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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예술가의 화려함 속 애환(哀歡)

admin 기자 입력 2021.07.19 22:04 수정 2021.07.19 10:04

↑↑ 황성창 작가
ⓒ N군위신문
인류에게 그토록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예술. 이 예술을 위해서는 장르별 많은 예술인들의 노력과 생명을 희생해야 할 만큼 값어치 있는 예술이란 인류를 위한 것이다.

한낱 아름다움이나 인간의 쾌락을 위해 창조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찬란한 결과보다 결실에 이르는 과정에 프로패셔널한 품격을 유지한 가운데 처절한 역경의 과정이 빛나야 한다.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작품이 위대한 예술이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평생 스므명 넘는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죽을 때까지 3천 여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일평생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를 얻어 살면서 그림을 단 한 점 팔았다고 한다.

그림 그릴 종이가 없어 담배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이중섭 화가 등 예가들의 가난은 훗 날 그들의 성공을 돋보이게 하는 일화로 회자(膾炙)되기도 했다. 그만큼 예술인과 가난은 친숙한 관계로 때로는 낭만파의 상징으로 멋이기도 했다.

지난 봄에 일흔 넷의 배우 윤여정이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연기 철학을 묻는 질문에 “열등의식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해, 그래서 대본이 내겐 성경이나 다름없었다”고 답했다.

그녀 스스로를 “생계형 배우”라고 말했다. “배 고풀 때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깨달음을 그렇게 얻은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고백으로 현재까지도 대다수 예술인들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

반증이라도 하 듯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매월 생활안전자금 신청 안내문을 모든 예술인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이런 엄한 현실에 예술 지원금 수령 문제로 화제에 오른 예술인이 있다.
대통령의 아들이자 예술가인 문준용씨가 한국문화예술위를 통해 지원금 6900만원을 수령한 사실을 자랑(?)삼아 스스로 밝힘으로서 세상에 알려지자 ‘염치가 있으면 대통령 아들이 그 돈을 받아 선 안 된다’는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도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지원금으로 서울시로부터 14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바도 있다.

그때도 그는 작가가 창작지원금을 받은 게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대응한 적이 있다. 2년 연속 지원금을 받는 경우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더욱 실망스러운 건 문씨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뽑겠습니까. 실력도 없는데도 요?”라며 지원금 수령에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아무런 문제 될게 없다는 식의 무의식에 함몰된 것 같아 같은 예술인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원금이란 정말 힘들어하는 작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자금이다.

각 언론매체에 보도된 문씨의 주장을 보면 염치(廉恥)없는 사람 같아 실망도 적잖다. 염치라는 말은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부끄러움을 살핀다는 뜻으로 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만약 그가 정말 염치불구(不拘)하고 한 주장이라면 도리나 체면 같은 거 전연 개의치 않겠다는 뻔뻔함이니, 그렇다면 정말 ‘막가자는 안하무인격’인 사람이란 말인가. 대통령의 아들인데 설마 그런 마음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문씨의 지원금 수령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자 문체부장관은 “대통령 아들이면 예술활동도 5년 쉬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며 두둔하고 나선다. 게다가 청와대 정무수석마져 지원금에 대해 “특혜가 아니다” 문씨는 미디어아트(매체예술)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인”이라는 헌사까지 하고 나섰다. 어째 대통령 참모까지 나서다니 차라리 입 다물고 있었으면 좋으련만.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예술인’이라는 칭호는 모두가 선망하는 최상의 예우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예술행사에 초청 작가로 대접 받고, 이미 세계적 명성을 가진 외국 예술인과 동등한 반열에서 예우도 받고, 해외 미디어아트 분야의 으뜸상 수상 경력이 쌓이면서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수준에 오른 예술인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서 ‘세계적’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예술인이라면 국제대회에서 적잖은 상금도 챙겼을텐데, 굳이 좀팽이처럼 국내 지원금에 목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얼마 전 네덜란드 왕위 서열 1위 인 올해 열 여덜에 든 ‘카타리나 아말리아’ 공주가 왕실 수당으로 지급되는 돈 약 22억 원을 받기를 거부해 화제다. 왕실 관례에 따라 성인이 되면 매년 지급되는 수당을 공주는 “아무일도 하지 않고 각종 수당을 받는 건 불편하다.

다른 학생들이 코로나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상황”에서 이를 거절한다고 했다. 수당을 받는다고 아무도 손가락질 할 사람 없다. 그럼에도 포기한 것은 염치가 뭔지 알아서 일까? 이게 바로 신분에 걸맞는 도덕적 행위,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적 모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 아들을 비판하는 요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세금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것은 이해충돌과 구설수(口舌數)를 끊으라는 거다.

물론 ‘대통령 가족’으로 사는 건 피곤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대통령 가족이라면 위 아래 두루 보고, 가끔 세상 어찌 돌아가나 좌우 눈치도 살펴보고, 이웃들의 마음도 보듬는 가슴 따뜻했던 사람들로 기억되어야 하지 않겠나. 보통 사람들 기대가 지나친가?

공자가 말 하기를 “목종승즉직(木從繩則直)하고 인수간즉성(人受諫則聖)이니라”했다. “나무는 목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사람은 충고를 받아드리면 거룩하게 되느니라”하였다. 즉, 남의 충고를 질 듣고 수양을 잘 쌓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을 이기는 건 예술밖에 없다고 한다. 오직 예술만이 지치지 않고 우리와 함께 머문다. 작가란 없는 것을 만들어서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게 하는 창조적 문학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또나 개나 예술한다’ 는 폄훼 속에서도 여전히 돈 안 되는 창작의 긴 고통을 견뎌 낸 사람에게 붙여주는 명예로운 이름이다. 명예로운 작가답게 예술가 모두가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무한히 낮추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황성창 시인
수필가 재부의흥향우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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