑자기 숨 죽은 듯 조용하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한국에서 태국 방콕까지 거리는 약 3,500㎞이며 비행시간은 5시 30분에서 6시간 걸린다. 한국 시각이 태국 시각보다 두 시간 빠르다고 한다.

늦은 오후 출발한 비행기가 밤새 달려와 새벽녘에 방콕에 도착한다. 여행 가방을 어디에서 찾는지 몰라 불안하다. 여행사 사장 뒤를 바짝 따라간다.

컨베이어 벨트(conveyor belt) 위에는 많은 가방이 주인을 찾으려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내 가방이 제일 먼저 눈에 띄인다. 불안했던 마음이 가시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잠시 생각한다. 가방이 어떻게 나와 똑같은 시각에 도착했는지 궁금하다. 살맛 나는 세상을 실감하며 입국장을 빠져나온다.

태국 땅을 밟는 순간 들뜬 기분이 가라앉고 무거워진다. 고온다습한 기후에 얼굴이 후끈거리고 숨이 턱턱 막힐 것 같다. 낯선 태국의 풍경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언어며 주민들의 의상이며 추녀가 하늘로 추켜올려져 있는 집들이며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 아가씨들이 재스민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면서 웃는 모습이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다.

불행히도 비위가 약한 나는 재스민 향기가 역겨워 토할 것 같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안남미 쌀로 만든 밥과 소금으로 끼니를 때우다시피 하면서 힘든 여행을 시작한다.

즐겁고 신나게 놀았던 시간도 있다. 어둠이 내린 바닷가 수상 가옥 한 채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끊임없이 손짓하고 있다. 끌려가다시피 그 길 따라간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쏟아지는 방에서 흘러나오는 재즈곡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어두운 밤을 뚫고 찾아드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움을 만끽한다.
지칠 줄 모르고 흥겹게 놀면서 먹어 치운 새우는 평생 잊을 수 없다. 먹 새가 좋은 한 친구는 스무 마리를 먹었다며 자랑한다. “자네는 여행 온 경비를 다 뺐다.” 하며 농을 주고받고 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나도 마음껏 먹었으니 할 말이 없다.

어디로 가는지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즐거웠던 시간이 돌아갈 시간을 재촉한다. 어렵사리 해외여행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괜스럽게 서먹하다.

섬기는 문화가 아직도 뿌리깊게 내려져 있다. 선물을 사주고 싶은데 어떤 것을 사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 나라의 특산품이 좋을 것 같아 사기로 했다.

태국에는 상아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젓가락이 좋을 것 같아 상아로 만든 상품을 진열해 놓은 매장에 들렸다.

매장에는 별의별 장식품들이 꽉 차 있다. 상아로 만든 젓가락 수십 매를 샀다. 친구 주려고 상아 도장도 몇 개 샀다.

여행에서 돌아와 친인척 집을 찾아다니면서 여행 이야기하며 상아 젓가락을 선물로 드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친지들한테서 여행 선물로 받은 젓가락이 불에 타서 못 쓰게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어찌할 바 몰라 젓가락을 불에 태워보았다. 파란 불꽃을 튀기며 메케한 냄새가 등천한다.

난생처음으로 마음먹고 산 젓가락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든지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이런 세상에 사는 자신이 불쌍하고 안쓰럽게 보인다. “세상에 믿을 놈(者) 한 놈(者)도 없다.”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가 싶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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