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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7월 장마

admin 기자 입력 2021.07.19 22:01 수정 2021.07.19 10:01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생각이 난다. 지난해 태풍을 동반한 장마가 중부와 남부, 북부지역을 오르내리며 전국에 많은 비를 뿌렸다.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되고 집이 무너지고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넓은 들은 범람한 강물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외양간 소가 강물에 떠내려가고 가옥이 침수되고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넋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39년 만에 찾아온 7월 장마가 일주일째 오락가락한다.
장마는 보통 6월 하순에 시작하는데 올해는 열흘 늦게 7월 초순에 시작했다고 7월 지각장마란다. 물을 가득 먹은 구름 떼가 서서히 모여든다.

사방이 컴컴해지면서 비가 곧 쏟아질 것 같다. 비는 오지 않고 바람 한 점 없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이어진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에 벌컥 화를 내며 짜증스럽게 대꾸한다.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小暑). 24절기 중 열한 번째 해당하는 절기이다.
기상청에서 소서가 지나면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보한다. 사람들은 벌써 지난 악몽을 떠올리며 걱정이 늘어진다.

소서가 시작되는 다음 날, 남해안 지역에 100 mm 이상의 장대비가 아침부터 종일 쏟아진다. 저지대에 있는 가옥이 침수되고 강풍에 전봇대가 넘어지고 산사태가 발생한다.

비닐하우스가 강물에 잠기고 겨우 내 기름보일러를 설치하여 재배한 수박 토마토 등이 물러 터져 버렸다. 황토물이 빠져나간 하우스 안에는 탐스러운 과일 채소들이 흉물로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장마가 시작된다. 하루 종일 땀과 비에 젖은 몸을 찬물로 한 바가지 덮어쓴다. 쏟아지는 잠이 코를 잡아 쥐고 이불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잠에 취해 곤드레 떨어진다.

어느 때쯤 되었을까? 한밤중에 번갯불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땅으로 내리 꽂힌다. 불빛이 튕기면서 방안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혀 준다.

불빛이 사그라지면서 하늘에서 ‘우르렁 쾅쾅’ 하는 천둥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또 그렇게 반복한다.

처마에서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똑∼똑 들린다.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두둑 두둑한다.

집이 떠내려 갈까 봐 겁에 질려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비시시 열고 창밖을 빼꼼 내다본다. 소낙비가 방귀를 뀌면서 왕방울 만한 구슬을 만들었다 없앴다 한다. 하수구를 꽉 차 흘러가는 물소리가 조용한 밤을 깨운다.

저 멀리 성당에서 새벽종 치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여명이 어둠을 헤치고 날을 밝힌다.
밤새 내리는 비는 날이 밝아도 그칠 줄 모른다. 이른 새벽에 전화가 온다. 소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밤새 끙끙거리고 있다고 걸러온 전화다.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빗길을 조심스레 악세 레이더를 밟으며 달린다.
앞유리창에 매달려 있는 브러시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쁘게 닦아도 감당이 안된다.
그 집을 찾아가는 길은 도로를 따라 한참 달려가다 도로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 길 따라 조금 더 가면 작은 지하 통로가 있다. 이 통로를 지나간다.

통로는 산기슭 가까이에 있어 비가 오면 산에서 내려오는 흙탕물이 차여 통행하기가 불편할 때가 많다.

국지성 집중 호우로 지하 통로에 물이 많이 차였다. 몇 해 전, 작은 도랑을 건너다 차가 물에 빠져 애 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또 그럴까 봐 은근히 겁이 난다.

마음을 다잡고 차를 몰고 서서히 통로 안으로 들어간다. 물이 차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 같아 엉덩이가 들썩여진다. 가슴을 조이며 통로 중간까지 들어갔다. 생각보다 물이 적었다. 마음 놓고 서서히 빠져나왔다.

치료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지하 통로 입구까지 왔다.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가슴이 널 뛰듯 쿵덕거린다. 앞유리창 너머로 지하 통로 안을 살펴본다. 산에서 내려오는 황토물이 나를 집어삼킬 듯 무서운 속도로 흘러내린다.

통로 안은 시뻘건 황토물이 출렁인다. 차가 물에 빠져 오가도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날은 어두워지고 사람이라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다. 슬며시 무서움이 든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이럴 때 나와 함께 해 줄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앞유리창에 부옇게 낀 성애가 앞을 가로막는다. 불안·긴장한 탓 이마에 땀이 흘러내랜다. 이를 꽉 물고 2단 기어를 넣고 악세레이터를 서서히 밟으며 통로 안으로 들어간다.

타이어가 물에 잠긴 것 같다. 엣다, 모르겠다. 죽기를 각오하고 악세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차는 물살을 가르며 총알같이 빠져나왔다.

갓길에 차를 세운 채 핸들에 얼굴을 묻고 잠시 생각한다.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하나뿐인 생명과의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장마면 다 같은 장마인 줄 알고 여태 거들떠보지 않았다. 올해는 39년 만에 찾아온 7월 지각장마가 남해 지역에서 요란스럽게 시작한다.

장마는 서슴지 않고 장대비를 가지고 한꺼 번에 눌러 버렸다. ‘7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속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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